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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Nov 10. 2023

펜싱선수 시키실 거예요?


“펜싱선수 시키실 거예요?”


주말에 펜싱대회를 자주 나가는 것 같다며 헬스장 선생님이 물었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나의 무의식 대답이 곧장 나왔다.


“우오우, 저는 안 시키고 싶어요. 자신이 없어요. 운동선수 엄마할 자신이 없어요. 제가 아이한테 운동선수 엄마로서 잘해 줄 수 있을까 싶어요. 저도, 신랑도 운동 분야에 있질 않아 경험치가 없어요. 잘 안 그려져요. 지금은 본인이 열심히 하고자 하니 응원해주고 있어요.”


선생님의 부모님은 어떠셨는지 물었다.


“체육 전공한다고 하셨을 때, 부모님은 뭐라 하셨어요? 지필공부도 하고, 운동연습도 해야 하잖아요? “


“저희 부모님은 제가 하는 거를 특별히

막거나 하시는 분이 아니셔서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그러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이가 하고 싶으면 하겠죠. 저도 엄마아빠 말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날의 질문과 나의 답이 머릿속에서 나가질 않았다. 내가 추구하던 이상향과 나의 대답이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인지부조화였다. 왜 충돌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대답을 보면, ‘예체능을 전공하는 부모‘의 전형(prototype)이 굳건했다. 부모 중 한 명은 전적으로 아이와 일상을 함께하며, 때로는 선생님, 때로는 페이스메이커, 때로는 독설가, 때로는 매니저 등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 예체능 전공자를 둔 부모의 바람직한 모습이라 여겼던 것이다.


박세리 골프선수, 김연아 피겨스케이트 선수, 손흥민 축구선수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님이 낸 책, 손흥민 일상이 담긴 다큐멘터리, 손웅정 님이 출연한 유퀴즈까지 챙겨봤던 터라 운동선수의 부모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했을 터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도 깔려 있었다. “저도, 신랑도 운동 분야에 있질 않아 경험치가 없어요. 잘 안 그려져요.“에서 아주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내가 살아왔던 시대와 다르니 ‘내가 모르는 직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자주 얘기해 놓고 상반된 답을 건넸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았나 보다. 아니면 그때의 내 생각과 지금의 내 생각이 달랐던가.






머릿속으로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갔다.


‘펜싱선수 엄마, 펜싱선수 엄마? 맙소사. 그럼 나 이제 사찰로 108배하고, 성당과 교회로 새벽기도 가야 하는 건가? 그럼 나 일 그만둬야 해? 매니저 해야 하는 거야?


Chat-GPT가 그려낸 한국 초등학생 펜싱선수를 둔 30대 엄마 모습. (created by Taejun Park w/Bing) Chat-GPT의 전형과 고정관념이 돋보임.


오, 노우우우우우우우우. 난 일하는 내가 좋은데?! 아직 영글지도 않았는데, 벌써 포기할 수 없는데. 으허허헝.


운동선수 엄마는 꼭 아이 옆에 있어야 하나? 펜싱장의 엘리트 선수반 학생들을 보면, 아이 옆에 항상 붙어 있는 것 같진 않던데. 하지만 병원, 레슨, 진학 등등은 꽤 신경을 쓰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난 내 일을 포기 못하겠다.  직장에 안 다니더라도 뭐라도 할 것 같다. 업을 못 놓겠는데, 으헝헝헝. 내 일을 하며 키운 부모들도 많은 거 아냐?!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꽤 유명한 수많은 선수들의 부모도 밥벌이를 해나갔잖아. 업을 반드시 놓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면 내가 참고할 만한 부모상은 어디 없을까?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 영역의 부모를 살폈다.


손열음 피아니스트 엄마가 번뜩 떠올랐다. 엄마가 본래 가지고 있던 일을 계속하며, 손열음이 독립적으로 씩씩하게 피아노를 쳤다는 기사가 기억났다. 검색해 보니 바로 나온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인 최현숙 여사. 손열음이 7세 때 일을 그만두고 뒷바라지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손열음이 6세 때 학원에서 더 좋은 스승이 필요하니 서울에서 개인레슨을 받으라는 추천을 했단다. 그때부터 원주에서 서울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레슨을 받으러 같이 다녔다. 서울로 레슨을 다닌 지 1년이 됐을 무렵, 최현숙 여사가 손열음에게 ‘엄마 일 그만두고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열음이 옆에 함께 있을까’라며 물었다. 그때 손열음은 싫다며, 엄마가 선생님인 게 좋다고 답했다. 그 뒤로는 일을 그만둘까에 대한 고민은 안 했다고 한다.


심지어 국제대회에 손열음 혼자 출전한 일화도 있다. 1997년, 초등학교 5학년, 만 열 살의 나이에 손열음은 홀로 러시아 대회에 참석했다. 심지어 모스크바에서 국내선 환승을 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 내려, 다른 나라 참가자들과 만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러시아어도 영어도 못하는 초등학생이 홀로 해냈다. 심지어 여기서 1등이 없는 2등을 했다.


최현숙 여사는 개학 직전부터 학기 초 기간이라 바빠서 못 가고, 외환위기로 아버지 사업이 어려웠던 시기라 경비도 넉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최현숙 여사가 손열음에게 정성을 쏟지 않은 게 아니다. 그만의 방식으로, 그보다는 (내가 생각할 때는) 관계에서 가장 기본인 원칙들을 지켜나가며 손열음의 성장을 도왔다.  


그런 엄마를 손열음은 “스스로 걷게 하는 엄마”, “손은 잡고 있으되 안거나 업어서 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걸어서 갈 때까지 기다리는 엄마”라고 레이디경향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의 생각이 조금씩 다듬어졌다.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 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을 아이가 파더라도 엄마로서의 나는 내 생활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살아감에 필요한 기본기 쌓기에 알려줄 수 있는 부분은 알려주고,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응원해 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가 가본 길이건 가보지 않은 길이건 간에 말이다.



호제는 호제의 삶, 나는 나의 삶, Y는 Y의 삶. 그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은 함께 하는 것. 우리 각자 자신의 집합을 가지고 교집합이 생기면 함께 하고. 교집합이 없다면 손잡고 서로 이끌고 밀어주는 거는 가능하지 않겠니. 교집합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면 되겠지. 아름다운 거리에서 얻는 재미도 쏠쏠할 거야.





덧,


호제야, 이미 난 너무 재밌어! 이제는 호제처럼 나도 펜싱대회가 기다려져. 초반에는 내가 힘들기도 해서 대회를 쉬었으면 할 때로 있었어. 하지만 호제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지. 시간이 지날수록 호제가 나아가는 것도, 내가 느끼는 것도 매번 달라서 더 기대돼. 매력적인 시간을 선사해 줘서 고마워, 호제야!




참고문헌

• 문학수 (2013. 2. 20). 피아니스트 손열음 "나는 비주류적 취향을 갖고 있어요". <경향신문>. URL: https://www.khan.co.kr/article/201302202103055

• 강은진 (2015. 7. 1). 최현숙 여사와 피아니스트 딸 손열음의 어떤 앙상블. <레이디경향>. URL: https://lady.khan.co.kr/issue/article/201506291058031

• 박형수 (2016. 5. 25). [최고의 유산] 음악은 경쟁 아닌 몰입, 결과에 초연한 엄마에게 배웠죠. <중앙일보>. URL: https://www.joongang.co.kr/article/20074068#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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