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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May 24. 2023

우울한 행복

강찬준 - 4

 몇 분 전 남자 화장실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움이 반복됐다. 어떤 대답을 할지 고민했다. 3층 복도의 소음이 계단을 타고 올라왔고 4층 복도 쪽을 민아는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었다.

“그래 친해지자. 근데 너 원래 누구랑 친해질 때 허락 맡아?”
“아니 너가 처음인데?”
“어.. 왜?”

 다시금 당황했다.
“너 나 모른대매”
 무슨 소리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얘가 왜 친구가 없는지 조금은 알 수 있는 답변이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있어 그런 거. 그리고 니 폰번호 알려줘”
 같은 반도 아닌 남녀학생끼리 번호를 교환하는 건 대체로 이성적인 호감에 따른 관심 표현이란 인식이 있다. 하지만 남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칸막이 문을 열어 휴지를 받는 여학생이 물어보는 번호였다. 이성적 호감의 의미는 아닐 거라 확신했다. 민아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과 은연중 느끼는 동질감을 담아 내 번호를 알려줬다. 체육복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왼쪽 상단 모서리 부근 액정이 살짝 깨져있는 아이폰이었다.
“오키. 연락할게 나 이제 간다!”
 내 번호를 저장한 민아는 내게 인사 같지 않은 인사를 하곤 3층 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나는 순간 민아와 내가 당연히 동갑이라 여기고 있는 날 발견했고, 동갑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3층 복도를 뛰어다니는 2학년 애들의 소리가 희미해졌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볼 법한 낡은 양피지 색깔의 4층 복도 마룻바닥을 쳐다봤다. 쉬는 시간은 아직 몇 분 더 남아있었고 복도보단 각 교실의 분위기가 소란스러웠다. 3학년 1반 교실의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같은 나이, 같은 학교, 같은 반이란 명목으로 날 친구라 생각하는 인간들이 말했다.
“혼자 쉬는 시간 20분 쓰냐?”
 뒷자리 남학생들이었다.
“가끔 물 빼줄 때도 있어야지”
 남자들은 웃었다. 여학생들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자기들끼리 떠들다 큭큭거렸다. 큭큭거리는 애들이 많았다.
 3개 분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상구조였고 창가 옆 1분단 중간이 내 자리였다. 의자를 꺼내고 앉았다.
 “미친놈아 20분밖에 안 걸려?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냐”
 작년에 전교 부회장을 맡았던 옆자리 짝꿍이었다. 나와는 달리 외향적인 성격이기에 종종 피곤할 때가 많지만, 학생회도 했던 만큼 자기 일엔 열심인 애다. 하지만 이전 수업엔 그런 면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한쪽 옆머리가 눌려있었다. 자율 학습 시간을 잠으로 때웠단 증거다.
 “넌 어떡하냐 넌 5분이면 끝날 텐데”
 책상 위에 펼쳐놓은 영어 문법책을 덮으며 말했다.
“지랄 말고. 야 다음 시간 숙제 다 했냐?”
“어”
“아니 우리 고3인데 숙제가 이렇게 많아도 되는 거임? 존나 빡쳐”
 짝꿍은 책상 밑에서 다음 시간 교과서를 꺼냈다. 난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너 동민아라고 알아?”
 부회장까지 했을 정도로 친구가 많고 성격도 좋은 놈이니 알만하다 생각했다.
“왜?”
 짝꿍 녀석의 표정이 의미심장했다.
“궁금하니까 물어봤지”
“갑자기?”
 녀석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며 눈 모양이 변했다. 웃음을 얼굴에 채워 넣었다.
“아 그냥 물어본 거야”
 사춘기 시절을 보내는 남학생이 동갑의 남학생에게 또래 여자에 관한 말을 꺼낸다면, 흔히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다. 이성적인 관심이 있거나 음란한 말을 하거나 둘 중 하난데, 웬만한 남학생들은 전자의 이유로 물어볼 땐 아닌 척하며 물어본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라 병신아. 별생각 없이 물어본 거라고”
“강찬준한테 봄이 오긴 한갑다?”
 나를 친구라 생각하는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었다. 계속 큭큭거리며 내 왼쪽 어깨에 가벼운 펀치를 날렸다.
“짜증 나는 소리 좀 하지 마라”
 조용히 헛웃었다. 왼손으로 짝꿍의 오른쪽 팔을 쳐냈다. 짝꿍은 3학년이 되고 나서 알게 된 놈이다. 2학년 때 전교 부회장이었다지만 그런 쪽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 당시엔 몰랐던 사실이다.

“냅둬라. 괜히 물어봤네”
“야 근데 진짜 궁금해?”
 얼굴의 웃음기를 지우며 내게 되물었다.
“됐어. 관심 있고 그런 거 아니니까 몰라도 상관없어”
 민아에게서 연락이 온다면, 연락이 오기 전 민아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물어본 것이다. 관심 없단 건 거짓말이지만 정말 큰 상관은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걔 문제 많은 애여서. 친해질 필요가 없는 애야”
 대학 입시를 위해 생활기록부 내용이 매우 중요한 고등학교 3학년 1학기의 학생들은 문제 있는 학생과 엮이는 걸 원치 않는다. 짝꿍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나를 내성적이지만 꽤 괜찮은 친구라 생각했으니 자기 딴엔 나름의 배려를 베푼 것이다.

 조용한 학생의 이미지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의 이미지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내 성적이 낮진 않았다. 전교권은 아니었어도 1지망 대학에 무난히 합격했으니 ‘조용한 학생은 성적이 높다’라는 명제에 부합하는 학생이지 않았나 싶다. 옆자리의 짝꿍은 최상위권 성적이었다. 서울대를 잘 보내는 학교답게 1학기 4월달 짝꿍이었던 전교 부회장 출신 이정우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합격하여 자존감 높은 1학년을 보내다 스물한 살에 군대에 갔다. 졸업 후 정우의 연락이 가끔 왔지만 스무 살 12월 이후 연락은 끊겼고 입대했단 사실 정도만 정우의 SNS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후엔 어떻게 사는지 모르다 몇 달 전 인터넷 기사 덕분에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스물두 살 서울대생 이일병이 총기 오발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서울대생이 죽은 사건이다 보니 기사까지 난 것이고 나는 그 기사 덕분에 동창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무슨 문제?”
 민아가 소위 말하는 일진인가 했다.
“걔 중국인 혼혈임”
 한국인답지 않은 특이한 성씨가 그제야 이해 갔다.
“그게 문제야? 인종차별주의자냐 너?”
“짱깨긴 하잖아”
 또다시 정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 또한 입꼬리를 올렸다. 미소 짓는 모양새긴 하나 아까 민아와 있을 때 나온 진실된 미소와는 다른 억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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