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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Sep 23. 2024

펜싱 단체전, 리더의 무게감

참가 신청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2024년 펜싱 단체전이 드디어 열렸다.

 

참가하고 싶다 호제와 안 된다 Y의 의견 대립부터 삼총사가 정말 찢어지는 거냐는 호제의 백 번 넘는 질문과 팀 배정 기다림, 받아들임의 시간을 지나 드디어 단체전이 왔다. 기승전결 확실한 이 에피소드에서 결을 풀어본다. 졌지만 리더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고 느끼며 끝낸 초2 남아의 단체전 이야기를.

 

(기승전을 적고 보니 너무 길어 결만 공개한다. 기승전 과정에서 고되었을 화정 선생님과 요셉 원장님, 그리고 ‘호제 왜 울어, 호제 파이팅!’이라 스치듯 말씀해 주신 제완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다시금 드린다. 고맙습니다! 정신 수련에 좋은 말을 해준 Y도 애쓰셨습니다.)

 


 

호제는 2학년 같은 학교 친구 1명과 1학년 1명, 총 3명이 같은 팀이 됐다. 1학년 때 함께 나갔던 친구들과는 쪼개어졌다. 호제팀에서 호제가 펜싱을 가장 오래 배운 경력자였다. 대회 출전 경험도 가장 많았다.

 

Y는 단체전 출전에 찬성표를 던지고, 팀원이 확정된 후부터 주옥같은 말을 쏟아냈다.

 

‘어떤 선수가 출전할지 정하는 배정 권한은 본래 감독의 권한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받아들이는 거다. 이번에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해보는 거다.’부터 리더는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해줘야 함을 매일 같이 얘기했다. 이번이 오히려 또 다른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말했다. 이왕 가기로 했으면 잘 만들어 오라며.

 

시간이 흐르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다. Y의 말, 나의 말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호제 스스로 생각을 다듬어 갔다.

 

“우리 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라며 같은 팀 친구와 막내의 장점을 찾아냈다. 어떤 걸 더 하면 좋을지 생각해 나갔다.

 

 


 


당일 아침, 대절 버스를 타고 가는 선수, 보호자들이 펜싱클럽에 하나둘 모였다. 같은 팀 친구가 에너지를 쓴다 싶으면 ‘에너지 너무 많이 빼지 마’라고 얘기했다. 그러고 본인이 에너지를 쓰기도 했지만 말이다.

 

버스 안에서는 같은 팀 친구도, 호제도 서로 같이 앉고 싶다고 말했다. 둘은 꼭 붙어 앉았다. 호제와 친구 덕분에 나는 호제 친구의 어머니를 사귀는 시간이었다.

 

둘은 같이 앉아 서로 전략 얘기를 하는 가 싶었으나, 그냥 옆 자리에 같이 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나 보다 싶다. 그렇지. 공간의 커뮤니케이션도, 사회적 거리의 커뮤니케이션도 아주 중요하지. 그렇고 말고.


 


 

 

경기 전, 호제는 친구와 막내를 불러 모아 파이팅 연습을 했다.

 

호제:

우리 파이팅, 아래로 할까, 위로할까?


친구:

손을 어깨에 올려서 파이팅 하는 거 하자.


호제:

그래! 좋아. 그럼 어깨(에 손을) 올리자.


친구와 호제가 옆 사람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형들이 동생 손 한쪽씩 자기 어깨 위로 올렸다. 그리고 구호를 맞춰 외쳤다. (너희 너무 사랑스럽잖아!!!!)

 

(하나 둘 셋)

“파이팅“


셋은 쪼르르 한 줄로 앉아 경기를 기다렸다가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호제는 긴장한 막내에게 잘할 수 있다고, 후레시를 잘하니 후레시를 하면 된다고 얘기를 하고 또 했다.




