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곳은 많고, 먹어야 할 빵은 더 많다!
B·R·E·A·D
생각만으로도 코앞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그것!
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다.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인류와 함께한 역사 또한 길다. 그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나라에서 기후와 문화, 종교에 따라 다양한 빵이 탄생했다.
즉 세계는 넓고 가야 할 곳은 많으며 먹어보아야 할 빵은 더 많다.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의 빵을 소개한다.
베이글의 재료는 밀가루와 소금, 이스트, 물뿐이다. 반죽을 굽기 전 끓는 물에 데쳐 불순물을 한 번 더 걸러내는데, 오븐보다 낮은 온도의 물에서 반죽을 익혀야 해 열전도율이 높은 도넛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런 이유로 1999년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000년 동안의 10대 발명품 중 하나로 베이글을 선정했다. 쫄깃하면서도 씹는 맛이 독특한 베이글은 본디 오스트리아의 유대인들이 만들어 먹던 빵이다. 19세기에 이들이 미 동부에 정착하면서 베이글이 전해졌다. 베이글을 즐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반을 갈라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 것이다. 베이글의 수도로 불리는 뉴욕의 브런치 카페나 레스토랑에서는 크림치즈를 바르고 절인 연어, 수란, 홀랜다이즈 소스를 얹어 먹는다. 주의할 점이 있다. 뉴욕에서는 잘라 놓은 베이글을 사지 말라는 것! 잘라 놓은 베이글에는 판매세가 별도로 붙는다.
단팥빵은 1874년 이바라키 현 출신인 기무라 부자에 의해 탄생했다. 메이지 시대 왕실 주방에서 일했던 기무라 야스베에는 나가사키의 네덜란드 저택에서 빵을 굽던 조리사를 만난다. 그에게서 빵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무라는 빵에 흥미를 느껴 50살이 넘은 나이에 빵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밥에 익숙한 일본인들은 빵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이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의 입맛을 고려해 이스트 대신 술 누룩을 이용했고, 팥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성향을 반영해 단팥을 넣은 빵을 만든 것이다. 이런 형태의 빵은 이후 일본이 동아시아를 점령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킬 당시 군용식량으로 애용됐다고 한다. 우리가 즐겨먹는 일본식 빵의 뿌리는 알고 보면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힘을 보탠 음식인 것이다.
고구마와 생김새가 비슷한 ‘유카’ 가루로 만든 치파는 좋게 말하면 담백해서 질리지 않고, 다르게 말하면 밋밋해 개성이 없는 빵이다. 그러면서도 씹을수록 고소한 맛을 내는 게 베이글과 닮았다. 예전에는 우리의 쌀밥처럼 주식으로 먹었지만 요즘에는 파라과이에서도 추억의 간식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아직도 가난한 서민들은 세 끼를 모두 이 치파로 때우기도 한다고. 이태원의 파라과이 식당 ‘꼬메도르’에서 치파를 맛볼 수 있다.
에크멕은 터키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빵이다. 우유의 무거운 맛을 뺀, 소금기도 설탕기도 없는 담백한 빵으로 겉면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몽땅하고 둥글넓적하게 생겼는데 반 뚝 잘라 속을 채우면 케밥이나 샌드위치가 되고, 손으로 찢어 반찬 국물을 찍어 먹으면 우리나라 밥상의 쌀밥처럼 든든한 한끼 식사가 된다. 터키인들과 빵을 먹을 때는 다음과 같은 관습에 주의해야 한다. 음식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지 말아야 하고 음식을 식히기 위해 입으로 불지 않는다. 또 숟가락이나 포크를 빵 위에 놓지 않으며, 상대방 앞에 있는 빵 조각을 먹어서도 안 된다.
한국인이 밥심으로 살아간다면 이집트인의 힘의 원천은 에이시다. 누룩을 넣지 않은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운 에이시는 인도의 난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작고 모양이 풍선처럼 둥글다. 게다가 난이 주로 뭔가를 발라 먹는데 쓰인다면 에이시는 발라 먹고, 찍어 먹고, 싸 먹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집트의 모든 음식과 어우러진다. 속이 비어 있어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기도 하고, 다른 음식을 싸서 함께 먹기도 한다. 이집트의 레스토랑에서는 어딜 가나 음식과 함께 한 바구니의 에이시가 나온다.
반죽을 막대기처럼 가늘고 길게 만들어 구워내는 그리시니는 1668년 토리노의 제빵사 안토니오 아메데오가 소화불량에 걸린 군주를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 나폴레옹도 이 빵을 좋아해 훗날 황제의 식탁까지 올라갔다. 포카치아는 이스트를 넣고 납작하게 구운 이탈리아 정통 빵으로 바삭한 크러스트와 쫄깃한 식감이 매력이다. 본래 가난한 서민들이 최소한의 재료로 만들어 먹던 주식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다양하게 변화를 주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레시피를 갖고 있다. 토핑에 따라 크게 짭조름한 맛과 달콤한 맛으로 나뉘며, 반죽에 토핑을 얹어 굽는 방식이 피자와 유사해 피자의 전신으로 보기도 한다.
