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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Aug 25. 2021

동양인 며느리

엄마께 쓰는 편지 #3

  엄마.

  시어머니께서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말씀드렸죠? 시어머니는 코로나로 인해 사적 모임이 금지되기 전까지 3명의 친구분과 정기적으로 그림 모임을 하셨는데, 계속 못 모이다가 규제가 완화된 틈을 타 오랜만에 시댁에서 모이셨어요. 유난히 쨍한 해가 반가웠는지 시어머니는 거실이 아닌 뒷마당에 그림 그릴 자리를 만드셨어요. 울창한 녹음의 뒷마당은 그리기에 딱이거든요. 아침 일찍부터 다과 준비를 하신 시어머니는 컵과 접시를 들고 부엌과 뒷마당을 분주히 오가셨어요. 그래서 여쭸죠. 도와드릴 일 없냐고. 그러자 시어머니의 표정이 활짝 펴졌어요. 아, 엄마. 무슨 말씀하실지 알아요. ‘그런 건 그냥 알아서 척척 해야지!’라고요. 맞아요, 우리나라라면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여긴 달라요. 시어머니는 당신 손님이니까 제가 나서는 걸 기대하지 않아요. 

  아무튼, 시어머니는 손님의 기호를 확인한 후 커피 3잔과 티 한 잔을 준비해 달라고 하셨어요. 전 부엌에서 3잔의 커피를 내리고 다즐링 티 티포트 하나를 만들어 차판에 담아 갔고, 한참 집중해서 그리시는 분들 옆에 사뿐히 잔을 놓아드렸죠. 그러자 손님 한 분께서 뭐라고 하셨고, 시어머니께서 통역해 주셨어요. 

  - 이렇게 서빙하면 기분이 이상하겠다고 하셨어. 

  으잉? 웬 서빙? 집에 온 손님께 커피 대접해 드리는 게 뭐가 이상하다고?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던 차, ‘아! 이런 일 시켜서 미안하단 뜻이구나. 이렇게 가져와 ‘서빙’까지 하다니, 괜히 웨이트리스 부리는 것 같았나 보구나.’라고 손님 말의 의도가 확 느껴졌어요. 순간 피식 웃음이 났어요. 한국은 며느리가 찻상 내오는 게 당연하잖아요. 시어머니 친구분이 오셨는데 같이 사는 며느리가 ‘감히’ 나 몰라라 가만히 있는다? 에휴, 안 될 일이죠! 욕먹어도 한참 먹을 일이죠. 하지만 말씀드렸죠? 여기선 그런 문화가 아니라는 걸. 전 웃으며 말했어요. 

  - 걱정 마세요. 한국에선 며느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큰일 나는걸요. 

  제 대답에 시어머니와 손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웃음을 터뜨리셨어요. 

  - 문화 차이인가 보네. 알고 보니 지금 당신이 손해 보고 있는 거네요!

  문화 차이가 모든 것의 정답인 듯 웃다가 손님 한 분이 시어머니께 말씀하셨고, 시어머니도 농담으로 받아치셨어요.

  - 그러게요. 승연이 너무 서양화(westernized)된 거였어요.

  그리고 다시 터지는 웃음. 괜히 말했나 싶었지만 딱히 그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어요. 

  - 또 필요한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그럼 이만 한국인 며느리는 물러갑니다앙~ 

  그렇게 전 그 자리를 떠났답니다. 

 

  엄마. 벌써 카밀과 결혼 11년 차예요. 그 11년 동안 시댁을 방문한 횟수는 적었지만 ‘시댁 생활’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전부터 한 번 방문하면 한 달 정도 머물렀고, 또 결정적으로 이번에 근 10개월을 같이 살았으니까요. 시댁 생활 어떠냐고 물어보는 친구가 많아요. 그럴 때 전 시댁이야 다 똑같은 거 아니냐며 대충 얼버무려요. 하지만 다른 건 있어요. 지금까지 시부모님이 제게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점이요. 전 항상 당신 집을 방문한 ‘손님’이었고, 그래서 손님으로 ‘대접’ 받았어요. 한국과는 참 다른 문화예요, 그렇죠?  

결혼 전 처음 시댁을 방문했을 때가 생각나요. 이른바 ‘미래의 며느리’로서 무얼 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했어요. 이른바 ‘시댁’이란 콘셉트는 주말 드라마에서만 봤었기에 편하게 있으라는 말 뒤에 있을 몇 겹의 뉘앙스를 캐치하지 못해서 앉았다 일어났다 엉거주춤을 반복했어요. 그 말이 그 뜻 그대로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이런 제 불편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밀은 그저 시아버지와 대화하느라 바빴고, 전 에라 모르겠다, 상상만 하던 카밀의 본가를 관찰했어요. 개구진 표정의 어린 시절 카밀이 액자 속에서 동생들과 장난을 치고 있었고 수준급의 목공 실력을 자랑하는 시아버지께서 만드신 가구가 여기저기 뽐내고 있었어요. 마침내 저녁상이 올라왔고, 시부모님과 카밀, 그리고 전 맛있게 저녁을 먹었어요. 시아버지가 요리하신 버섯 크림수프는 지금까지도 제가 먹은 크림수프 중 최고예요. 겨자소스의 달짝지근하고 톡 쏘는 맛이 버섯 내음과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더라고요. 

