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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활여행자 Jun 07. 2016

베를린 여행자로그4

독일 베를린 6일의 기록

인간의 기분에 날씨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사실이다. 쾌적지수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쾌적함이라는 주관적인 상태는 기온, 습도, 풍속 등의 척도에 의해 '지수'라는 단어까지 붙어 일기예보에 번듯이 나오는 절대적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날씨와 기분 간의 상관관계는 너무나도 자명한 것이어서 우리는 공기로 둘러싸여 있어!라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의외로 주변에서 나는 비 오는 날이 좋아, 라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던지. 반 년에 가까운 겨울에 일조량이 여섯 시간밖에 되지 않는 핀란드의 자살률이 생각보다는 높지 않다던지(참고 1). 쾌적지수가 기후도 매우 다른 유럽의 한 기상학자에 의해 고안되었다던지. 이런 사실을 마주하게 되면 날씨와 기분의 관계, 더 정확하게는 '기분'에 대해서 배신감을 느낀다. 나는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비 냄새에 불쾌하지 않았을지 모르고, 여름의 후덥지근함을 즐길 수도 있었던 것이다. 


여행이란 설렘, 즐거움, 놀람, 감탄, 경이, 등 플러스 범주에 모여있는 이런 기분들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 상관관계가 여행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때도 없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예비부부에게는 결혼식, 초등학생에게는 소풍 정도이려나.) 그러니 일주일의 여행을 앞둔 자에게 '일주일 내내 비'라는 기상 예보를 보는 것이 얼마나 절망스러웠을지는 상상이 어렵지 않을 테다. 5월 베를린의 추위는 예상보다 오히려 혹독했고, 우리는 진부하게도 비바람이 치는 베를린에 울적해지고 또 약해지고 말았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는 너는 아마 에어컨이 가동된 시원한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빗소리를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거야.) 그럼에도 우리는 가랑비가 옷을 적셔 언짢았던 순간이 아니라 가랑비를 피해 먹던 커리부어스트를, 시리게 추운 바람보다 텅 빈 공원에서 시린 바람에 떨며 들었던 기타리스트의 버스킹을, 변덕스러운 말썽 많은 날씨보다 비와 햇빛이 동시에 내리던 신기한 오후에 찾아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기억한다. 이로써 우리는 이제 여름의 장마에도 찡그리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의 베를린 여행은 기분과 날씨의 상관관계에서 이상점(Outlier)이었던 걸까? 아마도 후자가 맞을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비에 금방 젖어버리는 신발에, 살갗에 닿기도 전에 느껴지는 습도에 덜 쾌적함을 느낄 테지만, 이곳은 베를린이라서, 베를린이니까. 



베를린 여행을 위해서 갈만한 곳을 찾아보던 때에 운 좋게 알게 된 한 행사가 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아침식사 축제인 Breakfast Festival가 그것인데, Markthalle Neun이라는 곳에서 매달 세 번째 일요일마다 열리는 행사이다. 베를린의 온갖 유명한 브런치/카페들이 다 같이 한 공간에 모여 마켓처럼 음식을 판매하는데, 특히나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Still in Berlin이라는 베를린 스타일, 맛집, 여행 정보 웹사이트가 10주년을 맞아 주최한 특별 에디션이었다. 120년 전부터 원래 시장(Market)이었던 공간을 2011년부터 사람과 동물, 그리고 환경 존중이라는 가치 아래 2016년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형 상점 대신에 소상공인의 상품과 대안적 음식, 대안적 쇼핑을 소개하는 장을 마련해왔다. 일정이 맞다면 우리가 갔던 Breakfast festival 방문을 추천하지만, 세 번째 일요일이 당신의 여행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하지는 말라. 매주 목요일 저녁 (17시-22시) 에는 길거리 음식 축제(Street Food Thurday)가 열린다. 또한 목, 금, 토요일에는 본래의 컨셉에 맞게 마켓이 열려 신선한 식재료들을 판매하는 것은 물론 드래프트 맥주, 샌드위치 등도 찾아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살펴볼 것. 다가오는 주말의 행사나 그 주의 마켓/페스티벌 참여 상점들의 정보를 주기적으로 소개하는 Markthalle Neun의 공식 페이지도 방문 전에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다.

공식 소셜 미디어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MarkthalleNeun/

영어 소개 페이지: http://www.visitberlin.de/en/spot/market-hall-nine-kreuzberg-so-36


Breakfast Festival 입점 가게 중 Das Brunch에서 구매한 비싸고 건강한 아침. 수란+각종 샐러드+ 빵+베이컨 = €8
마우어파크의 일요벼룩시장


프렌츠라우어베르크는 크로이츠베르크와 더불어 빈민가에서 감각적인 카페나 디자인샵들이 많은 힙스터스런 지구로 변모한 동네이다. 베를린을 다녀온 유명 연예인이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그립다던 주말의 마우어파크는 이 프렌츠라우어베르크에서 찾을 수 있다. 프렌츠라우어베르크의 마우어파크에서는 매주 일요일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벼룩시장이 열린다. 가구나 옷, 장식품 등의 각종 세컨핸드 상품부터 핸드 드로잉, 핸드메이드 액세서리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한다. 물건은 물론 음식도 판매하는 부스가 많다.


