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콩쿠르라 불리는 폴란드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전 세계 피아니스트의 꿈의 무대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국제 콩쿠르 세계 연맹에서 퇴출당함으로 3대 콩쿠르의 빈자리를 미국의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대신 채움으로 새로운 꿈의 무대가 되었단 평을 얻는 요즘이다. 4년마다 한 번 개최되며 작년 2022년을 기점으로 60주년을 맞이한 이런 유서 깊고 권위 있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근 우승한 피아니스트는 다름 아닌 임윤찬이라는 04년생 한국 출생자다.
201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피아니스트, 2017년 반 클라이번에서 우승한 선우예권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보며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비판 의식을 사알짝 내려두곤 국뽕 경험을 누렸던 적이 있는지라 2022년 6월, 반 클라이번에서 또 다른 한국인이 우승했다는 소식에 괜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피아니스트의 수준이 다르단 것이 아닌 우승자의 최연소 타이틀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1년 연기된 2022년 콩쿠르는 만 18세도 참가 가능했고 당시 만 18세였던 임윤찬 또한 참가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2021년 개최한 2020 도쿄 올림픽도 2016 리우 올림픽과 5년의 기간을 두고 개최되었고 세계 신기록, 올림픽 신기록이 많이 나온 올림픽인 것으로 안다. 선수들이 훈련에 정진할 수 있는 시간이 1년이 더 늘어서라는 해석이 많은데,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자가 최연소인 것과 올림픽 신기록이 많은 것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순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라는 질병이 인간의 손과 발을 묶었던 만큼 눈과 귀를 뜨이게 해 준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라 조심스레 적어본다.
반 클라이번 이전부터 주목받는 신예였다지만, 콩쿠르 이전엔 임윤찬 피아니스트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 우승 소식을 듣고 콩쿠르 영상을 찾아보다가 준결승전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한 시간이 넘는 영상을 독서실의 고등학생처럼 의자에 딱 붙어 앉아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No. 4 마제파부턴 건반을 때리는 그의 손가락에 신경이 집중됐다. 다음으론 알고리즘에 의해 등장한 결승전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고 영상은 내 웃음을 자아냈다. 결승에서 선보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2017년의 선우예권을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같은 곡으로 같은 콩쿠르에서 결승전을 치르고 둘 다 우승까지 거머쥐는 스토리는 시나리오 작가들도 쓰지 않을 내용일 것이다. 그런 막장 스토리를 완성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줄여서 라피협 3번이라고도 말하는 이 곡의 악명은 이미 너무나 유명하다.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선우예권의 스타일과 같지는 않다는 걸 느꼈다. 특히 1악장이 그러했다. 선우예권은 둥근 바위가 진흙을 누르듯이 좀 더 묵직했고, 임윤찬은 수중에서 팔을 휘저을 때 느껴지는 물의 흐름과 같이 조금 더 부드러웠다. 두 피아니스트 모두 어마무시한 실력의 소유자인 걸 알지만, 준결승전의 리스트 초절기교가 너무 인상 깊어서인지 필자에겐 임윤찬 버전의 라피협이 상대적으로 더 인상 깊었다.
한 달 뒤 KBS 시사기획 창에서 임윤찬 특집 방송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그리고 방영된 다큐를 통해 임윤찬만큼 2위와 3위를 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드미트로 쵸니와 러시아의 안나 게니쉬네의 스토리에 매료되었다, 방송을 보기 전까지 우승자 임윤찬에 집중되었던 필자의 시선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가 담긴 콩쿠르의 비하인드로 옮겨졌고 음악이라는 것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예술은 음악을 동경한다’라고 했을 정도로 음악은 가장 원초적이고도 선망받는 예술이며, ‘음악이 없는 삶이란 잘못된 삶이다’라고 말한 니체와 같이 인류에게 있어 음악은 가히 필수적이다. 이토록 고귀한 가치를 지닌 음악을 선하게 사용하는 것, 윤리적으로 의미 있는 방향성을 띠도록 하는 것이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다.
임윤찬 피아니스트 또한 ‘음악이란 세상에 몇 안 되는 진짜다’라 말했다. 나머지 그 몇은 아마 예술과 인문학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인간의 부류에 속하고 싶은 한 인간으로서 그의 말에 필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