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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Apr 04. 2019

한국으로 돌아온 후 몇 개의 단상

멀리 있으면 더 잘 보이는 법


#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연한 이야기지만) 2016년 12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때 본 한국은 참 많이 변했었다. 워낙 변화에 민감하고 트렌드가 빠른 나라이니 당연하다 싶지만, 한 번 바뀌는데 백만 년 걸리는 유럽에 있다 돌아오니 신선하고 혹은 신기하기까지 한 것들이 많이 보였다. 아니, 원래 그랬는데 그제야 보였던 걸 수도. 약간의 이방인의 눈으로 처음 한국에 돌아와 느낀 사소한 것들을 짤막하게 기록한다.


1. 모두가 절망해 마지않는 미세먼지의 공격을 직격으로 맞으니 정신을 못 차렸었다. 하루 외출하면 다음 날엔 쉬어야 하는 저질 체력에 절망했었는데 ‘서울 공기가 나빠서 유난히 더 피곤한 것일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라는 지인의 말이 적잖은 위로가 됐다. 예전의 그 파란 하늘은 어디로 갔나. 그립기 그지없다.


2. 마을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이 20대의 파릇파릇한 청년이어서 깜짝 놀랐다. 기사님은 항상 어르신일 거라는 건 내 편견이었나? 아니면, 말로만 듣던 청년 실업의 실태를 눈으로 확인한 건가? 택시기사도 20대가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택시를 안 타서 모르겠다.)


3. 서울의 쓰레기 배출량이 이렇게 많았었나? 우리 동네는 화, 목, 일이 쓰레기 수거일인데, 수거일마다 길거리에 산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 양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저거 어찌 다 수거하나, 어떻게 다 분리하나, 가뜩이나 쓰레기 문제로 지구가 괴로운데 제대로 분리가 되나, 혼자서 이런저런 걱정을 한다. (그나마 아파트 단지에선 분리가 잘 되는 듯하다. 하지만 일반 주택가는 뒤죽박죽 말도 아니다.)  


4. 서울에 참 많다고 느낀 것들이 있는데, 카페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집 건너 있는 고깃집이다. 하루에 우리나라 인구가 먹어 치우는 육류 소비량은 얼마나 될까? 그 많은 고깃집마다 사람이 꽉 차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고깃집 외에 많다고 느낀 건 개인 병원, 약국, 교회, 복덕방, 편의점, 그리고 핸드폰 대리점 등이다. 길을 걸을 때마다 몇 개인지 세고 다녔다.


5. 몇 년 사이 아열대 기후가 되어 동남아랑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 현상이지만 진짜 앞으로가 암담하다. 엘 고어의 ‘불편한 진실’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끓는 물에서 서서히 익혀지는 개구리일지도.


6. 거리에서 ‘도를 믿으십니까’ 사람들과 말 그대로 ‘미친’ 사람들을 자주 봤다. 두 명의 청년과 처녀가 한 사람을 붙잡고 얘기를 할 때, 왠지 모를 컬트의 기운이 감돌면 딱 봐도 그쪽 사람들이다. 한동안 안 보이더니 다시 나타났다. 여전히 증산도인지, 아니면 그새 신흥 종교가 등장했는지 궁금하다.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이 확실한 분들을 볼 때도 잦았다. 어깨까지 내려온 희끗희끗한 직모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위아래 검은 옷을 입고 허공에 삿대질하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아주머니를 보니 진짜 삶이 팍팍한 걸 느꼈다.


7. 서울의 대중교통 시스템은 정말 좋다. 버스와 전철의 연결이 잘 되어 있고 그 수량도 많다. 다음 버스가 몇 분 후에 오는지 스크린으로 바로 알려주다니! 서비스하면 역시 대한민국!


8. 먹거리 천국! 싸고 맛난 거 천국! 배달 천국! 24시간 유흥 천국! (먹는 거에 목숨 건 민족 같다.)


9. 미루는 아침 9시 반에 등원을 하고 4시 반에 하원을 한다. 걸어서 8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서 통학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데, 등하원을 할 때마다 참 많은 노란색 버스를 보게 된다. 처음엔 왜 이리 노란 버스가 많은지 의아해했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수학 교실, 태권도 교실, 발레 학원, 영어 학원, 한문 학원... 버스에 쓰여 있는 타이틀과 로고도 다양하다. 그리고 그 버스가 멈추는 곳엔 ‘안녕하세요~’ 아이를 받고 내리는 선생님이 있고, 또 ‘잘 다녀와~’ 아이를 보내고 받는 엄마들이 있다. 대충 차려입고 나온 엄마들의 담소도 빠지지 않는다. 아침 9시 반과 오후 4시 반. 대한민국 미취학 아동 아이들의 바쁜 동선이 이 버스를 통해 한눈에 그려진다. 그런데 미루는 이 버스를 타지 않아서 다행이다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10. 누구는 상가 간판으로 덮인 건물 모습이 너무 흉칙하다고 하는데, 난 이것 역시 개성이라 생각한다. 모든 게 세련될 필요는 없다. 못생긴 것에도 매력이 있다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서 난 좋다.


친정집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어린이집에 잠깐 다녔던 미루


# 마력의 대한민국


이 모든 사소한 게 유난히 내 눈에 띄었던 건 그동안 자리를 비웠던 내 시간과 비례할 거다. 익숙해지면 신기하기는커녕 당연시되겠지. 그리고 정말로 당연하게 되었다. 재작년 말 한 친구가 내 얼굴을 보더니 ‘한국 생활 1년 만에 얼굴이 팍삭 늙었구나!’라고 농담처럼 날 놀렸었다.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로 다녀서일 수도 있지만 진짜 팍 늙었을 수도 있겠다. 유럽과는 확실히 다른 리듬이니까.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에 발을 딛는 순간 바로 대한민국 마인드로 리셋이 되나 보다. 돌아온 후 모든 계획이 생각보다 더딘 진전을 보이자 빨리빨리 진행이 안 된다고 투덜댔으니까. 그렇게 슬로우하게 살았는데도 말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었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라는 극과 극이 공존하는 대한민국. 세계 최고의 인터넷을 자랑하고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대한민국. 국정홍보처 캐치프레이즈였던 ‘다이나믹 코리아’란 말이 딱 어울리는, 심심할 일이 없는 역동의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밖에 있으면 그렇게 그리울 수 없지만
막상 안에 있으면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게 만든다.


마성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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