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빚어진 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는 편이다.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것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것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오래된 철물점에 저 세상 맥시멀리즘으로 걸려있는 공구들 (하지만 그 안엔 사장님만의 분류 방식이 있지)
빛바랜 페인트로 얼룩덜룩하고 여기저기 불규칙한 스크래치가 가득한 파란 대문
어떤 생각들을 하며 밟고 지나갔을지 궁금해지는 올레길의 단단한 지면
마을 어귀, 고대부터 살아온 것 같은 큰 나무.
그 아래에서 그녀가 몰래 속삭인 말들. 그 나무는 다 기억하고 있겠지.
그렇게 품고 있는 과거를 상상하며 한참을 곱씹게 하는 장면들이 좋다.
시간과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모습이 된 것들을 마주할 때
결국 생각의 끝에 서 있는 건
나 자신
어설프고 미숙하게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떠올린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이도 저질러온 실수들,
되돌리고 싶은 선택의 순간들,
과거에 대한 회상과 후회에 늘 한쪽 발을 담그고
잠깐 방심하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는 불안정한 밤들.
밝고 명랑해 보이는 모습의 이면에 켜켜이 쌓인 이끼가 있다.
축축하게 젖어 축 쳐져 있는 내 앞에
뭐 어때, 난 이렇게 만들어진 네가 좋아! 라며 나타난 너.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버린 나를 받아들여줘서 고마워
이렇게 빚어진 나에게 망설임 없이 다가와
품에 쏙 안기거나
볼에 부드러운 털을 비벼대는
네가 있어 다행이다
만들어진 너를 받아들이고
만들어진 나를 받아들이는 밤
복슬복슬한 널 끌어안고
깊은 안도의 숨을 쉰다
글, 그림 by 예주 (@yeju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