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하나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음악의 속성과 본질에 대한 가벼운 고찰만이 있으면 된다.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다뤄지는 쇼팽의 음악과 베토벤 음악의 대비를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 Frédéric François Chopin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흑역사가 담긴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영화들은 많다. 전쟁을 다루는 영화에서 웅장한 음악은 필수다.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했던 것과 전 세계 군대에 군악대가 존재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만큼은 웅장함과 애국심 고취보단 가슴 아픈, 처절한 음악이 웅장함을 대신한다.
영화의 중반부 주인공 스필만은 피신해 있는 아파트의 피아노 의자에 앉아 건반 위 허공에다 쇼팽의 음악을 연주했다. 그때 스필만이 연주한 곡은 쇼팽의 ‘그랜드 폴로네이즈 브릴란테’. 정확히는 ‘Andante Spianato and Grande Polonaise Brillante Op. 22’. 폴로네이즈는 쇼팽의 조국 폴란드의 전통 춤곡이다. 짧은 신이지만 허공에다 연주하는 그의 손가락 움직임은 전쟁으로 인해 갇힌 상황에서도 순간적인 자유를 경험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분위기에 발랄하다 못해 화려한 쇼팽의 폴로네이즈는 필자에겐 오히려 슬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스필만은 피아노를 연주한다. 영화의 절정이라 생각되는 장면임과 동시에 전쟁의 모습에 가려진 인류애를 볼 수 있는 신이다. 독일군 장교에게 자신을 피아니스트라 소개하며 한번 피아노를 쳐보라 하는 장면에서 그가 연주하는 폴란드인 쇼팽의 ‘발라드 1번 G 마이너(Ballade No.1 in G minor, Op. 23)’가 주는 외침은 연주자인 스필만을 포함해 해당 독일군 장교, 그리고 4의 벽을 뚫고 나와 영화를 감상하는 필자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이전 장면의 BGM으로 쓰인 독일인 베토벤의 곡과 대비되는 느낌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만으로 해석하기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장면이었고 연주였다. 피아노의 시인이 작곡한 발라드는 너무 감성적이었고 음악에 빠져들게 했다. 스필만을 연기한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그 해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실제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그의 범죄행각과는 별개로) 이 영화로 세계 영화제를 휩쓸었다.
영화가 너무 신파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삶에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며 감동적인 일들도 많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음악을 위시한 여러 예술들인 것 같다. 실제로 필자와 친했던 한 선배는 스필만이 쇼팽의 발라드를 연주하는 장면을 감상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피아노 전공자여서 그런가? 감수성이 매우 풍부했다- 이렇듯 감수성, 감성이라 불리는 것이 삶을 좀 더 다채롭게 살게 해주는 것은 맞는 것이다. 그리고 감성을 위해 독서하며 음악을 즐겨 듣고 영화를 찾아볼 줄 아는 훈훈한 이성을 활용할 줄 아는 이가 바로 낭만주의자가 아닌가 한다.
피아니스트 (2002)
영화를 보고 영화의 원작이 된 블라디미르 스필만의 저서를 읽었다. 쇼팽의 발라드를 연주한 장면에서 실제로 연주한 곡은 ‘쇼팽 녹턴 C# 마이너’였다고 한다. 쇼팽의 곡 중 야상곡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괜한 반가움과 함께 해당 곡의 우울함을 알기에 실제 그가 경험했던 그 순간이 영화보다도 더 두렵게 꾸몄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프레데릭 쇼팽의 음악 중 그의 야상곡들이 그의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본다. 쇼팽을 느끼고 싶다면 그의 녹턴을 들은 뒤에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고 그 뒤에 그의 다른 음악들을 마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