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느낀 잡생각을 씁니다.
<뛰어!>
1.
내게 잡생각이란 맥락 없이 이어지는 뜬금포 같은 것인데, 이는 무릇 생각과 생각 사이의 긴장을 풀어주고 자동차 레이스 같은 내 인생에 고속 방지턱 같은 역할을 한다. 보통 내 잡생각의 핵심은 '맥락이 없고 시시껄렁하다'는 건데, 노곤한 일요일 오후에 늘어난 츄리닝 입고 소파에 누워 생각 없이 돌리는 티브이 컨트롤처럼, 코메디였다가 사극이었다가 다큐였다가 예능이었다가 뉴스였다가를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요즘의 내 잡생각은 '맥락 없음'과 '시시껄렁함'을 잃어버린, 그냥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어떤' 생각이어서 재미가 없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정리가 어렵고, 이는 끄적이는 걸 방해하고, 끄적이질 못하니 괜히 숙제 못 한 초등 1학년생마냥 뭔가 찜찜하고 불안하다. 진정한 잡생각도 인생에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건가?
2.
전엔 덥다고 안 쓰고, 이번엔 생각이 너무 많다고 안 쓰고.
쯧쯧쯧, 핑계 이스 뭔들.
궁극의 합리화 인간, 익스큐즈 최승연 선생.
3.
이럴 땐 아무 생각 없는 numb의 상태에 빠지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러려면 뛰는 게 최고다. 최소한 난 그렇다.
4.
그동안 최소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마포 체육공원을 열 바퀴 돌거나 한강 고수부지 길을 따라 가양대교까지 뛰는 운동을 유지해왔는데, 추석이다 뭐다 해서 일주일 이상 안 뛰었더니 영 몸이 무겁고 찌뿌둥했다. '익스큐즈 최승연 선생'의 이름답게 어젯밤에도 미루 재운다는 핑계를 대며 누워있었는데, 뒤늦게 달리기의 매력에 푹 빠져 달리지 못해 안달인 까서방이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나가기 싫다고 요리조리 빼는 날 억지로 끌고 한강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냥 뛰었다. 그를 따라 망원 유수지 -> 서강대교 -> 여의도 -> 양화대교 -> 합정 -> 망원 유수지에 이르는 긴 코스를 걷고 뛰고를 반복하며 겨우 끝냈더니 발이 얼얼하고 엉덩이가 뻐근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윙윙 소리를 내며 내 온몸을 도는 빨간 피를 느끼는 건 꽤 짜릿했다. 갑자기 활발하게 일어나는 혈액 순환이 당황스러웠는지 내 뇌는 내 몸을 컨트롤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건 자연스레 날 numb의 상태로 인도했다. 아아~ 아무 생각 안 하니까 정말 좋구나!
양화 대교 위에 있는 양화 카페에 들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뛰다가 잠시 앉아 바라보는 한강 야경의 모습은 참 로맨틱할 텐데. 다음엔 조금 일찍 출발해서 닫기 전에 가야지.
5.
그런데... 그동안 그래도 꽤 뛰었는데 왜 내 몸무게는 변함이 없을까?
참 나... 답을 알면서도 이렇게 뻔뻔하게 묻다니.
먹는 게 그대로인데 변할 리가 있겠어?
6.
며칠 전, 친정집에서 망원동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피곤해 죽겠는데 하필 러시 아워였는지라 전철에 자리가 없어 한참을 서서 오는 통에 다리가 너무 아팠다. 대림역을 지날 때쯤, 자리 하나가 났는데 오호통재라, 하필이면 핑크색 임산부석!. 순간 난 전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의 찰나에 한 생각.
- 흐음... 이 정도면 그냥 앉아도 다들 날 임산부라 생각하겠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앉으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내 양심이 날 불렀다.
- 안 창피하냐, 최승연? 이 몸을 보고 경각심이 생겨야지, 어떻게 임산부석에 앉을 수 있겠다며 안심을 하냐?
젠장, 왜 이럴 때 내 양심은 작동하는가. 손잡이를 다시 꽉 잡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보며 중얼거렸다.
- 좀 뛰어야겠네.
7.
싸이 콘서트를 보면 싸이가 지겹도록 소리치는 말이 있다.
바로,
- 뛰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아이, C... 또 뛰라고?? 욕 나올 정도로 뛰고 또 뛰라고 '강요'를 하는데, 이젠 왜 그러는지 알 것 같다.
무아지경에 이르는데 뛰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싸이 그 몸에 참 체력도 대단하지. 그렇게 뛰니까 그 지경이 되는 건가?
중경삼림에서 금성무도 달렸고, 비트에서 정우성도 달렸고, RUN 뮤직 비디오에서 방탄도 달렸다.
자신의 존재마저 망각할 때까지 달리면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것 같다.
예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8.
그래서 결론은,
자! 이 멋진 인생, 우리 미친 듯이 뛰어 보자!
여기서 뛰다와 달리다는 동의어다.
오늘은 여기까지.
비행기 티켓을 '지른'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심장이 정신없이 달리는 거다.
가기 전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정리할 것도 태산인지라 앞으로 이렇게 아무 생각 없는 순간이 간절할 때가 많아질 것 같다. 어젠 마침 크리스의 생일이었어서 뛸 이유가 충분했다.
#달리기
#davidgoggins
#stayhard
#검색해보삼
평소 페이스북에 단상처럼 올리던 글을 마음먹고 일기처럼 페북과 브런치 동시에 올립니다.
글쓰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기에 독자가 그동안의 제 신상 몇 가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이 전개됩니다.
(ex: 다문화 가족이며, 예전엔 대학로에서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고, 오랫동안 여행을 했으며, 딸아이 미루는 한국 나이로 7살이며,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며, 얼마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