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께 쓰는 편지 #2
엄마.
엄만 어쩜 저 같은 얼굴을 낳으셨어요? 제 얼굴… 참 다국적이지 않아요? 엄마 아빠를 절묘하게 닮았으면서도, 제 얼굴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백인’ 얼굴과 ‘흑인’ 얼굴만 빼고 모든 인종을 담고 있어요. 근 13년간 세계를 떠돌며 만난 사람들이 제 출신을 궁금해할 때마다 별의별 국가 이름이 다 나왔어요. 일본과 중국은 애교고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모든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도, 파키스탄, 하다못해 콜롬비아, 페루 같은 남미 국가까지. 어딘지 딱 꼬집을 수 없을 땐 의심 가득한 눈으로 ‘분명 한국인은 아닌데…’ 하는 건 예삿일이었어요. 어찌 된 게 하나같이 한국만 쏙 빼놓던지. 제 얼굴에 한국인의 얼굴은 없는 걸까요? 가무잡잡한 피부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큰 입, 살짝 튀어나온 하관, 지나치진 않지만 보통보단 약간 넓은 미간과 쌍꺼풀 없는 눈, 이런 요소 때문일까요? 자, 이쯤 되면 질문이 나올만하죠. 대체 한국인의 얼굴이란 뭘까요?
한 번은 미루와 함께 지인이 운영하는 합정동의 한 바(bar)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어요. 그때 한 남성 어르신께서 합석하셨는데, 살짝 풀린 눈과 두툼한 검은색 비닐봉지를 검지 손가락에 걸고 비틀대는 모양새가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어요. 어르신은 미루와 저를 번갈아 보더니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제법 정중하게 이렇게 물었어요.
- 저기… 어디서 오신 분인지... (정확한 워딩은 기억 안 나지만 분명히 국적을 묻는 말이었어요)
- 아, 한국입니다.
- 아, 예… 그런데… 한국 이전에는?
- 예?
- 한국 이전에는 어디서...
-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어......
- 고향이 어디세요?
- 서울인데요. (그제야 감을 잡고) 아, 저 토종 한국 사람입니다.
- 아이고, 그러시군요! 한국 분이시군요! 토종 한국 사람! 아이고, 이런… 죄송합니다…
하하하하! 너무 웃기지 않아요? 어르신은 민망했는지 벌떡 일어나 몸을 90도로 숙이며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아~’ 하시더니 골목 안으로 비틀비틀 시나브로 사라졌어요. 앞뒤로 덜렁거리는 검은 봉지에 담긴 건 강아지 사료였어요. 어르신은 분명 제가 귀화한 외국인이라 생각했을 거예요. 한국 총각에게 시집온 동남아시아 여성 중 한 명이라 생각했겠죠. 아이 아빠가 외국인이라고 했을 때 ‘엄마도 한국인 같진 않은데!’란 말을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었는지라 잊을만할 때쯤 벌어지는 이런 에피소드는 엄마와 통닭 한 마리 뜯으며 주고받는 농담거리가 되었어요. 엄만 대체 임신 때 뭘 드신 거예요? 엄마도 아빠도 지극히 평범한 얼굴인데, 왜죠? 분명 엄만 이렇게 답하시겠죠? ‘얼라려, 요년 봐라? 그걸 와 내 탓 하노? 그거야 니 팔자지. 야야, 그게 다 개성 있단 말 아이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단 낫지, 안 그래? 그래도 니 어릴 땐 억수로 귀여웠다!’ 아, 예에~ 예에~ 하모요, 그렇고 말고요… 전 엄마 아빠가 물려주신 이 얼굴이 아주 좋아요.
코로나19 때문에 태국에서 5개월을 갇혀 지낸 후 결국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이 아닌 네덜란드로 가기로 했을 때, 이상하게 비행 날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뛰고 입이 마르고 초조했어요. 기분이 아주 복잡했죠. 비행 당일 아침,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그 순간의 긴장이란… 좁은 좌석이 불편하다며 뒤척이는 카밀과 신난다며 창밖의 구름을 보는 미루를 애써 무시하며 명상을 위해 눈을 감았어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왜 이럴까 의아하더라고요. 그런데 번쩍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아, 내가 아시아를 떠나는 게 싫구나.