독일을 대표하는 프레첼은 반죽을 길게 만들어 가운데 매듭이 있는 하트 모양으로 구운 빵이다. 독일 남부지역에서 유래했으며 바삭바삭한 표면과 대조적으로 옅은 황금빛이 도는 속살의 식감은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다. 표면에 소금 알갱이가 알알이 박혀 있는데, 중독성 있는 짠맛을 품고 있어 맥주와 어울린다. 프레첼은 뮌헨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를 찾은 사람들이 맥주에 곁들여 즐겨 먹는 빵이기도 하다.
매일 홍차를 즐기는 영국인들이 차에 곁들여 가장 즐겨 먹는 빵이 스콘이다. 버터와 밀가루, 우유, 설탕을 반죽하여 구워낸 작은 크기의 빵으로, 스코틀랜드의 배넉(Bannock: 납작하고 둥근 모양의 빵)에서 유래했다.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해 발효시간을 단축하면서 빵집에서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대중적인 빵이 되었다. 약간의 단맛과 짠맛이 섞여 있으며 촘촘하면서도 포슬포슬한 식감이 특징이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원이나 사각형, 삼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스콘에는 흔히 버터, 크림, 잼을 발라 먹고 홍차를 곁들인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넛의 역사는 네덜란드 ‘올리코엑(Olykoek, 기름진 케이크)’에서 시작됐다. 올리코엑은 빵을 만들고 남은 반죽을 튀긴 것으로 반죽의 가운데 부분이 잘 익지 않자 이 부분에 견과류나 과일을 채워 넣어 튀긴 빵이다. 중앙에 구멍이 있는 형태의 도넛은 1847년 네덜란드계 미국인 한센 그레고리에 의해 시작됐다. 선장이었던 한센은 항해 중 키를 잡고 있을 때에도 빵을 먹고 싶어 어머니에게 가운데 부분에 구멍을 낸 올리코엑을 부탁했단다. 한센이 도넛에 구멍을 만들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다. 구두쇠였던 한센이 선원들에게 나눠줄 빵의 원가를 줄이기 위해 가운데에 구멍을 만들었다는 설과 잘 익지 않는 가운데 부분을 싫어해 스스로 동그란 후추통 뚜껑을 이용해 반죽을 잘라냈다는 설도 있다.
한국에서는 ‘꽃빵’으로 알려져 있는 화쥐안은 중국 음식을 먹을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밀가루 빵이다. 그 이름처럼 기름지고 간이 센 중국 식탁에서 빠져서는 안될 ‘식탁 위의 꽃’이다. 하지만 꽃잎 모양을 본떴을 뿐 실제 빵에는 꽃이 있다거나 꽃잎이 들어가지 않는다. 주로 중국의 북부지방에서 면이나 밥 대신 주식으로 화쥐안을 먹는다. 밀가루와 소금 그리고 기름을 넣어 반죽한 뒤 찜통에서 쪄내는 화쥐안은 기본적으로 밀가루로 만든 담백한 빵이지만 단맛이 나는 설탕꽃빵과 참깨꽃빵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1인당 육류 소비량 세계 1위인 호주 사람들은 파이 안에도 고기를 채워서 먹는다. 매일 아침 호주인들이 한 손에 들고 움직이는 빵이 바로 미트파이다. 일반적으로 미트파이는 페이스트리 반죽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흥건하게 육즙이 나올 정도로 구워내는 것이 특징인데, 속재료는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 종류에 구애받지 않는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해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어 먹으며, 마트에서도 손쉽게 냉동식품으로 구입 가능하다. 그냥 먹기도 하지만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뜨거운 파이 위에 얹어 먹기도 한다.
러시아 사람들의 빵에 대한 애정은 강하다. 보통의 주부들은 대개 집에서 빵을 구우며 정신적인 지상의 양식으로 여긴다. 옛 소비에트 시절의 슬로건이 ‘무엇보다, 빵을!’ 이었다니 얼마나 빵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피로그는 밀가루 반죽 안에 다양한 소를 채워 만드는 러시아식 파이다. 속재료가 단 것과 짠 것, 윗면을 그대로 드러낸 것과 반죽으로 덮은 것, 모양이 둥근 것과 각진 것, 반죽을 이스트로 발효한 것과 발효하지 않은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피로그는 18세기 러시아 왕실의 만찬에 등장할 정도로 연회 요리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이름도 연회를 뜻하는 피르(Pir)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이름처럼 러시아 사람들의 축제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빵이 바로 피로그다.
: Yellow trip 카카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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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현주(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