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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Jan 12. 2019

에필로그 1: 삶이 지랄 같지 않은가?

이 징글징글한 삶을 왜 사냐고 물을 때

삶이 지랄 같을 때가 있다.



# 정말 지랄 같을 때가 있다. 


아니, 참 많다. 화가 난다. 좀 쉽게 가지, 맨날 왜 이리 지랄 같지? 다른 사람에게도 묻는다. 저기요,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정말 지랄 같지 않나요? 당신 삶도 그래요? 그러면 십중팔구 듣는 답은 이거다. 예, 내 삶도 지랄 같아요. 내 얘기 좀 들어보실래요? 의도치 않았는데, 꼼짝없이 앉아 그 사람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얼래? 진짜 나보다 더 지랄 같네? 사람들은 대게 이렇게 자신의 삶을 위로한다.


자신과 다른 삶은 주로 매체로 접하게 된다. 뉴스, 다큐멘터리, 영화, 소설 등등. 스크린이나 종이라는 필터가 있지만 이를 통해 내 삶을 위로하기도 하고 연대의식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여행에선 이들을 실제로 만나게 된다. 삶의 행동반경이 일정할 경우 만나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만 여행은 그렇지 않다.

사실 여행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부분은 80퍼센트 이상이다. 실제로 만나는 그들은 나와 비슷한 삶을 살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삶을 살기도 한다. 이해가 될 때도,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경외심을 품을 때도 있고 경멸의 눈길을 보낼 때도 있다. 참으로 다양한 삶 앞에서 질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삶이란 무얼까? 당신에게 삶이란? 나에게 삶이란? 긴 여행길에 있다 보면 꼭 한 번쯤은 이렇게 감수성이 폭발하여 어설픈 철학자가 된다.



# 세상은 인간극장


내 친구 N은 히피다.

독일 출신으로 오래 사귄 남자 친구랑 안 좋게 끝났다. 홧김에 그 남자 친구의 밴을 몰고 아프리카 모로코로 갔다. 그리고 I라는 10살 어린 모로코 남자를 만났다. 몇 번 눈빛을 주고받은 게 다였는데 감기로 너무 아팠던 자기를 옆에서 간호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열렸단다. 곧 아기가 생겼다. 독일에서 출산하고 싶었던 N은 부른 배를 잡고 I를 유럽으로 데려 오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했다. (아프리카 출신 남자가 유럽 체류권을 받기란 매우 어렵다.) 어렵사리 결혼증명서를 받고 독일로 와 출산을 했다. 좀 괜찮아지나 싶더니 I는 육아는 나 몰라라 했고 사방팔방 다른 여자들에게 씨를 뿌리고 다녔다. N은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다. 레인보우 개더링에서 프랑스 남자 F를 만났다. 10살이 어렸지만 (또!) 좋은 남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N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 바로 태도를 바꾸고 떠나버렸다. 그래도 아이를 낳았다. 아빠가 다른 두 아이를 데리고 베를린으로 왔다. 정부 보조금으로 간신히 집을 얻었고 자신의 재주인 그림으로 경력을 쌓고자 했지만 두 아이의 육아에 치여 쉽지 않았다. 지금 그녀는 I와 정식으로 이혼한 후 두 남자의 관여 없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난 속상한 마음에 화를 내곤 했다. 특히 F가 10살 어리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냐며 버럭버럭 화를 냈다. 이해가 안 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 삶이 아닌 그녀의 삶이었다.


미국 출신의 내 친구이자 동문인 C는 말 그대로 서바이버다.

숨 쉬기가 어렵고 계속 기침을 하는 폐 질환인 ‘낭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이란 병을 가지고 태어나 오래 살지 못할 거란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실제로 이 병을 앓는 사람 대부분은 20살 전에 죽는다.) 하지만 잘 버텨 오래 살았고, 긴 기다림 끝에 폐 이식 수술을 받고 새사람으로 태어났다. 마라톤을 뛰었고 모터사이클로 전국 일주를 하며 낭성 섬유증 치료제 개발을 위한 모금 운동을 했고 병원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 약혼도 했고 조명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도 다졌다. 그런데 이식 과정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대장암이 생겼다. 그래도 치료를 받으며 잘 견뎌냈다. 암 상태가 호전됐을 때 그는 몇 년 만에 다시 모터사이클 전국 일주를 시도한다. 그리고 SUV와 충돌하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의 몸이 공중에 붕 떴고 사정없이 패대기 쳐졌다. 6주 만에 깨어난 그는 조각조각 부서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긴 싸움을 해야 했고 기적처럼 이겨냈다. 그때 정말 그게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으니, 모두가 그의 귀환에 환호했을 때 암이 재발했다. 그리고 항암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47세 생일을 3주 남긴 채 야속한 운명과의 기나긴 싸움을 끝내고 레테의 강을 건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삶이었다. 죽어서야 편하게 숨을 쉬는 삶이라니. 아니, 왜?! 그렇게 열심히 산 친구가 어디 있다고, 도대체 왜?! C를 생각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심한 욕이 나온다. 이해가 안 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내 삶이 아닌 그의 삶이었다.


단지 시리아 출신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시련을 겪으며 도망 다녀야 했던 N.

불임으로 고생하다 겨우 쌍둥이를 낳았는데 아이 한 명이 장애로 태어나 계속 병원에 가야 하는 S과 L 커플.

미국 출신으로 터키에 정착해 쿠르드족 난민을 위해 밴드를 만들어 모금 연주를 하는 O.

밴을 개조해 여행하며 몇 년째 길 위에서 사는 B와 M 커플 (길 위에서 두 아이를 출산하기도).

디지털 노마드로서 세계를 돌며 TED 강연을 하는 F.

남극에 사랑의 깃발을 꽂겠다는 일념 하에 네덜란드에서 남아공까지 트랙터를 타고 내려가 몇 년의 훈련 끝에 결국 남극에 도착한 M.

축제란 축제는 모두 찾아다니며 디제잉을 하는, 그야말로 순간에 목숨 거는 벨기에 청년 P…

여행하며 만난 수많은 친구들의 수많은 삶.


그야말로 인간극장.


이제 내 주변의 삶도 돌아본다. 제일 가까운 어머니, 아버지, 내 동생, 그리고 내 친구들, 지인들, 이웃들...


화양연화


# 축배를 들자!


그런 날이 있다. 괜히 감상적이 되어 누구든 붙잡고 묻고 싶은 날. 당신은 왜 이 삶을 살며 왜 그렇게 사냐고. 이렇게 지랄 맞은데 살 가치가 있냐고. 아마 그래서 그날 당신도 나에게 그렇게나 많은 질문을 퍼부었을까? 친정 엄마는 혹시라도 당신께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로 생명 연장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만큼 지겹고도 징글징글한 삶.

우리는 모두 똑같이 이 삶을 살아내고 버틴다. 그러기에 서로의 삶을 얘기하고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받아야 한다. 계속 붙잡고 질문을 퍼붓고 싶지만, 그런 허무한 질문을 하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게 낫겠다.


자, 내 삶을 얘기했으니 이제 당신의 삶도 내게 들려주지 않겠는가. 서로 한 번 격하게 포옹하고 같이 우리의 삶을 위해 건배하지 않겠는가.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인생에 축배를 든다.


브라보 아우어 라이프!    


Photo by Yellow D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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