 

  아무리 제게 잘해주신다고 해도 시댁은 아직도 어려워요. 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니 아시아 자체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들이라 대화할 때 종종 방지턱에 걸리는 느낌이에요. 시아버지는 종종 이런 질문을 하세요. 

  - 너희 나라에서도 남자가 요리하니? 너희 나라에서도 남자가 설거지하니? 

  시아버지는 꼭 ‘한국’이 아닌 ‘너희 나라’, 즉 ‘your country’라고 하세요. 솔직히 시아버지의 이런 질문은 비록 순수한 호기심이었을지라도 ‘여기 남자는 다르다’란 약간의 으스댐과 네덜란드인 특유의 자부심이 묻어 있는 질문이에요. 제가 예민한 걸 수도 있지만 그런 질문은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어요. 그때마다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많이 해요.’라고 답했지만 그건 그 순간의 불편함을 벗어나려는 불성실한 답이에요. 시아버지께 가부장 제도를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달마다 있는 제사와 명절 때 해야 하는 노동량에 대해 말해봤자 뭐 하겠어요? ‘일하는 사람, 노는 사람 따로 없고 어지르는 사람, 치우는 사람 따로 없이 남녀 모두 공평하게 집안일을 하는 네덜란드에 시집온 게 얼마나 행운인지 확실히 알아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면... 제 자격지심일까요? 

  어렸을 적 명절이나 제사 때의 풍경을 기억해요. 각자 집에서 만든 음식을 들고 큰댁에 모였었죠. 큰어머니는 밥, 국, 반찬 및 특별식을 만드셨고 작은 큰어머니는 생선을 준비하셨고 막내며느리인 엄마는 손이 가장 많이 가는 전을 만드셨어요. 엄마가 만든 육전이 제일 인기가 많아서 다들 제사 직전 야곰야곰 몰래 주워 먹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를 비롯 사촌 오빠 등 우리 집안의 모든 남자가 제사상 앞에 두세 줄로 정렬해서 제사를 지냈고, 여자는 부엌 뒤편에 모여 당신들의 남편이 지내는 제사를 바라봤었죠. 아주 평범한, 누구나 다 아는 닳고 닳은 제사 풍경이에요. 사실 ‘시댁’이란 마치 기체처럼 물, 수증기, 얼음 등 형태와 성격이 다 달라서 아무리 다른 나라, 다른 문화라고 해도 감히 일반화할 수 없어요. 아시잖아요. 알고 보면 제 시댁도 만만치 않다는걸. 하지만 이 나라에서 ‘며느리’란 단어엔 그 어떤 의무도 담고 있지 않기에 비록 시아버지의 말씀에 벽을 느낀다고 해도 어릴 적 제가 봤던 최씨 집안 여성의 모습에 저를 대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뿐이에요. 제가 그저 ‘운이 좋아서’ 며느리 노릇을 안 해도 된다는 사실이 슬퍼요. 

 

  이만큼 쓰고 보니 궁금해요. 시부모님은 제가 네덜란드 며느리가 아니어서 아쉬울까요? 제가 네덜란드 며느리였다면 시부모님은 절 어떻게 대했을까요? 네덜란드 시댁을 맞이한 제 팔자처럼 ‘서양화’된 동양인 며느리를 맞으신 시부모님 팔자도 보통 팔자는 아니라고 역지사지해 봅니다. 

  그날 오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분과의 시간이 즐거웠는지 시어머니는 까르르 웃음을 멈추질 않았어요. 그리고 해가 주섬주섬 짐을 쌀 무렵엔 그럴듯한 4장의 그림이 완성되었죠. 시어머니의 풍경화는 꽤 추상적이었어요. 아, 물론 다시 도와달라 부르는 일은 없었답니다.

  엄마의 시댁살이가 궁금해요. 경주 최씨 정량공파 38대손의 막내며느리로서 말이에요. 문득 깨달아요. 그동안 엄마께 이런 질문을 안 했다는 걸요. 세상에나, 저 참 무심한 딸이네요. ‘그걸 이제 알았냐?’ 하실 엄마 목소리가 들려요. 갑자기 많이…  죄송해요… 

 

엄마 딸, 승연 드림. 



지난 겨울, 눈 덮인 시댁 마을
평화로운 네덜란드 시골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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