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느낀 잡생각을 씁니다.
<미루처럼 단순했으면>
1.
생각이 너무 많을 땐 미루를 본다. 이렇게 세상 모든 걸 단순하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Simplify your life.'
내 모토지만 과연 죽기 전에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변 상황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도 단순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미루가 최근에 한 말들을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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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루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뛰어난 것도 아니다. 상황 설명을 잘한다거나, 자세한 묘사를 한다거나 하는 건 없다. 그냥 자기가 느낀 걸 그 자리에서 필터 없이 바로 얘기할 뿐. 며칠 전 어린이집 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했을 때, 또래 아이들에 비해 좀 어눌하다는 선생님 말씀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선생님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난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한국어, 네덜란드어, 영어, 세 언어를 하는 아이에게 뭘 크게 바라겠는가? 하지만 그 생각은 했다.
- 도대체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말을 잘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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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끔 영어를 한국어로 직역한 듯한 말을 한다. 예를 들어,
- 엄마! 놀란 게 아직 엄마 몸속에 있어?
혹은,
- 짜증이 자꾸 엄마한테 오는 거야? 짜증아~ 엄마한테서 멀어져라~ 저리 가라, 저리 가!
같은.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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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젯밤 미루가 올라탄 킥보드를 밀며 한강 따라 달리는데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았는지,
- 엄마! 그런데 엄마는 왜 나한테 이렇게 착해??
- (달리느라 잘 안 들려서) 뭐???
- 왜 나한테 이렇게 착하게 구냐고오~~!!
-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뛰는 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랑하니까 그렇지, 이누마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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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같이 목욕하며 물놀이 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 미루야, 미루는 아직도 커서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
- 응.
- 진짜?
- 아니... 몰라. 아직 생각 안 해 봤어.
- 그럼 언제 생각할 거야?
- 그것도 몰라.
- 그렇구나... 생각하게 되면 알려줘.
- 응! 그럴게!
아직 안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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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자기 전에 같이 누워 뒹굴뒹굴하다가,
- 미루야! 너무 늦었어~ 빨리 자!
- 응~ 엄마, 나 먼저 꿈나라로 갈게. 안녕~~ 꿈나라에서 봐! (한참 뒤척뒤척하다가) 엄마, 나 꿈나라에 혼자 가기 싫어. 혼자 가기 싫어서 다시 여기 왔어. 나 엄마랑 같이 꿈나라에 갈래. 꿈나라엔 토끼들이 많구, 고양이도 많구, 말괄량이 삐삐도 있어. 빨리 오자(가자), 꿈나라에.
표정과 말하는 투가 너무 귀여워서 그냥 꽈아아아악 안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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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크리스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자,
- 엄마, 또 친구 생각하는 거야? 친구 생각하지 마. 그냥 이렇게 머리를 콩콩콩콩 때리거나, 나 어떻게 노는지 보거나 해.
머리 때리면 아프니까 그냥 미루 노는 걸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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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 BTS 댄스 학원에서 보내 준 동영상을 보여주며) 엄마 춤추는 거 볼래? 그런데 엄마가 자꾸 틀려. 춤이 너무 어려워서 틀리는 거야. 잘 못하지?
- (한참 보더니) 엄마 잘하는데? 나한테는(내가 보기엔) 엄마 잘하는데 왜 못한다고 했어?
- 진짜? 잘해 보여?
- 잘하는 데에에~~??!! 그런데 엄마, 계속 배우면 더 잘하지? (다시 동영상을 보며) 그래서 더 배우면 되는 거야.
내 딸이 잘한다는데, 뭐가 두려울쏘냐! 나 춤 잘 춘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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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혼자서 중얼중얼하다가 갑자기, (다음은 말하는 거 그대로 실시간으로 받아 적음)
- 엄마! 나 커서 어떻게 생길까? 내 모습? '미루가 커서 어떻게 생길까?' 컴퓨터에 그렇게 써 봐. 그러면 그림이 나올 거야. 그러면 우리가 다 알 거야. 음... 머리는 길고, 얼굴은 날씬하고, 그다음엔... 생각해 볼게. 아! 치마는 길고 다리도 엄청 길어. 아냐, 엄청 길진 않아. 아니 아니야, 긴 것 같아. 손은... 반팔을 입고, 손은 그냥 원래대로 똑같아. 손은 커. 당연히 내가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길 것 같아!
나도 네가 어떻게 생길지 많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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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엄마, 내가 여자라서(여자라도) 맛있는 거 안 만들어도 되지? 엄만 여잔데 아빠가 음식 만들잖아.
으하하하하~! 역시 부모는 아이의 거울.
미래의 페미니스트, 최미루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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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세상에나, 이렇게 도치 엄마 행세를 제대로 하다니.
미루 말 정리하다 보니 계속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고, 그러다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다 보니 행복해졌다. 생각도 단순해졌다.
자식 키우는 거 힘들지만, 이럴 때 행복을 느끼는구나.
나중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 같은 헛소리는 하지 말아야지.
평소 페이스북에 단상처럼 올리던 글을 마음먹고 일기처럼 페북과 브런치 동시에 올립니다.
글쓰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기에 독자가 그동안의 제 신상 몇 가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글이 전개됩니다.
(ex: 다문화 가족이며, 예전엔 대학로에서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고, 오랫동안 여행을 했으며, 딸아이 미루는 한국 나이로 7살이며,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며, 얼마 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