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예지 Apr 26. 2024

끝까지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지 못한 자


서울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간 건 처음이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는 타 지역 개최 때보다 거의 2배 넘는 선수가 출전한다. 그만큼 사람의 오고 나감이 크게 드러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적이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천천히 빠져나갔다. 실내체육관을 채우던 사람의 온기도 줄어들었다. 마지막까지 남는 자는 남는 자대로 외롭고 춥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펜싱대회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이날 참가자는 남은 순서대로 우열이 가려진다.


끝까지 남은 자는 남은 자대로, 먼저 자리를 뜬 자는 뜬 자대로 자신의 시간 속에 있다. 지는 사람, 이기는 사람 모두 각자의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나의 기준에서는 우열이 있겠지만,

다른 시각에서는 우열이 없다.


 


이겼을 때의 감정


이기면 기분이 좋다.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다. 호제가 경기영상을 보며 복기하다가 대뜸 말했다.


“엄마, 나 이때 이기고 상대선수한테 좀 미안했어.”


나는 두 눈이 동그래졌다. 승부욕 넘치는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왜??????”


“있잖아. 그 친구가 (관객석에 있는) 할머니를 보고 ‘할머니, 나 졌어’라고 말하더라고.”


“아, 그랬구나. 그래서 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아니, 그건 아니지. 미안하지만 이겨서 기분 좋았어!!!!! 너무 뿌듯했어!!!!” 미안한 표정이 금세 밝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졌을 때의 감정


지면 슬프다. 분하다. 속상하다. 마음이 쓰리다. 눈물이 차올라 터진다. 6세 호제는 선생님과의 연습경기에 졌다고 분해서 펜싱장을 뛰쳐나갔다. 7세 호제는 잠시 참다가 결국 울었다. 8세 호제는 대회에서 지면, 대기석 돗자리에 벌렁 누워 울고, 서서 울고, 식음을 잠시 전폐하기도 했다.


경기장을 빠져나갈 땐, 축 처진 어깨로 다리를 터덜터덜 거린다. 어떨 때는 씩씩거림을 멈추지 못하고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눈이 많이 왔던 어느 겨울날에는 어느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아 했다. 홀로 길이 아닌 눈 쌓인 작은 언덕을 올라갔다가 나무를 가운데 두고 길이 엇갈려 나를 찾아 뛰어다녔다. 떨어져서 속상한데, 엄마까지 잃은 줄 알아 놀람과 속상함, 슬픔은 배가 되기도 했다.






탈락이 내 존재의 탈락은 아니야


경기에서 탈락했다고 세상이 끝난 건 아니다. 나의 존재 가치가 떨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기대하지 못했던 기회를 만나기도 한다. 맛난 음식을 먹을 기회, 태도를 돌아볼 기회, 다음을 준비하는 기회, 새로운 곳을 갈 기회 등등.


메달권을 목표로 나갔던 수원시펜싱협회장배에서 호제는 16강에서 떨어졌다. 그 덕분에 인생 양념갈비를 만났다. 패배의 슬픔에 잠겨 밥을 먹지 않겠다는 호제가 제일 많이 먹었다. 아직까지 수원에서 먹었던 양념갈비를 뛰어넘는 갈비를 만나지 못했다.


금메달을 쉽게 딸 거라 생각했던 인천 경기에서는 8강에서 떨어졌다. 차이나타운에서 맛난 음식도 먹고, 주변도 잠시 둘러봤다. 돌아오는 길에 눈이 너무나도 많이 내려 앞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4강, 결승전까지 갔다면, 출발부터 눈이 많이 쌓여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오히려 빨리 떨어진 게 꽤나 다행인 상황이었다.


호제는 첫 방문이었던 인천 차이나타운. 바람은 매섭고 추웠다.


호제는 메달권 성적이 아니었던 경기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을 다듬어 갔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연습할 거라고 큰 소리를 쳤고,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눈여겨보고 따라 하기도 했다.


 


 


끝까지 살아남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과정에 내가 최선을 다 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지금 내가 포디움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끝까지 올라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또 해보는 거다.


펜싱이 나인 것처럼 연습하되,

결과가 나인 것처럼은 여기지 말기.


이게 아니다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니 반갑게 맞이하면 된다. 다른 트랙에 서 있더라도 내가 최선을 다했던 나만의 방식은 나에게 남아 있을 테니 그걸로 충분하다.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자와

끝까지 살아남지 못한 자.


기준 하나로만 보면 그렇지만,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러니까

펜싱을 잘한다고 우쭐할 필요 없고,

펜싱을 못 한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나는 여러 모습의 나로 살아가니까. 펜싱이건 그 무엇이건 여러 개중 하나일 뿐이니까.



첫 대회 때 만든 자체 제작 플랜카드. 24년 첫 대회 때는 응원 야광 머리띠를 하고 있어달라는 호제의 요청이 있었으나 차마 하지 못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