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예지 Apr 19. 2024

소중한 마음과 선생님의 열심


- 소중(所重)하다: 매우 귀중하다
- 열심(熱心):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또는 그런 마음.
<네이버 사전> 참조



어릴 적 읽었던 만화책에 나온 질문이다.


국가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대상은 누구일까?


답은 선생님. 특히 자기 자녀를 봐주시는 선생님이라면 더욱더 상체를 숙여 예를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잊었던 내용이 아이를 낳고 나니 번뜩 떠올랐다. 무슨 말인지 더욱 와닿는 순간이 많다. 아이의 잠재력을 믿고, 아이가 잘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채고 북돋아주는 선생님. 얼마나 고마운가!






아이가 출전하는 펜싱대회에 가면, 보통 4개의 주요 역할을 만난다. 출전선수, 코치 선생님, 심판, 관객/보호자. 때에 따라 여기에 운영진, 건물관리인 등이 추가된다. 나의 역할은 관객/보호자다.


관객석에서 경기장을 바라보면, 출전선수, 심판, 코치 선생님의 트라이앵글 구도가 보인다.



- 출전선수:

소리 지르며 마스크 끼기, 피스트에 올라서서 스트레칭하며 몸풀기, 각종 기술 구현하기, 승리의 포효, 패배의 분함과 슬픔 표현하기 혹은 참기


-심판:

뚜슈(찔렸다)-포인트(득점) 손짓,

공격을 너무 안 할 때는 흰색과 검색은 카드 꺼내기,

마스크 던지면 주의주기,

꼬꼬마 아이일지라도 직접 본인이 사인하게 하기


-코치 선생님:

경기가 일어날 피스트에 데리고 가기,

선수에게 내적 힘을 넣어주기,

전략, 전술 알려주기,

의자와 물 챙겨주기,

선수가 뒤를 돌아볼 때, 자리 지키며 잘하고 있다는 믿음의 눈빛 보내기

울면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어주기,

폭 안길 수 있는 가슴을 내어주기,

기쁨 함께 나누기,

슬픔 다독이고 위로하기,

다음을 도모하기 등등


코치 선생님이 하는 역할은 지금 적은 것보다 훨씬 많다.


경기를 시작하면 경기장을 울리는 선생님의 기합 소리, 행동을 만난다. 너는 할 수 있고, 이것저것 해보라는 소리들. 그리고 잘했다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펜싱경기를 선수가 혼자 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심판도, 특히 코치 선생님도 함께 뛴다. 칼을 직접 들지 않고, 움직임이 적을 뿐이다.


보통 스포츠 경기 중계화면에는 선수만 집중적으로 나온다. 어떤 경기든 실제 경기를 보면, 카메라 밖에 있는 코치 선생님들도 움직임이 적긴 하지만, 분명 경기를 같이 뛰고 있는 걸 알게 된다.






호제의 8강 경기를 보러 이동했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와아-! 엄마손파이 오늘 왜 이렇게 맛있지?!”


아직 경기시작 전이라 뒤통수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 ‘엄마손파이, 맛있지. 나 어릴 때에 비해 담백해지고, 크기가 좀 작아진 것 같아’라고 혼자 생각하며 뒤돌아봤다.


호제가 다니는 펜싱클럽의 다른 지점 원장님이셨다.


이날 유난히 다른 대회 때보다 휴식시간 없이 경기장에서 계속 코칭하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여느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큰 목소리와 몸짓으로 코칭을 하면서 말이다. 멀리서 봐도 득점하면 좋아하고, 찔리면 아쉬워했다. 몇 개월 만에 뵈었다.


“안녕하세요. 다윗 원장님! 오랜만에 뵈어요. 오늘 정말 고생 많으시던데. 엄청 열정적으로!”


입에서 열정과 말이 앞으로 쏟아져 나오는 손모양을 취하며 말했다.


다윗 원장님이 말했다.


“애들의 소중한 마음을 아니까 저도 막 열심히 하게 되어요. 애들이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거 아니까.”


호제의 8강 경기가 시작하려 해 너무 고생 많으시다는 얘기로 대화는 끝났다.






대회를 치르고 온 날 밤, 가족이 모두 잠들었다. 나도 자려고 눈을 감았다.


갑자기 다윗 원장님이 말씀하신 ”소중한 마음“, “열심히 한 거 아니까”라는 두 문장이 번뜩 떠오르며 눈물이 차올랐다. 아이와 관련된 건 아름다운 거리를 두고 차갑게 보려 하지만, 잘 안 된다. 이렇게 뒷북으로라도 뜨거워진다. 지금 가슴이 벅차오를게 뭐람.


경기장과 대기석을 가득 매웠던 잘하고 싶은 소중한 마음들, 경기 전까지 열심히 연습하던 많은 아이들이 떠올랐다. 겨울방학 내 땀 흘리며 연습했던 호제와 호제네 펜싱클럽 친구들. 잠실 실내체육관 곳곳에서 마지막까지 연습하던 다른 클럽 선수들과 코치 선생님들.


누군가의 매우 귀중한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이 결과로 이어지는 여정을 지지하며 함께 하는 코치 선생님들.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될 거야”, “잘 되게 해야지”라며 정성을 다해 골똘하게 힘써주는 마음과 행동을 곁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게,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좁게는 펜싱, 넓게는 스포츠가 가지는 여러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관계 속에서 저절로 빛나는 질박한 아름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