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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Aug 05. 2019

에필로그 2: 난 불효자가 될 자신이 있는가?

부모님과 남편 사이에서, 나의 가장 큰 딜레마

그 유명했던 허바허바 사장에서 찍은 첫 돌 사진


# 병원에서


병원이다.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일부러라도 휴대폰에 고개를 더 박는다. 그래도 보호자 이름 부르는 걸 놓치면 안 되니까 귀 한쪽은 열어둬야 한다. 엄마는 오늘 대장 용정 제거 시술을 받으신다. 작년에 한 번 받으셨는데 아직 떼어내지 못한 것들이 있어서 다시 받아야 하신다. 간단한 시술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 연세가 75세이시고, 하룻밤 입원을 해야 한다 하니 기분이 마냥 편하진 않다. 경중이 어떻든 병원은 병원이니까.


어젯밤 친정집에 왔다. 어쩌다 저녁때를 놓쳐 밤늦게 야식으로 편의점에서 산 불막창을 먹었는데, 엄마는 옆에서 꼴딱꼴딱 침을 삼키며 야속한 눈으로 날 쳐다보셨다.

- 엄마~ 금식하셔야 하잖아요. 그냥 방에서 티브이 보세요.

- 가시나, 왜 저녁을 안 먹어가지고! 하필 불막창이야? 맛있어 보이는데...

너무 배가 고파 엄마의 핀잔에도 꿋꿋이 밥까지 비벼가며 싹 먹어 치웠다.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나신 엄마는 대장을 비우기 위해 병원에서 준 약을 물에 타서 드셔야 했다. 꽤 많은 양을 시간에 맞춰 드셔야 했는데 자꾸 구역질이 난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셨다. 보는 것만으로도 곤욕이었다.

- 아이고~ 이거 못 할 짓이네... 작년에 할 땐 구역질은 안 났는데, 이번엔 왜 이러지? 몸이 약해졌나?

- 아이고~ 이쁜 울 엄니 우짠댜... 그동안 아부지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한겨!

언제나 그랬듯 엄마와 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엄마랑 나랑은 그런 죽이 잘 맞는다.

 

카밀에게 전화를 걸어 미루를 어린이집에 잘 등원시켰는지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늦잠을 잤다. 일어나기 싫어서 칭얼거리는 미루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기에 대고 굵고 낮은 목소리로 미루야, 일어나! 를 외쳤는데 카밀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툭 끊었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살짝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양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알아서 하겠거니 둬야 했는데, 왜 난 기어코 확인해서 이렇게 일을 버는지. 다행히 제시간에 잘 왔다며 선생님께서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내주셨다.

입원 수속을 한 후 엄마는 바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링거를 맞았다. 그리고 지금, 내시경실이다.

- 보호자는 밖에서 기다리세요.

간호사가 말했다. 이 말이 날 참 무력하게 만든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기다리는 일밖에 없다. 여기에 있는 수많은 보호자도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이들도 나처럼 무력감을 느낄까?


까똑! 후배에게 메시지가 온다.

- 뭐해?

- 병원.

- 왜?

- 오늘 엄마 용종 시술.

- 아... 미루는?

- 애 아빠가.

- 그래도 다행이다. 큰 거 아니고 용종이라서.

- 그러게.

- 점점 이런 일 많아질 텐데...

- 이러려고 한국 돌아왔는데 뭘.

- ㅎㅎㅎ 글치

- 그런데 이제 다시 나간다고 하면... 아고야... 벌써부터 속 시끄럽다.

- ㅜㅜ... 우째...

- 하아... 우리 나이엔 어쩔 수 없나 보다. 하늘이 날 시험에 들게 하시네. 남편이냐, 가족이냐.


외할머니와 손녀


# 우리 엄마


불편한 병원 대기실 의자에서 뒤척이며 이 톡을 보낸 후 난 딱히 할 말이 없다. 후배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평소 친정에 가면 벌어지는 일상이 떠오른다. 난 최소 2주에 한 번은 친정에 가려고 노력한다. 뭐 하나 드리는 것 없는 못난 딸이지만 그래도 ‘가까이 있어 주는 것’ 자체로 좋아하시고 무엇보다 미루를 보고 기뻐하신다.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게 좋다. 망원동에서 친정인 용인까지 대중교통으로 최소 2시간이 걸리고 미루와 함께 가면 2시간 반이다. (중간에 화장실 간다 어쩐다, 광고판 본다 어쩐다...) 그래도 간다.

아파트 문을 여니 전복죽 냄새가 난다. 몸 여기저기 자꾸 탈이 나는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루가 온다고 하면 기필코 전복죽을 만드신다. 두 그릇 뚝딱이야 금방인 걸 아시니까. 논에 물이 들어가는 거랑 아이 입에 밥 들어가는 것처럼 보기 좋은 게 없다고 했던가. 지난 겨울 농수산물 시장에서 세일 때 왕창 사서 쟁여놓고 하나씩 꺼내 먹고 남은 마지막 전복이란다.

- 이제 전복 없다. 다음에 올 땐 네가 사 와!

