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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Apr 24. 2023

우울한 행복

강찬준 - 1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오만과 편견, 이 유명한 책의 첫 문장을 기억하는 이유는 문장이 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 유복하게 자랐다. 부부생활을 영위하는 이유가 자식인 나 하나뿐인 남녀의 외동으로 태어났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컸지만, 부부의 사랑은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 유추하건대, 사정과 오르가즘의 쾌락만 즐기려 한 섹스에서 우연찮은 생명이 생겼고, 지우기에는 늦었으니 그냥 낳아 기르다가 애정이 생긴 아이가 바로 나일 것이다. 혹은 내 부모가 연인의 사랑보다 번식의 기쁨을 우위에 둔 인간이 아닐까 한다.


 하여튼 그런 부부의 영향인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크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친한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은 없었으나 외롭지 않았고, 학교가 끝나면 집안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거나 안방 창문 아래 널직한 화면의 브라운관 TV를 켜서 비디오, DVD로 영화를 보곤 했다.

 주말에는 그 부부가 추천한 것들을 봤다. 주로 책은 남자가, 영화는 여자가 추천해 줬다. 우습게도 두 사람 다 알려주는 게 엇비슷했다.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면 캐스트 어웨이를, 레옹을 보면 롤리타를, 삼총사를 읽으면 E.T.를 추천해 줬고 혼자 볼 때, 그 부부와 함께 볼 때, 부부 중 한 명과 함께 볼 때를 포함해서라도 재미없던 것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웃기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남녀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함께 산다는 것이.


 또래에 비해 많은 책과 영화를 보았고 그것들이 말하는 내용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다분했지만 단 하나,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시나트라의 음악을 들을 때도, 제리 맥과이어를 볼 때도 감흥은 없었다. 그저 성인이 되어 결혼적령기가 되면 조건 맞는 사람과 결혼하여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게 사회의 지향점이니, 사회적 평균을 벗어나고 싶은 반항아가 아니던 난, ‘그렇게 살면 별일은 없겠지’라는 무색무취의 자발적 세뇌 속에 살았다.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지역에서 제법 유명한 학교였다. 어른들에겐 서울대를 잘 보내는 학교로 유명했고 학생들에겐 건물 구조가 특이한 걸로 유명했다. 기숙사와 급식실, 체육관을 제외하면 단순한 ‘ㅡ’ 구조의 4층짜리 본관 건물 하나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모든 학급이 모여있었다. 그리고 건물엔 남녀화장실이 각 층의 양 끝에 위치했다. 이 말인즉슨 건물 왼쪽 끝에서 수업 듣는 학급의 남학생이 화장실을 가려면 건물 오른쪽 끝의 남자 화장실로 가야 한다는 말이다. 누가 설계했는지는 모르나, 학부 시절 건축학개론 시간을 졸면서 보낸 삼류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지 않을까 한다. 교무실과 도서실 등이 있는 2층을 제외하면 각 층은 학년별로 나눠 사용했다. 1층은 1학년, 3층은 2학년, 4층은 3학년이 사용하는 수직적 배열의 형태였고 학년순에 따라 군림하는 폭력적인 구도였다.


 입학 후 2년간은 화장실과 멀지 않은 반으로 배정받아 그것에 대한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필 3학년 때 제일 멀리 떨어진 반으로 배정받았다. 처음에는 화장실 가는 게 귀찮았고 동시에 피 같은 쉬는 시간이 고작 화장실 따위를 오가며 허비되는 게 아까웠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 학기 시작 후, 한 달 정도 지나자 귀찮음과 아까움은 무뎌져 결국엔 익숙해졌다. 화장실 갈 때마다 다른 반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무렵 내게 하나의 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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