조직문화 실험노트 (2) - 스타트업 OKR 도입기
2018년 7월, 우리는 혼란한 상태였다.
분명 팀의 목표가 있었지만 흐릿했고, 매일 일을 하고 있지만 정확히 무엇을 위해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고, 매일매일 바쁘게 살았지만 현재에 갇혀 이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 그려볼 수 없었다.
매일 열심히 일하는데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는데 오늘 뭐했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중에 어떤 아웃풋으로 이어질까?
이런 의문이 끊이지 않던 중 대표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방법으로 OKR이라는 신문물(?)을 들고 왔다.
대표님은 존 도어의 <Measure what matters>를 읽고 '이거다!' 싶었는지 갑작스럽게 타운홀 미팅을 열더니 OKR을 통해 얻게 될 슈퍼파워 4가지(1) Focus andCommit, 2) Align and Connect, 3) Track for Accountability, 4) Stretch for Amazing)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아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실행이다.
요즘은 OKR이 핫해서 다들 알겠지만, OKR은 목표(Objectives)와 핵심 결과(Key Results)의 약자로서 기업과 팀, 혹은 개인이 협력해 목표를 세우기 위한 규약을 의미한다.
단순한 실행 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OKR은 목표를 제대로 실행할 수 있게 해주는 툴이면서 동시에 이 툴을 이용해 팀에 목표 중심적인 실행력을 키워주는 하나의 문화이다.
도전적인 목표(Objetive)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지표(Key Result)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서 팀에서 개인 레벨까지 목표가 align 되게 하고, 팀원이 지표(Key Result)를 달성하면 곧 팀의 목표(Objective)를 달성하게 되는 마법의 툴(?)
OKR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실행 가이드는 구글 조직문화 블로그인 re:work를 참고하면 좋다.
오? 그렇게 우리는 OKR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빠르게 OKR TFT를 결성하고 OKR 문화를 도입하기 위해 샤샤샥- 움직이기 시작했다.
1) OKR TFT과 매니저들의 도움을 받아 두 분기에 걸쳐 스캐터랩에 OKR 문화를 도입할 수 있다.
2) OKR을 시행해본 사람들은 OKR의 4가지 슈퍼파워를 경험할 수 있다.
3분기(8월-10월), 4분기(11월-12월) 두 분기의 이터레이션을 돌면서 OKR 문화가 팀에 정착하도록 한다.
그 당시엔 번역본이 없어서 대표님이 혼자 존 도어의 <Measure what matters>를 읽고 정리한 뒤 전파했다.
그 내용을 OKR TFT 멤버들이 체화하고 우리 팀에 맞게 OKR 가이드라인 및 체크인 룰을 만들어 활용했다.
팀원 레벨까지는 바로 진행하기는 힘들 것 같아, 도입기에는 우선적으로 각 팀과 팀 매니저만을 대상으로 OKR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 OKR 필요성과 개념을 정리하여 공유한다.
2. OKR을 잘 정착시키기 위해 OKR 셰퍼드로 이루어진 TFT를 결성하고, 실행 가이드를 전파한다.
3. 각 팀의 매니저들이 OKR을 작성하고, OKR TFT의 검토를 거쳐 확정한다.
4. OKR에 따라 업무를 진행하고 주기적으로 OKR Weekly Check-in을 진행한다.
5. 분기 말에 진행한 OKR에 대한 스코어링을 하고, 팀끼리 모여 회고를 진행한다.
6. 위 사이클을 두 번(두 분기) 돈다.
새로운 문화와 철학은 짧은 시간 내 바로 소화하기 어렵다.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초반 도입기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여러 번 설명하고 직접 보여주고 실행하고 피드백하고 개선하는 과정을 빨리빨리 경험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OKR을 실행하기에 앞서 우리는 모두 OKR이 무엇인지 알고 공감해야 한다.
대표님이 맨 처음 OKR을 소개 해던 자료에 OKR의 필요성과 개념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그 문서를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해당 문서에는 OKR이 무엇이고 왜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지, OKR을 적용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일할 수 있게 되는지가 잘 설명되어 있다.
"아이디어는 쉽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OKR을 알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행이 어렵기 때문에, 실제로 OKR이 업무에 적용될 수 있도록 돕는 OKR TFT가 만들어졌다.
당시 우리 회사는 크게 연애의 과학팀과 핑퐁팀으로 나뉘어있었기 때문에 대표님과 함께 연애의 과학 팀에서 한 분, 그리고 핑퐁팀에서 나. 이렇게 셋이서 OKR TFT를 결성했다.
OKR TFT는 팀에 OKR 문화를 잘 정착시키기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OKR 셰퍼드로 활동했다.
