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설 #3-20190707

오늘 하루 느낀 잡생각을 씁니다.

by Yellow Duck

1.

신분당선 강남역 플랫폼엔 양 방향 한 개씩 큰 그림이 걸려있다. 둘 다 같은 작가의 그림이고, 주제 및 모티브도 같다. 주제는 이른바 '국뽕'이고 모티브는 '싸이'다. 강남 스타일, 바로 그 싸이. 처음 그 그림들을 봤을 때 뜨악했던 그 당황스러움을 잊지 못한다. 입을 벌린 채 한동안 바라봤었지. 그리고 내뱉었지.


- 세상에, 이렇게 조악한 그림이라니! 도대체 누가 그린 거야?


작가의 이름을 찾아봤다. 얼씨구? 작가의 말까지 옆에 현판으로 만들어져 떡 붙어있네. 순간 들었던 생각은 이렇다.


- 이 작가 진짜 강심장이네. 이런 그림을 그려놓고 작가의 말까지 써서 붙이다니!


둘 다 큰 그림이다. 딱 봐도 많은 시간과 정성, 물감을 투자해서 그린 그림이고 무슨 의도인지도 알겠다. (제목도 '희망가'와 '큰 소나무'다.) 하지만 정말 정말 미안하게도, 작가를 저격하고 싶은 마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용기 내어 말해야겠다.


그 그림들은 조악하다!

진짜 어글리 하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친정에 갈 때마다 봐야 한다는 게 불편하다!


이런 생각까지 했다. 강남역 역장과 작가가 아는 사이여서 그냥 낙하산으로 꽂았나? 이거 두 개 그리고 얼마를 받았을까? 설마 공모전을 했는데 이 그림이 발탁된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아아~~ 이 공무원들 안목을 어쩌란 말이냐!! 설마... 작가가 기증을 했을까??

이렇게까지 쓰려니 마음이 꽤 불편한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오늘 미루 손을 잡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친정에서 집으로 오는데 다시 이 그림을 보자니 짜증이 밀려왔다. (에스컬레이터로 가는 길에 있어서 안 볼래야 안 볼 수도 없다.) 그림 하나에 이렇게 흔들리다니, 내가 요즘 어지간히도 예민하구나.

그래, 이건 순전히 내가 예민하고 삐딱해서 그런 거야. 다 내 마음이 탁해서 그런 거야. 분명 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매일 지나쳐도 아예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찾아보니 좋은 평을 올린 블로그도 있었다.) 새삼 공공예술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조목조목 왜 불편한지 따질 수도 있겠으나 이 정도로 해야겠다. 자기 전에 잡설을 쓰려니 문득 아까 그 짜증이 생각나서 쓰는 푸념이다. 무지 피곤했거든. 그리고 무지 짜증 났거든. 순전히 개인 의견이다.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길.

그래도 역장님... 왜 그러셨어요... 정에 약해지셨던 거에요? 그래도 붙이시려면 그냥 그림만 붙이시지 작가의 말은 또 왜 붙이셨어요... 볼 때마다 오글거린단 말여요...


흠... 갑자기 누가 내 그림을 욕하진 않을까 겁이 나네. 왜 이렇게 귀가 가렵지?? ㅎㅎㅎㅎㅎ

(아, 오해는 마시라. 난 싸이를 좋아한다.)



2.

아버지의 여든두 번째 생신이었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날 태어나신 아버지. 칠석날이랑 아버지 생신이랑 무슨 관계가 있겠냐만, 그래도 1년에 한 번 만나는 견우와 직녀가 이야기가 1년에 한 번인 아버지 생신에 양념을 더해줘서 좋다.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의 발톱과 손톱을 깎아드렸다. 깎으면서 본 아버지 살은 참 맨들맨들 했다. 생각보다 아버지 손이... 예쁘네. ㅎㅎㅎ 얼마 전엔 처음으로 아버지 신발 끈을 묶어드렸는데, 마흔 중반에 와서야 이런 일들을 처음 하다니, 참... 딸 하나 있는 게... 뭐라 할 말이 없다.

선물 겸 사드린 여름 모자가 제법 잘 어울리셔서 기분이 좋았다. 그 모자를 쓰시고 아버진 노인정 앞에서 손을 흔드셨다. 그래도 용돈을 못 쥐어드린 게 마음에 걸린다. 마작하시면서 친구분께 음료수라도 쏘시면 좋았을 텐데.


오늘은 여기까지.




평소 페이스북에 단상처럼 올리던 글을 마음먹고 일기처럼 페북과 브런치 동시에 올립니다.

글쓰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기에 독자가 그동안의 제 신상 몇 가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이 전개됩니다.

(ex: 다문화 가족이며, 오랫동안 여행을 했으며, 딸아이 미루는 한국 나이로 7살이며,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며, 얼마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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