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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Jun 09. 2023

우울한 행복

강찬준 - 5

 친구를 사귈 필요를 못 느꼈던 나로선 학교가 끝나면 바로 학원에 가거나 도서관 혹은 집으로 가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자아 형성 이전 시기인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제외한다 해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모두 그렇게 보냈고 3학년 또한 그렇게 보냈다. 물론 학교에 있을 땐 같은 학급의 학생들과 무탈히 지냈다. 누군가 함께 놀자고 하면 상황을 봐서 함께했다. 단지 정을 줄 이유가 없다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기에 먼저 다가간 적이 없던 것뿐이다. 이런 내게 재밌는 부분이 있었는지 친해지고 싶다며 말을 걸고 장난치는 동갑의 인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체로 그들과 1년 동안 어울렸다. 1년이 지난 뒤엔 학년이 바뀌며 새로운 동갑의 인간들을 만나게 되고 전년도에 함께 다닌 인간들은 복도를 거닐다 인사하는 정도의 인간으로 바뀐다. 이런 컴팩트한 한 해 패턴은 스물두 살인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따로 연락을 이어가지도 않으니, 아마도 날 친구라 생각했던 인간들은 나를 조용한 놈, 친한 친구는 아닌 같은 반 친구 정도의 기억 속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펜이나 꺼내”
 복도에 나가 있던 같은 반 학우들이 들어왔다. 쉬는 시간이 끝나가는 중이었다.
“하나 더 있어”
“시끄러”
“나도 이거 들은 건데..”
 정우는 어떤 이유에선지 말하기 살짝 껄끄러워했다.
“걔 걸레라더라”
 이때부터 우리 둘의 목소리는 낮아졌다.
“뭔 소리야”
“시발 나도 잘 몰라. 걔 작년에 1학년으로 전학 왔는데, 전학 온 이유가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그런 문제 있어서 온 거래” 정우는 욕을 즐겨 하는 편이었다.
“아 우리보다 한 살 어려?”
 3층으로 뛰어가던 민아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뜀박질에 맞춰 진녹색 체육복을 배경으로 고동색 뒷머리가 찰랑거리는 모양이 꼭 바람에 맞춰 흔들거리는 잎과 줄기 색이 반전된 버드나무와 같았다.
“노노 나이는 동갑. 학교를 아예 1년 늦게 들어온 거 같아”
“몸 팔고 그랬던 건가”
“그건 아닌 거 같고 그냥 아는 애들끼리 돌려먹었겠지”
“넌 어떻게 알아”
“지난주 월요일에 수업 끝나고 걔 다니던 학교 애들 찾아왔어. 학교 뒤에서 소리 지르고 싸우고, 싸우는 거 보다가 알았다”
 민아 눈썹과 손목에 붙인 반창고가 생각났다.
“본 거야?”
 뒷자리 남학생이 문 좀 제발 닫고 다니라고 방금 들어온 여학생에게 소리쳤다.
“들었다니깐. 경혜가 봤대. 말해주더라”
 여학생은 남학생을 무시했다.

 정우는 말하기 껄끄러워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말하면 더 재밌게 말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것이다.
“존나 대박이지 않냐?”
 경혜에게 들었다는 말과 대박이지 않냐는 말 사이에 뜸을 들였다. 내 반응을 기대한 것처럼 보였다.
“어 대박이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아 무미건조한 톤으로 말했다.
“짱깨들이 원래 좀 그런가?”
 내 반응이 아쉬웠던지 평소 같았으면 내가 웃어줄 만한 말을 내뱉었다. 수업 시간 종이 울렸다.
“야 펜 꺼내. 쌤 왔어”
 듣기 싫었다. 교사가 교실 앞문을 열고 있었다.
“알겠다 쒸벌” 정우가 다시 목소리를 키웠다.
 정우는 교과서를 펼쳤다. “진짜 걔는 앞으로 학교 어떻게 다니지?” 이번엔 내 반응을 기대하며 말한 게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에 중얼거리는 혼잣말 같았다. 책상 위 필통에서 펜을 꺼냈다. 나는 샤프를 꺼냈다.

 수업 시간이었지만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동민아란 인간을 생각하기에 한 시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민아는 중국인 혼혈이다. 동 씨라는 성이 어색했던 까닭이 이것 때문이다. 내가 2학년 2학기일 때 1학년으로 전학을 왔다. 이전 학교서의 친구 간 –아무래도 성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문제로 인해 전학을 왔다. 나이는 나와 같은 열아홉 살, 학년을 일 년 꿇어있는 상태다. 다음 주에 자퇴한다고 말했지만 그게 사실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남자 화장실에 들어와 볼일을 보고, 이성이 앞에 서 있어도 칸막이 문을 벌컥 열어버리는 것은, 어차피 자퇴하니 상관없단 뜻으로 해석된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민아로 가득 찼던 수업이 끝났다. 정우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시간도 많이 들지 않았다. 내가 집중한 것은 민아 그 자체였다. 세면대 앞에서 정리하던 앞머리의 흔들림, 나에게 집중하는 어두운 갈색 눈동자, 적당히 허스키하고 상당히 나른한 목소리. 이미 봤던 것들을 생각했고 보지 못한 것들을 상상했다. 체육복이 아닌 교복을 입은 민아, 눈썹이 찢어진 채로 학교 뒤편에서 누군가와 다투는 민아, 화장실이나 복도가 아닌 곳에서 대화하는 미소 짓는 민아. 그리고 미소 지은 나.

 화장실로 뛰어갔다. 교실에서 화장실은 여전히 멀었다. 민아의 진녹색 체육복 바지 속 허연 허벅지, 작아 보였던 흰 팬티와 빨간 틴트가 묻은 앞니를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소변보는 학생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손을 천천히 움직였다. 민아가 앉아있던 변기였다. 수업 종이 쳤지만 상관없었다.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다. 손놀림이 빨라졌다. 호흡이 빨라졌다. 5분 정도 더 지난 뒤 교실로 돌아갔다. 보건실에 다녀왔다 거짓말했고, 난 민아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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