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전략경영회의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광고시장 22년 결산 및 23년 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발표 목적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큰 맥락에서 익숙함에 틈새를 내는 것을 첫 번째 발표 목표로 둔다. 틈새를 낸 후, 발표내용을 들으며 나의 상황을 접목시키고,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해볼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마음에 불을 붙이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한다. 청중 중 딱 1명이라도 움직이면 그 발표는 성공!이라는 일념으로.
이번 주제는 관련 분야 종사자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다. 2023년 경제는 어렵고, 광고시장도 밝지 않을 거라는 것. 뻔한 얘기를 듣는 건 고역이니, 시사점을 분명히 전달해야 했다. 전체 흐름과 세부적인 주목할 거리들로 구성했다.
특히 사람의 ‘감정’은 좋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불확실성’은 사람에게 ‘불안’을 낳는다. 불안은 대개 없애고 다스려야 할 존재로 얘기되고 있지만, 불안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더 나아질 수 있었고. 불안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자는 내용을 전하고자 했다.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고. 익숙한 방식, 익숙한 영역만 보지 말고 확장해서 보고 미래를 그려보자고 권했다.
발표를 마치고, 발표자 의자로 돌아왔다. 다른 분들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했다. 발표 관련 의견을 간간히 받으면서, 방금 있었던 발표를 복기했다. 잘했던 점과 채워나갈 점을 생각했다.
홀가분함이 들지 않았다. 왜 그럴까 이유를 찾아봤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명쾌한 한 마디, 발표를 듣고 난 후 다음을 위한 한 마디가 부족했다.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성 제시가 부족했다. “미 재무장관 얘기를 했으니, 공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 바로 ‘액체사회’라는 점을 얘기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엉뚱한 상상’을 허하라!!!!’라고 외쳤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위기는 기회입니다! 어렵지만 희망이 담긴 말로 마무리를 짓겠다’는 클리셰로 마무리를 했다. 그럼 뭐라고 말하면 좋았을까 머릿속으로 말해봤다. (다른 곳에 꼭 써먹어야지.)
“미 재무장관은 지금 경제는 본인이 기억하는 한 가장 읽기 어려운 경제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학자 ‘바우만’이라는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액체’에 비유했습니다. 미래가 예측되는 고정된 고체사회가 아니라, 불확실하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불안이 당연한 ‘액체사회’가 도래했다고 바우만은 이미 얘기했습니다.
2023년, 불확실성이 더욱 증폭됐습니다. 익숙한 공식이 통하지 않은 때입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공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익숙함을 깨야겠죠.
익숙함을 깨는 건 인간의 본성상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 “엉뚱한 상상!!!”을 허하는 겁니다. 나에게, 팀원에게, 조직에게.
엉뚱한 상상은 익숙한 공식에서 벗어나는,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행동입니다. 뒤집어 보고 엎어보고 찢어보고 붙여보고요.
조직 안에서 엉뚱한 상상을 해보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가능하기를 희망해 봅니다!”
‘엉뚱한 상상’은 뭘까, 엉뚱한 상상은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는 중에 호제가 떠올랐다. 엉뚱한 상상의 최고봉이다. 호제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엉뚱한 상상을 한다. 나는 아이들의 엉뚱한 상상을 사랑한다. 존경한다. 그리고 너어어어무 부럽다.
호제가 했던, 나를 당황시키거나, 웃게 만들었던 상상을 하나씩 떠올렸다.
1. 귀털과 코털이 삐져나온 그림책을 보며, 코털과 귀털이 우리 키만큼 자라 나오면 뭐 하고 싶어? 난 털 뭉치를 잡고 줄넘기를 할 거야.
2. 우리가 아파트처럼 커지면 어떨까?
3. 엄마가 100명이 됐어., 진짜 엄마는 누구야? 엇, 엄마! 내가 5명이 됐어. 진짜 나는 누구게?
4. 지구 가운데를 지나는 통로를 뚫어 이동할 거야.
5. 자동차에 우주선 부스터를 달면 어떻게 될까?
6. 얼음 가운데 공간을 만들어 물을 넣어. 그러면 어떻게 될까?
7. 전기가 억만 볼트로 흐르면 어떻게 될까?
8. 무한 + 무한=?, 네모 + 세모=?
9. 온갖 베개로 자동차를 만들고, 커튼 끈으로 앞 좌석과 뒷좌석을 나눈 뒤, 뒷좌석에 동물 인형을 모두 태운다. 지구본을 돌려 행선지를 가리키면, 순간이동을 한다. 동물들과의 피크닉 세계일주. 뿅. 슝.
10. 산타클로스는 어떻게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행동을 다 아는 거지? 그것도 1년 내내?
11. 엄마, 우리 가족은 썬더맨 패밀리(Thunderman Family)야. 절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려선 안 돼. 알겠지? 유치원 선생님한테도 알리면 안 돼. 인터넷에도 안 돼. 그래도 알릴 거지? 전기파워! 지지지지직!(미안하다. 너의 직감이 맞았어. 지금 온 동네방네 소문내고 있는 중...)
등등등.
‘엉뚱하다’는 건 1.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2. 말이나 행동이 분수에 맞지 아니하게 지나치다. 3. 사람, 물건 일 따위가 현재 일과 관계없다. 는 의미를 지닌다(네이버 사전).
‘상상’은 1.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 2. 외부 자극에 의하지 않고 기억된 생각이나 새로운 심상을 떠올리는 일이라고 사전에서는 말한다(네이버 사전).
그렇다면, 엉뚱한 상상은 경계를 넘나들고, 관계가 없어 보이는 요소를 연결하며,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해 마음속으로 마음껏 그려보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호제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더욱 강렬하게 경계가 허물어질 것이다. 익숙한 공식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기본/정수를 찾는 것과 (2) 익숙함에서 벗어나 다르게 생각하며 정리하고 행해보는 것.
그런 의미에서 호제를 비롯한 많은 어린이들의 엉뚱한 상상이 지속되길 바란다.
어른들의 엉뚱섬*에도 다시 불이 켜지길!
* 주인공 라일 리가 가지고 있는 하키섬, 엉뚱섬(Islands of Goofball), 우정섬, 정직섬, 가족섬 중 하나를 말함.
엉뚱한 상상을 허하라!
참고문헌
- 피트 닥터 (2015). <인사이드 아웃>, 월트 디즈니 픽처스. Pete Doctor (2015). Inside Out.
- 네이버 사전
- 서지원 (2023. 2. 5). '디스인플레이션' 선언했는데 일자리 급증… 셈법 복잡해진 연준. <중앙일보>. URL:
https://www.joongang.co.kr/amparticle/25138345
- Bauman, Z. (2013). Liquid modernity. John Wiley & Sons. 이일수 역(2009). <액체근대>.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