OKR 셰퍼드는 이름 그대로 갑작스러운 신문물에 어리둥절하는 팀원들을 북돋으며 OKR 문화를 소화할 수 있게 돕고, 목적에 맞게 OKR을 사용할 수 있도록 OKR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OKR의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OKR을 잘 작성하고 잘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1) OKR 잘 작성하기
OKR 소개 문서와 더불어 자세한 OKR 작성 가이드, 스케줄링 가이드, 체크리스트 등을 최대한 촘촘하게 준비하려 노력했다.
OKR 작성은 전체 팀 별 분기 목표 및 큰 O를 대표님이 설정하면, 매니저들이 상황에 맞게 세부 OKR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매니저들은 OKR 소개 문서와 OKR 작성 가이드를 보고 OKR을 작성했고, 이후 OKR TFT 멤버들과 함께 여러 번의 회의를 통해 OKR을 다듬는 과정을 반복했다.
2) OKR 잘 관리하기
OKR은 잘 작성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분기가 끝날 때까지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게 상황에 따라 수정되거나 삭제되거나 생성될 수 있다. 그래서 OKR을 잘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OKR 관리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1) 분기 목표와 O와 KR의 연관성이 잘 드러나는가, 2) 언제든 유연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각 OKR의 진행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는가였다.
관리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툴을 이것저것 찾다가 구글 독스에 문서 형태로 작성한 버전과 구글 시트에 WBS를 변형한 버전으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구글 독스 버전은 분기 목표부터 모든 OKR을 쭉 나열하여 보기 좋았고, 공유하거나 수정하기에도 좋은 포맷이었다. 구글 시트 버전은 수정은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업무가 시간에 맞게 잘 배분되어 있는지, 팀 간 dependency가 있는지 등 현실적인 부분을 한눈에 체크하기 좋았다. 그래서 구글 독스 버전은 팀과 개인 OKR을 전체적으로 작성 및 점검할 때 사용하고, 구글 시트 버전은 개인 OKR의 진행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사용해보았다.
팀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매니저들이 OKR TFT의 도움을 받아 직접 OKR을 작성했다.
대표님이 작성한 전체 팀 목표 및 O 초안에 OKR TFT가 준비한 가이드를 보고 팀 매니저들이 OKR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top-down으로 내려왔지만 현재 상황과 목표 달성 가능성, 리소스 등을 가장 잘 아는 건 팀 매니저이기 때문에 팀 매니저가 직접 팀원들과 상의하여 각 팀의 OKR을 작성했다.
물론 이렇게 각 잡고 목표를 세워보는 건 처음이라 OKR TFT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OKR TFT는 작성한 OKR이 분기 목표와 잘 align 되어 있는지, OKR의 슈퍼파워 효과를 볼 수 있도록 잘 작성되었는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지는 않았는지 등을 같이 점검하였다.
매일매일 회의 지옥에 허덕이면서도(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끝까지 잘 작성해보려고 노력했던 매니저분들 최고!!
"세워두고 잊어버리는 기존의 목표 설정 방식과 달리 OKR은 살아 숨 쉬는 유기체다."
우여곡절 끝에 확정된 OKR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 오전 각 팀당 30분씩 OKR check-in 미팅을 진행했다. 각 미팅에는 대표님을 포함한 OKR 셰퍼드가 함께 하며 OKR이 원하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지, 각 팀이 목표 달성을 위해 나아가고 있는지, OKR 툴이 주객전도 되어 일을 그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Weekly Check-in 미팅은 스캐터랩에서 처음으로 매니저들이 실무 외에 관리 업무를 시행해본 사례이다. 그래서 많은 매니저들이 Weekly Check-in 미팅을 준비하고 OKR을 업데이트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걸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2222) 하지만 우린 이겨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진 OKR Weekly Check-in!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다. (...) 경험에 대한 회고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분기 말에는 각 매니저가 본인의 OKR 진행상황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각 결과에 대해 회고를 진행했다. 또한 OKR 결과와 회고 내용은 팀 분기 회고에도 사용되었다.
OKR Scoreboard 포맷은 구글의 조직문화 블로그 re:work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OKR 스프레드시트를 변형해서 사용하였다. OKR 가이드에 따라 객관적인 점수와 실제적인 상황을 반영한 최종 점수를 적고, 각 KR이 성공한 이유, 실패한 이유, 다시 작성한다면 목표를 어떻게 잡을 것 같은지 등을 작성하면서 OKR에 대한 회고를 진행했다.
2018년도 3, 4분기 동안 두 번의 이터레이션을 돌면서 OKR 도입기를 거쳤다.
핑퐁팀의 경우, 특수했던 2019년 1분기를 제외하고 2019년 2분기부터는 팀원 레벨에서도 모두 OKR을 작성하고 관리하게 되었다.
두 분기를 거치며 OKR이 꽤 잘 정착한 것 같다.
그걸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팀원들이 "그 일이 중요하면 OKR에 추가해야겠네요."라든가, "OKR에 작성되어있는 이 일이 새로 발생한 일보다 중요하니까, 그건 다음 분기로 미루죠."라든가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순간이었다. OKR이 일하는 문화로서 팀원들에게 스며든 것이었다.
