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느낀 잡생각을 씁니다.
1.
요즘 재미를 붙인 '대화의 희열' 시즌 1의 '송해'편을 봤다.
황해도가 고향이신 송해 옹의 고향 바라기가 많은 부분 차지했는데, 92세의 그는 여전히 죽기 전에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구우욱~ 노래자랑!'을 외치는 꿈을 가지고 계셨다.
문득, '고향'이란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딱히 '고향'에 맞먹는 어떤 정서 자체가 없다는 걸 자각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버스에만 올라타면 어릴 적 살던 곳에 쉽게 갈 수 있는 내게, 송해 옹처럼 사무치도록 그리울 수 있는 어떤 곳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참 아이러니다. '난 지금 집으로 가고 있어'란 제목의 매거진을 브런치에 연재할 만큼 지금껏 난 내가 자리 잡고 살 곳을 찾아 떠돌아다녔는데, 누구보다 장소, 공간, 집, 뿌리에 대한 갈망이 클 텐데, 그런 내가 정작 고향에 대한 정서가 없다니. 물론 어렸을 때 뛰놀던 당인리 발전소 앞 폐지 수거장 같은 곳에 대한 추억은 있지만 그게 내게 어떤 절실함을 줄 수 있겠는가?
보면서 계속 생각했다. 저렇게나 고향에 가고 싶을까? 왜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남아 있는 건 하나도 없을 텐데? 감히 상상해 본다. 지금 와서 '재령'이란 지역 자체를 보고 싶은 건 아닐 터, 두고 온 어머니의 흔적과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때 그가 희미하게나마 만들던 작은 역사의 끄트머리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거겠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그 느낌이 무엇일지 쉽사리 상상이 안 된다.
사실 이 모든 서사가 가능한 건 순전히 그곳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갈 수 있으면 이런 드라마 자체가 성립이 안 되지. 갈 수 없을 때, 볼 수 없을 때, 만지지 못할 때, 가지지 못할 때, 즉 결핍일 때 모든 건 절실해지고 서사가 된다. 그리고 내가 이런 서사의 힘을 그저 '신파'라는 이름으로 격하하진 않았나 되돌아보게 한다. 왜 자꾸 보지도 않은 영화 '국제시장'이 생각나던지.
'대화의 희열, 송해'편을 추천한다. 휴지통 하나 옆에 둬야 할 거다.
2.
미루는 커서 망원동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여길까? 왠지... 아닐 것 같다.
무릇 고향은 인간에게 무시 못 할 근본적인 뿌리를 제공할 텐데, 만약 그게 없다면...
그렇다면 미루는 뿌리 없는 아이가 될까?
아이고, 그만하자, 머리 터진다.
어쩌다 본 예능 프로 하나 때문에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문다.
더불어 '뭉쳐야 찬다'도 봤는데, 낄낄거리며 엄청 재미있게 봤음에도 끝에는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
요즘 예능 참... 잘 만드는구나.
금요일 하루를 예능 프로와 함께 보냈다. 재밌었다.
(집에 티비가 없어서 다시 보기를 한다. 난 넷플릭스를 보는데, 이런 예능이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얼마나 좋아!)
평소 페이스북에 단상처럼 올리던 글을 마음먹고 일기처럼 페북과 브런치 동시에 올립니다.
글쓰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기에 독자가 그동안의 제 신상 몇 가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이 전개됩니다.
(ex: 다문화 가족이며, 오랫동안 여행을 했으며, 딸아이 미루는 한국 나이로 7살이며,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며, 얼마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