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45

그릴 수 있게 하는 사람

by yeji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의 상황을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설명하는 데에 시간을 쏟는 사람. 일이 있으면 이런 일이 있어서 언제까지 바쁠 것 같아요, 약속을 취소하면 이런 일이 있어서 다음번 이 날에 다시 만나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가 이런 이유가 있어서 이런 걸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걸 정리하다 보니 나를 타인으로 하여금 그릴 수 있게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다른 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않도록 투명하고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 그런 사람은 상대방을 배려해서 자신의 달라진 점을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바뀐다. 스스로 바뀌기도 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 나도 바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기본값이다. 그래서 바뀌는 것을 공유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고 기쁜 일이다. 어떠한 경험으로 영향을 받았고 아직도 말랑하며 아주 굳어버리지는 않았다는 증거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바뀌는 과정을 억지로 숨기려고 할수록 수렁에 빠질 테다. 아주 사소하게 바뀌던 것들이 쌓이면 나중엔 스노우볼이 되어 나에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올 것이다. 그것을 감당하느니 나는 차라리 자주 작게 빠르게 공유한다. 너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나를 위해서 그렇다.

나의 일과 일상을 쉽게 그려지는 사람들로 채우고 싶다. 수시로 변해도 좋으니 그 변화를 숨기지 않을 사람들로 꽉 채우고 싶다. 더 조잘조잘 변화하는 모습을 세상에 내어놓는 이들과 있고 싶다. 그러면 나도 계속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