OKR을 도입하고 조금 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게 되니 '도대체 이전에는 우리가 어떻게 일을 했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하는 데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피드백도 많았다. 내가 나아가야 할 목표가 좀 더 보이는 느낌이랄까? 쪼금 더 체계적으로 팀 내, 팀 간 협업이 이루어졌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이 팀 목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알 수 있으니 내가 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Weekly Check-in 미팅에서 내가 달성한 목표를 지워나가는 성취감도 짜릿했다.
그럼에도. 지금이야 이전 경험을 정리하느라 단계별로 설명하듯이 담담하게 기록하지만, 당시엔 정말 모두가 힘들었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한 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니, 그래도 어찌어찌 선방했던 이유는 모두가 힘듦과 성취를 서로 조금씩 나눠가지면서 꾸역꾸역 실행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문화를 잘 정착시키려면 팀원 간 상호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이 이런 건가 보다.
도입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크게 2가지였는데, 바로 위에서 중요하다고 했던 1) OKR 잘 작성하기와 2) OKR 잘 관리하기였다. 즉, OKR의 전부 다 어려웠다^^;
1) OKR 잘 작성하기
OKR은 겉보기에 그렇게 특별하고 유별난 툴은 아니다. 어디선가 사용해본 적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박한 툴이다. 그 이면에 있는 OKR의 철학과 문화에 공감하지 못하면 제대로 실행할 수 없다. 하지만 철학이나 문화는 추상적인 것이라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공감하기 어렵다. 그래서 꾸역꾸역 실행해보고 그 효과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했던 것 같다. 완전하게 공감되지 않아도 대표님과 OKR 셰퍼드를 믿고 꾸역꾸역 같이 실행해줬던 팀원들이 너무 고맙고 대단하다!
2) OKR 잘 관리하기
OKR을 관리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된다. OKR이 계속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진행 상황을 파악해야 하고, 그걸 다른 사람들이 자주 싱크 업될 수 있도록 문서 작업도 해야 한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서로를 위한 문서 작업을 해본 적도 없고, 오히려 문서나 미팅이 많아짐으로써 수반되는 주객전도 문제에 더 예민했던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실행하는 사람들도 더 힘들었을 것이다.
OKR TFT도 혹시나 문서 작업 때문에 OKR에 대한 반감이 생기지 않을까, 주객전도 되지 않을까 주의하며 사람들이 단순한 tool로서의 OKR이 아니라 OKR의 철학과 효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동시에 문서 작업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방법과 매니저들이 각자 본인들만의 관리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외 처음 도입하는 것이다 보니 '이게 되고 있는 건가..?' 하는 혼란스러움과 운영의 미숙함으로 인한 리소스 낭비 등의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도입기 이후로 더 운영을 해 나가면서 팀과 맞는 운영 방식을 찾으며 해결해나갔다.
책 한 권 + 팀원들의 상호 신뢰 + 고통을 수반한 실행 = OKR 도입 성공!
짧은 도입기동안 OKR을 완벽하게 정착시키는 것은 힘들었지만, 각 팀 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테스트해봄으로써 우리가 앞으로 OKR의 4가지 슈퍼파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OKR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실행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OKR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OKR TFT가 개입을 많이 했고, 관리하는 툴을 개발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도입기 이후에는 OKR TFT는 해산하고 각 매니저가 이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리고 팀원들도 각자 OKR을 작성하고 관리하게 되면서 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아련) 그래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그만큼 성장했다는 거니까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해내는 과정도 또 나름 재밌다. (요 내용은 따로 또 기록해야지)
OKR을 처음 알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약 2년 동안 OKR을 시행해오면서 OKR은 스캐터랩 문화와 일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OKR을 얼마나 잘 작성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분기 목표 달성 정도가 달라진다. 분기별 이터레이션과 회고 문화도 OKR과 함께 생겨났으니 스캐터랩의 일하는 문화는 OKR 도입 전과 후로 나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그냥 OKR을 적용한다고 뚝딱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문화나 그렇듯이 OKR도 팀원들의 신뢰와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스캐터랩 사람들 쩨일 최고!!!!!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추가) 그냥 남기고 싶어서 쓰는 OKR 도입 느낀 점 요약
- OKR을 체험해봤다!
- 모두가 우리의 목표를 알고 있다는 것이 느낌이 좋다.
- 챡챡 일이 진행되는 게 보여서 기분이 좋다.
- 문서 작업은 조금 힘들다. 우리 팀에 더 잘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 사람들이 tool이 아닌 철학에 집중하도록 하는 게 어렵다.
- 운영이 만만치 않다.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을 덜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필요하다.
L. John Doerr(2019). OKR(박세연 옮김). 세종서적. (원서 출판: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