- 에이, 엄마는… 전복값이 얼만데… 히히히…


평소처럼 청소를 한다.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린다. 아버지 침대 주변으로 쌓인 먼지와 부스러기가 장난이 아니다. 떡 하나를 드셔도 온 방에 ‘나 떡 먹었다!’ 티를 내며 드시는 아버지. 평생 그랬던 분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경상도 말로 ‘마, 쫌!’ 한탄이 절로 나온다. 꼴랑 청소기 하나 돌렸다고 숨이 찬다. 대충 정리하고 바로 소파에 몸을 던져 우리 집에는 없는 티브이 좀 보려고 리모컨을 들고 폼을 잡는다. 그런데 어? 언제 엄마가 부엌에 나오셨는지 밥상에 이런 게 올라온다. 한 끼는 연어 회덮밥, 한 끼는 대왕 족발. 이거 먼지 털고 청소기 돌리고 설거지한 거 치고는 일당이 너무 높지 않은가? 친구 이삿짐 옮기는 거 도와줘도 순대국밥이 다인데, 연어 회덮밥에 대왕 족발이라니!

- 엄마, 이거 엄마한테 남는 장사가 아닌데. 이거 먹으려면 제가 적어도 화장실 대청소는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연어랑 족발은 어디서 났어요?

- 엄마 친구가 선물로 줬어. 니 먹으라고 따로 놔뒀지. 이 가시나야! 나니까 니 챙기지, 네가 친정 엄마 없는 설움을 알아?

생색내시는 엄마의 농담에 맹구 웃음을 짓는다. 해방둥이 노모의 생색과 마흔 중반 딸래미의 맹구 웃음과 거기에 ‘엄마, 왜 웃어?’하고 더해지는 만 6살 손녀의 리틀 맹구 웃음. 3대가 같이 맹구 웃음을 짓는다.

친정에 갈 때마다 난 배 터지게 먹고 온다. 뭐 하나 제대로 한 거 없으면서.



# 무슨 팔자가 이러냐


- 하아... 하늘이 날 시험에 들게 하시네. 남편이냐, 가족이냐.

다시 내가 보낸 이 메시지를 보고 있다. 그리고 카밀을 생각한다. 카밀은 진작부터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한국 살이가 나쁘진 않으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며 잉여가 된 것 같단다.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그는 시들어 갈 거다. 그는 평생 멈추지 않고 헤엄쳐야 하는 상어와도 같으니까. 한 곳에 머물고자 하는 의지는 내가 더 강하지만 솔직히 나도 그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마다 심장이 뛴다. 다시 캐러밴을 타고 길 위에서 미루를 키울 상상을 하면 가슴이 뛴다. 그 안에서 만날 무궁무진한 스토리와 사람들로 채워질 내 창작 주머니를 생각하면 충분히 떠날 이유가 된다. 천상 우리 둘은 노마드 팔자를 타고난 한 쌍의 바퀴벌레 부부인가? 젠장, 무슨 놈의 팔자가 이래?


대기실 전광판을 보니 엄마의 시술이 끝나고 회복 단계인 것 같다. 곧 보호자를 찾는 간호사 목소리가 들리겠지. 요즘 날 괴롭히는 딜레마가 다시 몰려온다. 바로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어떡하나. 아버지 치매 증상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는데, 나 떠난다고 하면 엄마 혼자서 어떻게 아버지를 보시나. 미루 보고 싶어 하실 텐데 어떡하나. 내 동생에게 부담이 배가 될 텐데 미안해서 어떡하나. 부모를 보는 정서가 다른 카밀은 이런 나를 이해 못 하겠지. 부모님과 남편 사이에서 나는 또 모순에 부딪힌다. 어떻게든 악착같이 돈을 많이 벌어 엄마께 몽땅 드리고 떠나면 그나마 마음이 편하려나? 그런데 돈은 어떻게 벌지? 그냥 카밀 혼자 돌아다니라고 하고 나랑 미루는 한국에 있을까? 하지만 그게 미루에게 좋을까? 못되면 아주 못될 것이지 왜 어설프게 못 돼서 이도 저도 아닌 게 되나? 횡설수설 이 말 했다가 저 말 했다가, 결국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 말만 반복하고 있다.

 

아! 다문화 가족의 비극이여!
젠장, 진짜 무슨 팔자가 이런가!


난 선택해야 한다. 남편이냐, 부모님이냐. 내가 만든 가족이냐, 내가 태어난 가족이냐. 이때까지 누가 뭐라 해도 아랑곳없이 내 맘대로 살았지만 이젠 내 맘대로 살기엔 내 안의 목소리가 너무 많다. 내 안의 수많은 내가 내 인생의 기회비용과 감가상각을 따지고 있지만 결국 난 내가 만든 가족을 선택하겠지.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자식이 되겠지. 울고 싶은데 울어봤자 남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자식 키워봤자 남는 거 없는 거랑 똑같은 걸까?

멀리 있는 자식은 하등의 쓸모가 없다고, 아직 난 불효자가 될 자신이 없지만 결국은 불효자가 될 팔자다. 그래서 괴롭다. 잘난 자식이든 못난 자식이든 자식은 부모가 줬던 만큼의 사랑을 되돌려 드리지 못한다. 그게 살짝 위로되지만, 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들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그러는 사이, 대기실의 웅성거림을 뚫고 내 이름이 들린다.

아직 마취에서 깨지 않았을 엄마를 보기 위해 회복실로 들어간다.

곱게 누워 계실, 우리 예쁜 엄마를 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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