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계속 부끄럼을 몰랐으면.
초겨울임에도 여름처럼 따뜻했던 어느 날, 34개월 미루를 데리고 어김없이 리스본 산책에 나섰다. 집에서 언덕을 따라 쭉 내려가면 있는 인텐덴떼(Intendente) 광장에서 작은 벼룩시장이 열렸다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혼자서 5분이면 갈 거리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미루와 함께 30분도 넘게 걸려 간 광장은 왜 이제 왔냐는 듯 우리를 반겨주었다. 시장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분위기는 완벽했다. 딱 맞게 모인 적당한 수의 사람들, 허투를 게 없는 가판대의 물건을 살피며 흥정하는 사람들, 살짝 고개를 꺾은 햇살 아래, 수염으로 가렸지만 잘 생긴 얼굴은 감출 수 없는 젊은 남자가 기타를 치고 (오빠, 웬만하면 그 얼굴 좀 제대로 보여주지.) 그 연주에 맞춰 손뼉 치고 춤추는 사람들.
아! 정말 분위기 끝내줬다!
그리고 그 속으로 미루가 뛰어들었다. 남자가 부르는 마누 차오(Manu Chao)의 ‘Me Gustas Tu’ 노래에 맞춰 핑크색 풍선을 들고 광장 한복판에서 마치 국민 체조하듯 온몸을 좌우를 흔들었다. 세련된 춤사위는 아니었지만 만 두 살 아이의 몸동작은 주위의 모든 이를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포르투갈 말이어서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노래 부르는 잘생긴 오빠도 미루를 향해 이번에 새로 고용한 댄서라며 박수 한 번 쳐달라고 농담을 했다. 더할 나위 없이 모든 게 좋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다. 왜 엄마인 난 그 속으로 뛰어들어 미루와 같이 춤추지 못했을까? 어느 동양 여자 엄마와 그녀의 딸이 리스본 한복판 광장에서 막춤을 추는,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멋진 광경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마 그 순간 내게 ‘부끄럼’이란 못된 친구가 다가와서였을 거다. 순간을 잡는다는 명목 하에 카메라 뒤로 숨어 그저 셔터만 눌렀을 뿐, 정작 그 순간을 같이 즐겨야겠단 용기를 내지 못해서였을 거다. 동양 여자는 나 하나였으므로 내가 엄마라는 건 뻔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같이 덩덕쿵 체조라도 췄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번 창피하면 그만인 것을 그 속으로 달려들지 못 한 내 부끄럼이 아직도 아쉽다. 참 신기하다. 미루 데리고 공연까지 했는데, 아직도 이런 순간에 부끄럼이 튀어나오다니. 무대 위는 괜찮고 무대 밖에선 안된다 이 말인가?
이럴 땐 아직 부끄럼 자체를 모르는 미루가 부럽다. 미루를 보면, 아니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원래 유희적 동물이란 걸.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걸 다스리려는 강도는 다르지만 (사실 왜 다스리려는 지도 모르겠다.) 가슴속 내재된 흥은 본능이란 걸.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땐 타고난 퍼포머(performer)지만 한 번 자아가 생기고 타인의 판단이 두려워지면 ‘부끄럽다’는 조금은 귀여운 표현을 내세워 그 뒤로 숨어버린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일관된 ‘교육’의 틀에 갇힐 때 이런 순간 광장에 나가 춤추는 대신 그냥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거다.
어렸을 때 난 참 조용했었다. 엄마는 종종 내가 맹하고 튀는 것 없는 평범한 애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고는 하지만 분명 말투는 농담이 아니었다. 맹하고 평범했다니, 원래 난 정상이었구나.)
중학교 때 반에서 했던 게임 하나가 생각난다. 술래를 정하고 그 술래가 눈을 감은 사이, 반 아이 중 한 명이 교실 밖으로 나가면 술래가 눈을 뜨고 없어진 아이가 누군지 맞추는 게임이었다. 존재감을 측정하는 게임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참 잔인한 게임이었는데, 당한 적은 없지만 만약 그 게임에서 내가 나갔었다면 아무도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난 존재감 없고 조용했으니까.
안 튀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것 같다. 적당한 성적을 유지했고 학급 일도 잘해봤자 미화부장 정도의 자리만 했다. 그건 자존감의 부재라기보단 게으름이었다. 괜히 시선 받아 쓸데없는 구설수에 오르는 게 싫었고, 그에 따른 감정 소모가 싫었다. 아니 귀찮았다고 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때 난 그걸 부끄럼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의 근원은 내 게으름이었다. 그런 내가 연극을 했다는 게 참 신기하다. 무엇보다 튀는 게 연극이거늘.
이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소소한 기회와 경험을 놓쳤을지 생각해 본다. 튀는 게 아니라 경험한다고 생각했으면 좋았을 것을. 게으름은 부끄럼을 유발하고 부끄럼은 탐구심을 방해한다. 그리고 내 경험치는 딱 그만큼 낮아진다. 어렸을 때 이미 몸에 게으름이 체화된 내가 그 껍질을 깨기란 여행이란 보물을 만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학생활은 차치하더라도 36살에서야 제대로 된 여행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한 고개만 더 넘으면, 문 한 번만 더 열면, 내 상식 밖의 세상이 밤하늘의 별처럼 흐드러지게 있다는 걸 여행을 통해 수없이 확인했음에도, 어느 순간 이렇게 체화된 게으름이 툭 튀어나오니 말이다. 그렇게 난 카메라 뒤에서 조용히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구경꾼의 탄생이었다.
춤출 때 미루 얼굴에 나타난 행복을 기억한다. 다른 건 모두 잊고 순간에 몰입한 그 집중력도 기억한다. 미루가 계속 부끄럼을 몰랐으면 좋겠다. 부끄럼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기회에 나서서 인생의 자양분으로 쓸 수 있는 경험들을 지구 상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운 하륵처럼 빨아들였으면 좋겠다. 아이는 스펀지라고도 하니까.
나의 의무는 게을러지지 않는 거다. 그래야 언젠가 이런 순간이 다시 올 때 꼭짓점 댄스 건 메뚜기 춤이건 막춤 퍼레이드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다음 순간엔 용기를 낼 거다. 그때를 기다린다.
p.s: 그나저나, 내 눈엔 이 총각이 잘 생겨 보이는데, 모두 나와 동의하는 게 아닌게벼? 하아~ 이렇게 아줌마 티를 팍팍 내누나!
All photos by Yellow Du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