소시지로 유명한 독일이기에 기념품용으로 구매할 독일산 소시지를 여행 내내 한참 찾아 헤매던 차였는데, 이 벼룩시장의 어떤 부스에서 풍겨오는 소시지 특유의 비릿한 냄새에 발길을 멈췄다. 유일하게 있는 소시지 판매대였기에 반가운 마음도 잠시, 앳되보이는 점원의 뒤로 걸려있는 프랑스 국기를 보고 원산지에 대한 연상까지 이어지기도 전에 이미 우리는 그녀가 강권한 샘플 소시지 조각을 먹고 있었다. 껍질을 버리지 않고 통째로 씹어버려 비릿한 곰팡이 맛이 올라오는 동시에 거절에 형편없는 나의 성격이 머리를 들었다. 아닌 줄 알면서도 희망을 버릴 수 없어 독일이 원산지냐고 묻는 내게 그녀는 힘차게 고개를 저으며 자랑스레 국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독일산 소시지로서 의미가 있는 대신 베를린 마우어파크의 프랑스산 소시지로서 특별함을 지니지 못할 건 뭐야,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 마우어파크를 나오는 우리의 손에는 프랑스산 마운틴 허브 소시지와 갈릭 소시지가 들려있었다.



마우어파크의 벼룩시장을 구경하고 우리는 바로 주변에 위치한 유명 카페, 보난자 커피 히어로즈를 향했다. 단 종류의 커피는 없냐는 나의 질문에 유쾌하게 그렇다고 대답해준 점원에게 라떼 두 잔을 주문하고 우리는 카페 내부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았다는 말도 무색할 만큼 카페는 만석이었고 우리는 의자 없는 한 테이블에 선 채로 커피를 기다렸다. 원두를 두 봉지나 사서 돌아갈 만큼 향이 좋았다는 맛은 차치하고서 이 카페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 재밌는 부분은, 우리가 자리를 잡은 이후로 익숙한 생김의 손님들이 하나 둘 씩 들어오더니 결국 카페 안 쪽의 전체 구역이 한국인 여행자로 꽉 차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섯 팀의 한국 여행자들과 암묵적인 시선을 주고받고 있자니 민망함이 몰려들었다. 나는 여행지에 가면 한국인과 마주쳐도 아는 체를 한다거나 인사를 하는 쪽과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인데, 이때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본 끝에 추측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결국에 여행이란 - 그것도 비행기를 열 몇 시간씩이나 타고 떠나온 곳이라면 더욱이 - 뭔가 이국적이고 한국에서 할 수 없는 경험을 좇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2. 한국에서 삶으로부터 잠시 휴식을 취하고자 떠나왔지만 같은 사회의 구성원을 마주하면 집에 두고 온 삶이 다시 상기되어 여행이 진정한 휴식답지 않아지기 때문은 아닐까. 3. 영어를 사용할 때는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고 상투적인 한담(Small talk)도 할 수 있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면 원하지 않은 부분들도 공유해야 되는 상황이 오기 쉽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쪼록 죄다 같은 성향의 여행자들이었던지 우리 모두는 다음 차례의 한국인 여행자들이 다시 카페를 채울 때까지 침묵의 눈인사를 지켰다.



마우어파크 주변의 코놉코케 임비스라는 커리 부어스트의 전설적 맛집에 가려고 했으나 애석하게도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아하는 수 없이 관광의 중심, 알렉산더 플라자로 다시 향했다. 발걸음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우리는 초콜릿/캐러멜/누가(Nougat)를 판매하는 상점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주요 고객층이 여성이라서인지 아니면 상점의 어떤 규정이 있어서인지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점원들은 몸 좋은 젊은 남성들이었으며 몸에 딱 붙는 나일론의 옷을 입고 있었다. 독일 여행 기념으로 소량을 구매하자고 결심한 우리였지만 계산대에서 지불하면서 알게 된 건 결국 이 누가도 프랑스 남부가 원산지라는 것이었다. (프랑스 여행을 그냥 갈 걸 그랬어)


커리부어스트의 성지 커리 61


Curry 61

Oranienburger Str. 6, 10178 Berlin, Deutschland

투박하게 썰린 소시지 위에는 케첩보다 깊고 칠리소스보다는 단 특유의 소스가 밥을 비벼 먹어도 남을 만큼 충분한 양으로 끼얹어진다. 입 안에 넣고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톡 하고 껍질이 터진다. 감자튀김은 소시지에 남은 적당한 정도의 기름과 칠리소스로 퍽퍽할 틈이 없다. 2유로도 안 되는 베를리너스 맥주는 거들뿐. 하케쉐 회페에서 도보 2분 거리.


크로이츠베르크 맛집

https://brunch.co.kr/@yejinchoi/3


하케쉐 회페에서 매우 가까운 (도보 2분) 거리의 하우스 슈베르첸베르크. 건물 전체가 그래피티로 뒤덮인 이곳은 영락없는 베를린의 모형이다. 특이한 숍들은 물론 안네 프랑크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원래 이름은 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로, 유대인 학살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추모 공원을 설계한 건축가에 의하면 이 공원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사람과의 접촉이 끊어진 정돈된 시스템의 전체 조각을 만드는 것이 의도였다고 한다. 어려운 설명만큼 다소 추상적인 모습의 공원인데, 방문자들은 묘지와 닮았다는 평을 남기기도 한다. 머리보다 큰 불규칙한 높이의 조각상들 사이를 걸어 다니면 자연스레 숙연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지하에 관련 자료들을 모아놓은 박물관도 있다. 입장 전 소지품 검사로 한 번에 입장이 가능한 인원에 제한이 있어, 대기 시간이 약 15분 정도 소요된다. 지하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은 대학살의 전개, 국가별 희생자 수, 아우슈비츠로 살아남은 가족들, 희생자들의 일기나 편지 등 각 방마다 다른 테마로 당시의 비극을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한다. 유대인들의 사업을 보이콧하는 정도였던 증오가 어떻게 세계 2차 대전의 어떤 시점에 이르러 유럽 전역의 모든 유대인을 말살시키자는 정책에까지 이르렀는지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참고 1: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suicide_r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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