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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성인 May 15. 2023

우울한 행복

강찬준 - 3

 벽에 기댄 나를 보고도 당황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흘끗 쳐다보고 손을 씻을 뿐 별말은 없었다. 그 아이가 말을 꺼냈다. 잠깐의 침묵이 깨졌다.
“아 하필 휴지 별로 없는 칸으로 들어갔네. 휴지 줘서 고마워.”
 직접 쳐다보진 않았다. 비누칠한 손을 비비며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이야기했다.
“왜 남자 화장실에 있어?”
 내가 물었다.
“어차피 체육 시간에 다 반에서 공부하잖아. 그래서 그냥 가까운 화장실로 온 거지.”
 똑똑한 생각이었다.
“다음 주면 학교도 안 나오니까 쌤들한테 걸려도 별 상관없어.”
“왜?”
“자퇴할 거야.”
 수도꼭지를 잠그는 오른쪽 손목과 오른쪽 눈썹 부근에 붙어 있는 살구색 반창고가 보였다. 사정은 모르지만, 누구와 싸운 건지, 혹시 학교폭력 때문인지,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하는 –사실은 내 알 바 아닌- 무게감 없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너 이름 뭐야?”
 물 묻은 손을 바지에 닦았다.
“강찬준”
 난 내 이름을 말했고 그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벽에 기대어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그 아이의 체육복 바지 허벅지 부근의 물 얼룩에 집중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 본 구렁이의 등비늘 모양과 비슷했다. 그 아이는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매만져댔고 구렁이가 집어삼킨 생쥐를 생각하며 이번엔 내가 질문했다.
“넌 이름이 뭐야?”
“민아.”
“외자야?”
“이름만 물어봤잖아. 성은 안 물어보고.”
 처음 보는 사람이 감정 없는 나른한 말투로 장난인지 짜증인지 모를 대답을 한다면 듣는 입장에선 괜히 위축된다. 그것도 남자 화장실에 당당히 들어오는 여학생이 그런다면 훨씬.

“또라이냐?”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위축된 자아를 숨기기 위한 방어적 대답이었다. 민아는 매만지던 앞머리를 이어서 정리하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을 움직여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봤다.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곤 별 관심 없다는 듯 작은 코웃음 소리와 함께 “그렇게 생각해라”라고 한 뒤 화장실을 나섰다.




 난 그대로 반에 돌아갔으면 됐다. 그럼 이상한 여자애 한 명 만난 것으로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사춘기의 호기심은 익숙한 학급이 아닌 낯선 이성에게로 향했다. 나를 무시했다고 느꼈기에 기분 나쁠 수 있었고, 태연스레 말꼬리를 잡는 모습에 화가 날 수도 있었지만, 진짜 어떤 사람인가 하는 순수한 궁금증이 나머지 감정들을 전부 잠식시켰다.

 복도를 걸어가는 민아를 따라가 질문했다.
 “그래서 성이 뭔데?”
 분명 대화의 맥락엔 맞는 질문이었지만 스스로를 또라이로 만드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민아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아까 남자 화장실에서 마주한 고동색의 눈동자는 여전했지만, 도자기 위에 입혀진 유약과 같이 민아의 홍채 위 안광이 은은히 반짝였다.
“궁금해?”
“어”
 3학년 8반 앞이었다. 민아와 나, 둘 다 걸음을 멈췄고 고개만 돌렸던 민아가 몸을 틀어 돌아섰다.
“왜?”
 자연스레 되묻는 민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허스키했다.

 궁금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궁금했다. 그래서인지 굳이 대답해야 하는 건가란 의문이 들었고 ‘곧 쉬는 시간일 텐데’라는 생각에 왼손의 손목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인조가죽 스와치를 흘끗 쳐다봤다. 조용히 공부할 땐 초침 소리가 살짝 거슬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거운 세이코를 차기는 싫었다.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2분 뒤 쉬는 시간이었고 화장실에서와는 다르게 대화의 흐름을 내가 주도하고 싶었다.

“동 씨야. 동민아.”
 화장실에서 거울만 쳐다보던 것과는 다르게 눈을 직접 마주쳤다.
“동 씨 되게 특이하네. 근데 내가 이름은 안 물어봤잖아?”
 아까와는 반전된 상황이었다. 민아가 당황했거나 장난으로 받아들였으면 했다.
“장난도 치네?”
 당황한 기색은 전혀 없이 웃음을 머금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내 교복 이름표를 쳐다봤다.
“너 나 알아?”
“동민아래매”
“그니까 누군지 아냐고”
 싱긋 웃으며 말하는 민아의 입술이 움직였다. 입술 사이 틴트가 살짝 묻은 앞니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화장실에서 본 허연 허벅지가 생각났다. 아직 꽃샘추위의 쌀쌀함이 남아있는 4월 초였지만, 교복 바지는 얇았고 가운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몰라 너 전학생이야?”
 묵직해진 사타구니를 들키지 않으려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었다.
“응 맞아. 작년 2학기에 왔어”
“그러니까 모르지. 이 학교 3년 다니면서 동민아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너 친구 별로 없지?”
 어떻게 알았나 싶었다.
“어.. 뭐 많지는 않아”
“그래보여. 놀리는 거 아니다? 나도 친구 없어”
“그래보여”
 웃으면서 말하는 민아에게 나 역시 입술을 반원 모양으로 만들며 대꾸했다. 오랜만에 짓는 미소였다. 민아도 미소 짓고 있었다.
“근데 아깐 왜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냐?”
 말을 끝맺기 전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1학년, 2학년 때와는 달리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의 쉬는 시간은 느긋하다. 종이 울리자마자 복도로 튀어나오는 애들 대신 교실에서 숙면을 취하는 학생이 많다는 뜻이다. 덕분에 여학생인 민아와 남학생인 내가 단둘이 복도에 서 있는 광경을 본 애들은 없었다. 없을 수밖에 없었다. 종이 울리자마자 민아가 내 손목을 잡고 중앙 계단 쪽으로 끌고 갔으니깐.


“뭐해?”
 손목을 갑자기 잡힐 때의 놀람보단 혹시 손목을 잡아챌 때 내가 발기한 걸 눈치챘을까 하는 부끄러움 때문에 민아의 손을 뿌리쳤다.
“따라와 봐”
 민아는 교실에서 나오기 시작한 몇몇 학생을 의식했다. 계단을 좀 내려가고 나서야 멈췄다. 3층과 4층 사이였다.
“갑자기 왜 이러냐”
 사타구니가 진정된 내가 물었고 민아는 다른 걸 물어봤다.

“나랑 친해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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