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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Jul 22. 2024

잘하고 싶은 마음


이제 8강이다. 8강에서는 같은 클럽 친구와 만난다. 펜싱을 아주 잘하는 친구이자, 지난 두 번의 대회 결승전에 만나 호제가 연거푸 졌던 친구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호제의 얼굴이 굳었다.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번에 우리가 메달 다 따기로 했는데…“


지난 두 번의 연속 대회에서 1-3위를 호제네 클럽 친구들이 모두 거머쥐었다. 이번에도 그러자고, 1학년 1명, 2학년 3명이 4강을 모두 차지하자며 아이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다.






호제 얼굴의 잔근육이 조금씩 일그러지더니 울기 시작했다. 온 얼굴로 울었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줄줄 흘렀다. 얼굴의 땀구멍에서도 땀이 송송 맺혔다. 찜통 같은 체육관, 16강 경기를 뛰고 와 이미 열려 있는 땀구멍, 너무나도 비통한 호제의 몸이 서로 만나 호제의 감정은 더욱 극적으로 보였다.


“우리 다 메달 따기로 했는데 (흑흑흑) 나 메달 따고 싶은데 (으헝헝헝)“


호제 옆에 앉아 내 어깨를 호제에게 내어줬다. 잠시 진정하는가 싶더니, 다시 흐느꼈다. 내 왼쪽 팔로 호제의 상체를 감쌌다.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온 호제 얼굴이 내 가슴팍에 묻혔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다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 정말 메달 따고 싶은데 (으흑흑흑) 나 메달 따야 한단 말이야. 나 곰돌이 인형이 정말 갖고 싶어. (흑흑흑흑).“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나. 작년에는 메달리스트에게 상장, 메달, 순위마다 색깔이 다른 곰돌이를 부상으로 줬다. 작년에 호제는 수상하지 못했다. 이번에 금메달을 딸 거라더니 곰돌이 인형이 너무 갖고 싶었나 보다.


몇 분을 더 울었다. 경기 시작도 전에. 주변 어머님들의 응원과 관중석은 너무 더우니 1층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조언을 듣고 그제야 움직였다. 왜 호제는 엄마말은 바로 안 듣고 타인의 말은 잘 들을까.


1층으로 이동하다 곰돌이를 만났다. 그 앞에 호제와 내가 멈췄다. 그리고 호제는 곰돌이 다리 한쪽을 조심스레 만졌다. 마치 돌하르방을 만지며 소원을 비는 사람처럼. 이 치명적인 간절함과 매력, 어쩜 좋니.


1층 로비에 있던 곰돌이 인형. 밝은 갈색의 곰돌이 기준 왼쪽 발을 호제는 살포시 즈려 잡았다






울먹인 흔적의 얼굴을 본 선생님이 호제를 보고 하기 싫으면 기권하고 가라고 얘기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호제는 할 거라고 얘기했다고 했다.


나도 옳다거니 싶어, 기권하고 싶으면 하고, 중간에도 하다가 못하겠으면 그만두라고 했다.


나는 관중석에 돌아왔다. 마음 한 켠이 찝찝해 왔다. 정말 그만두면 어떡하나 싶어 다시 내려왔다. 선생님이 평소 호제와 나누는 대화에서의 기권과 나와 호제가 나누는 대화에서는 기권은 다를 수 있으니까.


1층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호제에게 말했다.


“호제야, 마지막으로 엄마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


호제가 이렇게 눈물이 나고 두려운 건 호제가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야. 엄마는 잘하고 싶어 하는 호제의 마음이 참 귀해. 이 귀한 마음 잘 가지고, 끝까지 해보자. 최선을 다해보자.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상황이 나오면 피할 거야? (호제가 고개를 내저었다.) 피한다고 피해지지도 않아. 언젠가는 어려움을 또 만나. 더 많은 어려움이 앞으로 올 텐데 이번에 연습해 보자. 두려워도 부딪혀 끝까지 해보는 거. 이거 연습하려고 운동하고, 대회 나오는 거지.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겨도 찝찝하고, 지면 더 속상해.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해보자. 할 수 있어, 호제!”


긴 얘기를 호제는 고맙게도 귀 기울여 줬다.






8강에서 호제는 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옆에서 지켜본 바, 스포츠의 세계는 간절함만으로는 우승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 영역이 어디 있겠냐만은.) 간절함을 담은 켜켜이 쌓은 연습과 성장이 기반이 되어야 경기 당일날 간절함이 운으로 바뀌는 듯하다.



경기를 끝내고 관중석으로 호제가 돌아왔다. 나를 보자 얼굴이 다시 일그러지며 눈물을 쏟아냈다. 호제를 안으며 나는 말했다.


“엄마는 끝까지 해낸 호제가 자랑스러워.“


위쪽 관중석에 호제와 함께 앉았다. 호제는 더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앞에 계시던 어머님들이 뒤돌아보셨다.


“호제의 속상한 마음, 잘 알지. 엄마는 호제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서 엄청 자랑스러워.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찔린 게 아니라 호제가 시도를 해보다가 찔린 게 얼마나 대견하고 멋진지!


인생이 전쟁이라면, 지금 이 대회는 전투야. 여러 전투 중의 하나지. 지나고 나면 이 전투도 전쟁 안의 하나가 될 거야. 전투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길게 보자. 뭐든.”


방학이라 인디애나에서 한국으로 잠깐 나온 형이 호제에게로 다가왔다. 형도 8강에서 2점 차로 졌다고 얘기했다. 호제도 8강에서 떨어졌다고 얘기했다.


형은 한 손을 들어 올려 호제에게 하이파이브를 제안했다. 호제도 한 손을 들어 올려 형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둘의 모습을 보며 나는 힘주어 말했다.

“I am proud of you! you! all!!!“




내년 방학을 기약하며, 대회 인증샷을 남기로 스스로 포토스팟을 찾은 둘. 찍고 보니 현수막 인증샷이 되어버림. 둘의 빨간 볼, 땀에 젖은 머리칼이 얼마나 열심히 임했는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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