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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May 03. 2024

아프고 아프다, 물집과 근육통



호제가 갑자기 운다. 식탁에 앉아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다가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일그러지더니 ‘으아아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거실 소파에, Y는 거실 매트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Y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더 크게 울며 외쳤다.



“아-!! (흑) 파-!!” 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부리나케 Y는 바닥에 붙은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호제에게 갔다. 호제는 빨개진 손가락을 Y에게 보여줬다. 물집 생기는 거 아니냐며 ‘으아앙’ 또 울었다. 오른손 근육도 아프다고 얘기했다. 펜싱칼을 잡으며 생긴 마찰로 손가락 부위가 빨개졌다. 여전히 무거운 칼을 잡고 연습하느라 손과 전완근에 힘을 줬던 모양이다. Y는 호제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펜싱, 열심히 했나 보네. 열심히 한 흔적이야. 여기가 아플 수밖에 없어. 좀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야. 지나가는 과정이야.”


 


Y는 냉장고에서 냉찜질팩을 꺼내 호제에게 쥐여줬다. 생각을 더듬어 보니 이날 호제를 데리러 펜싱클럽에 갔을 때, 요셉 원장님이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호제가 레슨 할 때 팔이 아팠을 텐데 절대 아프다는 말을 안 했다고, 승부욕이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팔이 아픈 게 뒤늦게 느껴졌나 보다. 아니면, 숙제하기 싫은 마음이 아픔에 불을 지폈거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모습을 소파에 앉아 보고 있자니, 내 손에 물집이 잡혔던 순간이 떠올랐다. 뿌듯한 과정이라는 걸,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걸,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말을 거들었다.



“호제야, 단단해지고 있는 과정이야. 바이올린 연습할 때도 물집이 잡혀. 처음부터 잡히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꾸준히 연습을 하면 왼쪽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단단해진다!? 발레리나도 그래. 발에 굳은살 엄청 많아! 연습을 많이 하면 생겨. 굳은살이 생기면, 더욱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그 주 일요일 저녁, 나, Y, 호제, 셋이서 통증과 자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본적인 자세 연습을 반복해서 할 때 나타나는 근육통과 바르지 않은 자세로 할 때의 근육통은 구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바르지 않은 자세로 생기는 근육통은 일시적으로 병원 치료로 없앨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내가 스스로 신경 써서 바꿔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무엇이 기본이고, 나에게 불필요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과 선후배 등 주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는 거다.



결국 내가 잘하고 싶을 때 따라오는 ‘아픔’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함께 하는 수밖에 없다. 아프다고 물리적 연습 시간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습을 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양질의 연습에서 오는 아픔인지, 부상이나 부정확한 자세에서 오는 통증(pain)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참 잔인하다 싶기도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자연의 섭리다. 추위를 견뎌내고, 딱딱해진 땅속에서 중력을 거스르며 새싹을 뻗어내는 과정도 수많은 시도와 아픔을 헤쳐 나간다. 땅속을 벗어났다고 끝난 게 아니다. 땅 밖에서의 생이 또 시작한다. 수많은 시도와 아픔의 극복. 끊임없는 반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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