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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Jun 14. 2024

‘영광’과 ‘초라’는 순간, ‘일상’은 지속


아침에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새어 나왔다. 어제 일은 꿈이었던가. 이 기분은 뭘까. 영광의 순간은 흩날렸고, 속상했던 마음은 녹아 없어졌다. 잠만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말이다. 그 어떤 것이건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흐르는 물처럼.






어제는 호제의 펜싱대회 날이었다. 이번 대회는 대회 일주일 전부터 당일까지 내가 꽤 긴장했다. 먼 거리라 하루 일찍 도착했다. 경기를 뛰는 사람은 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긴장했을까를 돌이켜보니, 호제가 좋은 성적을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감과 노력이 언제나 좋은 성과를 끌어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졌을 때 호제의 성질부림과 속상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마주해야 하면 어쩔 수 없지만,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호제를 비롯해 같은 클럽 선수들의 쫄깃한 경기를 아침부터 오후까지 지켜보고 저녁 무렵, 집에 도착했다. 퇴근한 Y와 호제는 저녁 식사를 한 뒤, 경기 영상을 복기하며 이날의 기쁨과 속상함을 나눴다. 왼손잡이 펜서와의 경기를 극복했다는 기쁨이 컸다.


photo by 유한나








다음 날, 똑같은 일상이 시작했다. 호제는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고 말했다. 나는 주말 아침마다 먹는 똑같은 식단을 차려 호제에게 줬다. 계란찜, 계란 프라이, 메추리알 장조림, 바나나, 요구르트, 과일. 호제는 숙제를 조금 하다가, 안 할래! 를 외쳤다가, 다시 하다가를 반복했다. 숙제를 끝낸 뒤에는 놀자! 놀자! 를 외쳤다.


월요일이 왔다. 호제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밥 먹고, 학교도 가고, 일주일 한 번 먹을 수 있는 치킨을 저녁으로 먹고, 숙제 실랑이를 하고, 집에서 펜싱 경기를 열었다. 펜싱클럽 가는 화요일을 고대하며 잠들었다. 수요일도, 목요일도, 금요일도. 그렇게 일상의 루틴(routine)을 이어갔다.


너무 하지 않나. 그렇게 준비하고 임했으면, 기쁨은 더 오래 지속되고, 속상함도 지속되어 다음의 동력이 되어야 하지 않나. 기쁨은 즐겁게 즐기고, 슬픔과 분노는 애도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나 싶었다. 슬픔과 분노가 금방 사라져 반갑긴 했지만 말이다.







일상 모드로 빠르게 전환해 이번 대회 후에 본인이 개발해 낸 자세가 있다며 보여주는 호제에게 물었다. 호제는 대회 나가는 게 좋은 걸까, 준비하는 과정이 좋은 걸까.


“호제는 펜싱대회에 나갈 수 있어서 펜싱이 좋은 거야,

펜싱을 일상처럼 매일 할 수 있어서 좋은 거야?


“뒤에 꺼. 그냥 매일 할 수 있어서 좋아.”



“왜 좋아?”

“왜? 재밌으니까!”



호제는 새롭게 개발했다는 자세를 또다시 취하며 웃으며 답했다.







호제의 대답을 들으니, 나의 생각이 다분히 이분법적이고 우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과지상주의, 결과지상주의에 찌든 나의 사고였구나 싶었다. 이어 궁금했다. 그럼 호제는 펜싱대회를 왜 그리도 나가고 싶어 하는 걸까,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마음에서 그럴까?



“대회를 어떤 목적으로 나가? (목적이 너무 어려운 말인가 싶어 다시 말했다.) 어떤 마음으로 대회에 임해? 나가?”


“세계에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려주겠어!라는 생각으로 나가”


호제가 운동으로 자신감을 많이 얻었나 보다. ‘메달을 따려고’와는 또 결이 다른 답변이었다. 차곡차곡 쌓은 일상의 노력을 스스로 확인하고,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일까. 어떤 마음인 걸까. 누군가의 마음 저변을 온전히 읽어내는 건 참 쉽지 않다.


세계에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대회에 출전해 지고 와도 예전만큼 힘들어하지 않는다. 졌던 경기에서 본인이 무엇을 했고, 어떻게 했는지 모두 기억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자세를 했으면 이겼을까를 떠올린다. 많이 컸다.




 


그렇게 이벤트는 반짝하며 지나갔다. 호제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일상에 복귀했다. 호제를 보며 일상의 힘을 더 믿게 됐다. 결국 반복하는 일상이 우리 삶을 지탱한다.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펜싱을 사랑하는 꼬맹이 호제를 보며 깨닫는다.



불꽃놀이 같은 이벤트가 매일 일어나지 않더라도,  가늘고 길게 이어나가는 일상이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2분 30초의 찬란함이 아닌, 매일의 몰입이 호제를 신나게 만든다. 호제는 오늘도 펜싱을 하며, 반복하는 일상에서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느끼고 때로는 흐뭇해하며 재미를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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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도 매일 뭘 합시다!

힘들어도 신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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