그래요. 전 아시아를 떠나기 싫었던 거예요. 왜 싫었을까요? 예전부터 전 서유럽의 이성석 사고가 종종 숨 막혔어요. 칸트니, 순수이성비판이니, 뭐든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인간의 감정 같은 건 이성보다 한 단계 낮은 것으로 보는, 한국인 특유의 ‘정’ 같은 건 비빌 틈이 없는 차갑디차가운 그들의 성향 말이에요. 그걸 다시 겪어야 한다니 확 질리더라고요. 물론 유럽이 워낙 크니까 유럽을 하나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초코파이에 촛불 하나 꽂고 마음을 나누는 아시아인의 ‘정’,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그럴듯하게 꾸민 거고, 솔직히 어딜 가든 현지화가 가능한 제 얼굴이 더는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억울했어요. 태국 가면 태국인이고, 일본 가면 일본인이고, 인도 가면 인도인인, 자유자재로 삼단 변신이 가능한 마술을 더는 부릴 수 없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요. 유럽에선 꼼짝없이 그저 키 작은 동양 여자일 뿐. ‘여자에, 동양인에, 나이도 많아, 네덜란드어도 못 해, 세계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거인국에서 키도 작아, 모든 인구가 자전거를 타는 따릉이 나라에서 자전거도 서툴러, 아! 난 암스테르담 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약자 중의 약자,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 되겠구나. 물에 둥둥 떠 있는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떠돌겠구나. 노바디(nobody), 즉 무명씨가 되고 싶을 때 될 수 있는 자유도 없구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전 바로 조종실로 달려가 ‘나 이 비행기 반댈세! 당장 그 키를 돌려요!!’를 외치고 싶었어요. 전 심호흡을 하고 머리를 휘저었죠.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저 가격 대비 최고의 태국 마사지를 받을 수 없어서, 그게 아쉬워서 그런 거야. 그래, 마사지 때문이야… 고백해요, 엄마. 전 아시아를 떠나기 싫었어요.
물론 기장은 키를 돌리지 않았고, 지금 전 동양인이 드문 네덜란드의 작고 예쁜 도시에서 살고 있어요. 사람들은 저를 쳐다보지만 불편할 정도로 관심을 가지진 않아요. 코로나19 창궐 초기만 해도 동양인을 향한 테러와 차별이 곳곳에서 벌어져서 살짝 겁먹었었는데, 다행히 아직 해코지당한 적은 없어요. 암스테르담 같은 큰 도시라면 달랐을까요? 가끔 ‘내가 왜 아시아를 떠났던가!’ 한탄할 때도 있지만, 후회할 정도까진 아니에요. 그래도 아시아는 여전히 그리워요.
엄마, 전 제 얼굴이 좋아요. 미인형은 아니지만 약자를 대변하고 포용하는 얼굴 같아서 좋아요. 제가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닌 얇은 사 하이얀 고깔 고이 접어 나비는 한국인인 것도 좋아요. 제 얼굴이 ‘갑’인 하얀 얼굴 사람들 사이에서 ‘을’인 사람을 껴안을 수 있다면, 그게 방글라데시인이든 스리랑카인이든 저 멀리 태평양 한가운데의 파푸아 뉴기니인이든 전 기분 좋게 이 얼굴을 들고 다닐 거예요. 무명이고 싶을 때 무명일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죠. 숨겨왔던 관종끼를 드러내며 나 좀 봐라! 시선을 즐겨야겠어요. 엄마 말씀대로, 다 제 팔자죠 뭐.
이곳의 시간은 잘만 가요. 여전히 판데믹으로 불안하지만 별일 없고 지루하고 아무런 동요가 없는, 이게 행복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시간이 가고 있어요. 여전히 전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고 제 얼굴의 마법을 쓸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이곳을 떠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저 이 재주가 아까울 뿐이에요. 언제 써먹을 수 있을까요?
엄마, 아름다운 얼굴을 주셔서 고마워요. 엄마는 마법사셔요.
엄마 딸, 승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