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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May 31. 2024

펜싱 마스크를 쓰면 상대의 얼굴이 보일까


 

펜싱 마스크의 앞부분은 체반 같이 촘촘한 구멍으로 덮여 있다. 관중석에서 보면 선수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 중계할 때도 선수의 표정을 알 수가 없다. 상대의 표정을 읽고, 상대의 상태를 짐작하기 마련인데, 펜싱은 어떨까 궁금했다. 몸짓과 펜싱 칼의 느낌만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걸까. 호제에게 물었다.

 

“호제야, 펜싱 마스크 쓰면 상대선수 얼굴이 보여? 표정이 보여?”


“응! 보여. 잘 보여.”


“뭐?! 잘 보인다고? 엄청 작은 구멍들인데 보여?”


“응, 나 예전 대회에서 2학년 형아 만났을 때 말이야. 내가 먼저 찔렀거든?! 그때 그 형아가 눈을 이렇게 뜨면서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부릅뜨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공격했어.”

 





호제의 말을 듣고 나니 펜싱 마스크를 썼을 때의 시야가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써봤다. 대회 다녀온 후, 햇빛에 말리고 있던 펜싱 마스크를 얼굴에 댔다. 마스크에 비해 내 머리가 커서 머리가 들어가지는 않았다.


씨줄과 날줄의 얽힘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앞 풍경이 네모난 작은 구멍 조각에 하나씩 자리 잡았다. 모자이크 같았다. 조각이 시신경을 거쳐 합체한 뒤 뇌로 가는 느낌이었다. 조각이건 아니건, 어쨌건 간에 풍경도, 사물도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마스크를 썼다고 표정이 가려지는 건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관중은 펜싱 선수의 표정을 못 볼지언정 마주하는 선수는 아주 또렷이 서로의 얼굴을 본다. 상대의 몸짓, 칼놀림만으로 상대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게 아니었다. 마스크가 있다고 나의 표정을 가릴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표정 일부를 감출 수는 있지만, 전체를 감출 수는 없다.

 

그럼 여기서 고민에 빠진다.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의 포커페이스(Poker Face)를 권할 것인지, 방식을 찾아가는 길을 묵묵히 지켜볼 것인지.

 





경기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사회생활에서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포커페이스가 이득을 볼 때가 많다고들 말한다. 문제는 호제도, 나도, Y도, 말랑 할머니도 포커페이스랑은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한때 나는 내가 꽤나 포커페이스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내 모습을 어느 정도 지켜봤던 분께서 나는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사람이라고 알려줬다. 멀리서 봐도 티가 난다고. 이 말을 듣고 이 분과의 인연은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포커페이스 짓는 노력을 이만큼 했는데도 안 되면, 이 힘을 나의 장점에 더 쏟자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커페이스가 주는 이점을 경험할 때면, 호제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생각 끝에 지금의 내가 나에게, 그리고 호제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자신의 경기를 위해서 일단 평정심을 유지하자. 그러다가 평정심이 흐트러져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마음이 표정에 나타나고, 표정을 상대가 읽는다면, 표정을 읽힌 상황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자.


즐거우면 즐거운 기세를 몰아서, 화가 나면 화가 난 기세를 몰아서, 불안하면 불안한 기세를 몰아서 해보는 거지.


불안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니까 불안하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대비할 태세를 갖추는 장점이 있어.


표정으로 투명하게 호제의 마음을 드러내더라도 결국 경기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 된다고 봐. 이 연습을 해보자! 주도권을 갖는 방법은 각자 터득해 보고 방법을 나눠보자.”

 


미래의 나는 나에게, 호제에게 어떻게 말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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