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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May 24. 2024

펜싱, 어떻게 시작했어요?


호제가 펜싱 하는 걸 알면,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펜싱, 어떻게 시작했어요?!?!?!??!?!”



2021년 9월 4일 첫 수업, 저벅저벅 걸어가 화정 선생님 찌르기. (우) 선생님이 호제 1점!이라고 외치자, 선생님이 찔려준 거라고는 생각 안 하고펜싱칼 번쩍 든 위풍당당 호제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여름 휴가지에서 찾은 작은 중식당에서 TV를 틀어놓았다. 우리가 갔을 때 마침 2020 도쿄 올림픽 펜싱 경기가 나왔다. 2020 도쿄 올림픽이었지만, 코로나로 1년 미뤄진 2021년 여름에 이뤄졌다. 가족 모두 음식을 기다리며 긴장감 넘치는 펜싱 경기를 봤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키즈펜싱 오픈! 포스터를 붙이는 남성 두 분과 마주쳤다.


 


“우연이었어요. 보드카페처럼 시간당 돈 내고 레고 만드는 레고방(레고플레이)을 호제가 즐겨갔어요. 그 옆에 펜싱클럽이 오픈했어요. 투명한 유리문과 창으로 형들이 운동하는 걸 호제가 봤어요. 레고를 만들고 있으면 쿵쿵하는 소리가 들리곤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호제랑 제가 레고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남자 두 분이 펜싱클럽 유리벽에 포스터를 붙이고 계셨어요. 포스터에는 ‘키즈펜싱 오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호제 같은 꼬맹이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레고플레이로 들어가 레고 자동차를 만들고 나왔다. 호제와 나는 창문에 붙은 포스터를 유심히 봤다. 호제는 글씨를 다 알기도 전인데, 포스터를 보며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할래! 나도 하고 싶어! 나 할래! 할래!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매일 같이 펜싱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 당시 한국 나이로 6세(만 5세)였다. 시작하면, 1년은 무조건 해봐야 한다고 호제에게 얘기했음에도 “응, 할 거야!”라고 말했다. 포스터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해 상담을 하고, 등원할 요일을 정했다.



 



 


하고 싶어 하는 호제의 마음을 꺾고 싶지 않았다. 레고 닌자를 좋아하고, 한창 동작이 커지고 있을 때라 장난감 칼 말고, 펜싱 칼을 들고 발산하면 인성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단체전도 기본적으로 개인이 홀로 해내야 하는 운동인 점도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도 가까워 말랑 할머니나 내가 등하원 하기에도 수월한 위치였다.


 


도복, 장비를 무료 대여해 준다는 점도 한몫했다. 3개월 간 12번의 발레 수업 중 1번의 수업만 제대로 들어가고 나머지 11번은 수업을 지켜보고 옆 발레 강의실에서 뛰어놀았던 전적이 있어 초기 제반비용도 꽤나 중요했다.


 


이렇게 저렇게, 요리조리 따져보기는 했지만, 하고자 하는 호제의 열망이 대단해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어느 부모가 막을쏘냐.


 


2021년 9월 4일 토요일 12시 수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쭉 이어가고 있다.


 


 



 


어떤 시작은 우연에서 출발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무겁고 결의에 찬 시작보다 우연에서 출발한 시작이 훨씬 더 많은 듯하다. 거창한 결심을 했던 시작보다 우연히 스친 순간, 사람, 말, 장소에서 한 시작이 지금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다. 이어지지 않더라도 새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인 우연(偶然)으로 도무지 생각지 못했던 오늘을 만나고, 내일을 꿈꾼다.



오늘의 꿈이 없다 할지라도 괜찮다. ‘우연’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턱! 하니 나타날 테니까. 그 우연을 잡는 순간, 놀랄만한 나비효과가 삶에 일어날 거다.


대신, 우연을 잡는 순간은 필수다.


결과 생각하지 말고 우연을 잡고, 도전해 보기!

거창하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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