 


경기가 시작했다. 총 9세트, 1세트에 최대 5점을 낼 수 있다. 2세트에서는 10점까지 내면 시간이 남더라도 2세트는 끝난다. 친구가 먼저 들어갔다. 쿡쿡 찔러 소중한 점수를 얻어냈다. 그다음은 호제다. 팀 내 가장 긴 경력을 보유한 호제가 10점까지 점수 차를 벌려 놓아야 한다. 5:2에서 출발해 9:9까지 동점으로 만들었다. 호제는 7점을 내긴 했지만, 상대도 점수를 냈기에 다시 원점이다.

 

세 번째 세트를 끝내고 들어오는 막내를 원장님은 의자에 앉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미혼이며, 육아를 해본 적 없는 원장님이 한 팔로는 막내의 상체를, 한 팔로는 하체를 끌어안는 모습에서 막내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꽤나 큰 1학년을 저렇게 품에 쏙 넣을 수 있다니,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오상욱 선수보다 조금 더 크셔서 그런 걸까, 다년간의 교육 경력 때문일까, 어디서 나오는 바이브일까 잠시 딴생각을 하기도 했다. 원장님의 토닥임 후, 막내는 끝까지 해냈다.


호제팀은 상대팀의 점수를 쫓고 또 좇았다. 매번 출전할 때마다 셋이서 모여, 어깨에 손을 올리고 파이팅을 외쳤다. 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봐도 호제가 파이팅을 외칠 때 무엇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애쓰는 모습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기 모으기 파이팅


이제 마지막 세트다.

점수는 40:28.


호제팀이 28이다. 호제가 17점을 따내면 승리한다. 호제는 11점을 얻어내 39점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상대편이 45점을 채워 경기는 끝났다. 호제 팀이 졌다. 팀원들에게 금메달을 안겨주겠다던 호제가 꿈꿨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호제는 씩씩하게 관람석으로 돌아왔다. (후에 들어보니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흘렀다고 한다.)






다음 날, 또다시 해는 떴다.


“호제야, 어제 정말 매우 훌륭하고 멋졌어. 팀원들 모두 챙겨서 같이 있고, 기운도 북돋아주고, 잘할 수 있다고 해주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호제가 한 그런 행동이 팀문화를 만드는 거야. 팀문화가 쌓이면 조직문화가 되는 거고. 리더 역할을 아주 멋지게 해냈다, 호제!”


- “엄마가 감동할 만한 거 하나 얘기해 줄까?”


“오, 해줘, 해줘. 뭐야, 뭐야. 기대된다.”


- “파이팅 할 때, ‘친구야, 동생아, 울지 마! 우리, 메달은 따지만, 우리가 열심히 하면 메달 색깔이 바뀔 거야!’라고 말했어.


“뭐야, 완전 감동이잖아. 호제는 눈물 안 났어?”

- 나도 울컥거렸어. 아빠가 나한테 리더 역할 잘하라고 오라는 말이 떠올라 울음을 참고 말했어.


재잘거리는 나보다 한 번씩 해주는 아빠의 말이 더 먹히는 이 상황이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가, 내 말의 낮은 효율성이 떠올라 부러움을 잠시 느끼기도 했다.


이번 단체전을 통해 호제는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상황을 좋게 만드는 태도를 경험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는 것도 배웠을 거다. 끝날 때, 상대편 선생님이 호제에게 잘했다고 건넨 칭찬에 뿌듯해했다. (고맙습니다!)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견뎌내고 함께 나아가는 경험도 했을 테다. 무엇보다 함께 한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엄마로서의 나는, ‘내 생각보다’ 호제는 투명하고, 주변 관찰이 뛰어나며, 진심을 다해 간절히 무언가를 원할 줄 알고, (항상은 아니지만, 수려하진 않지만) 가감 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며, 자기만의 리듬감으로 마음의 거센 파도를 잔잔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누구나 그렇듯이 호제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게 됐다.


한 뼘 자라는 호제를 곁에서 볼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공사다망 속에서 호제의 요동치는 마음을 헤아리느라 벅찬 시간이기도 했다. 그만큼 내 마음의 근육도 조금은 단단해졌길 바란다.


드디어 끝났다!

단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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