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께 쓰는 편지 #1
엄마.
그날은 2020년 3월 초였어요. 저희 차례가 되어 저와 미루의 한국 여권을 건넸어요. 마스크 때문에 눈만 보이는 검사원의 얼굴이었지만 미간이 올라가는 그의 눈 근육에서 바로 당황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어요.
- Oh… (여권을 물끄러미 보며) Korea…
그는 이걸 어쩌면 좋냐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 Follow me.
따라간 곳엔 두 명의 검사원이 있었어요. 그중 한 명은 저와 미루의 이마에 온도계를 들이댔어요. 그들은 태국 내에서의 일정을 자세히 물었고, 전 질문이 가득한 서류에 하나하나 답을 써야 했어요. 까다로웠지만 그렇다고 무서운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미루는 검사원들에게 장난을 쳤고, 그들은 미루를 친절히 받아줬어요. 전 이 순간이 참 영화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요? 그곳은 말레이시아와 태국 사이의 국경 검문소였어요. 말레이시아의 페낭(Penang)에서 미니 밴을 타고 육로로 국경을 넘어 태국의 헷야이(Hat Yai)로 가던 중이었죠. 그거 아세요? 대한민국 여권의 힘이 얼마나 센 지를요. 여느 때 같으면 이 여권은 그 파워를 자랑하며 별문제 없이 도장을 쾅쾅 받았을 거예요. 하지만 하필이면 때는 2020년 3월!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은 느닷없이 나타난 신천지교의 영향으로 최악이었어요. 그 때문에 네덜란드 여권을 들이민 카밀은 바로 통과했지만 대한민국 여권을 들이민 미루와 저는 바로 제지받았죠. 세계 여권 파워 2위를 자랑하는 자존심이 구겨지는 순간이었어요. 망토 없는 슈퍼맨, 거미줄 없어진 스파이더맨이 된 꼴이었죠. 이런 낭패가!
다행히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 한국을 떠났음을 증명하는 비행기 보딩 패스가 있었어요. 또 여권에도 그동안 받았던 입국 도장이 찍혀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는데, 아뿔싸! 미처 챙기지 못한 게 있었으니, 바로 태국에서 머물 친구 집의 주소였어요. 평소엔 도시 이름만 알려주면 통과하는데, 이번엔 정확한 주소와 연락처까지 원하더라고요. 맞아요, 나중에 추적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주소를 알아야 했을 거예요. 이 당연한 걸 왜 미처 생각 못했는지… 친구는 저희에게 찾아오는 방법은 알려줬지만 정작 주소는 보내주지 않았고, 주소를 요구하는 검사원 앞에서 저흰 친구에게 연락을 하네 마네 생쑈를 했어요. 결국 지도상에 찍힌 친구 집의 위도, 경도와 친구의 SNS 계정을 알려준 후에야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고, 저희를 기다리던 미니 밴 승객의 눈총을 애써 외면하며 밴에 올랐어요. 국경 통과 후 목적지까지 가는 내내 전 주소를 챙기지 않은 제 멍청함에 짜증이 나서 이불 킥 차듯 온몸을 비틀었어요.
엄마, 육로로 국경 통과해 보신 적 있어요? 항상 비행기를 타셨으니 육로로 넘는 국경이 어떨지 상상이 안 될 거예요. 육로의 국경은 공항의 그것과는 느낌이 참 달라요. 물론 EU 통합으로 따로 검사가 필요 없는 유럽은 다르지만요. 이번처럼 말레이시아에서 태국으로 넘어가는 국경을 예로 들자면, 우선 말레이시아 국경 검문소에서 내려 출국 심사를 받아요. 통과하면 다시 차에 올라타 태국 검문소로 가요. 거기서 입국 심사를 받고 다시 차에 올라타 갈 길을 가죠. 짐을 다 내려야 하는 곳도 있고 부패가 심한 나라는 검사원들이 어이없는 꼬투리를 잡고 뇌물을 요구하기도 해요. 아프리카의 짐바브웨에서 보츠와나로 넘어갈 때 기사님이 뇌물 요구쯤이야 일상인 듯 넉살 좋게 해결했던 기억이 나네요. 무역을 위해 대륙을 가르는 화물차는 길게 늘어서서 따로 검사를 받아요. 참 이상해요. 남북을 가르는 판문점도 아닌데, 세상 모든 국경 검문소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아요.
전 항상 이 검문소에서 저 검문소까지의 공간, 즉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그 몇백 미터의 공간이 궁금했어요. 그 공간을 부르는 정식 명칭이 있는지, 어느 나라에 속하는지, 만약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예를 들어 차 사고가 난다거나 누가 아프거나 아이라도 태어나면 그 해결은 어느 나라에서 하는지 등등요. 사무실 대용으로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만 덜렁 몇 개 있는 게 다인 그 공간은 제 눈엔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황량한 공간으로 보였어요. 알고 보면 나라와 나라 사이는 이렇게 황량한가 봐요.
신기해요. 점 하나만 찍으면 '님'에서 '남'이 되는 것처럼, 선 하나만 넘으면 '여기'에서 '저기'가 돼요. 그리고 그 선이 만드는 간격은 너무나 커요. 문을 열고 손을 뻗자 다른 세상으로 휙 빨려 가는 공상 과학 영화처럼 선 너머로 발 하나 디뎠을 뿐인데 그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선 이전의 것과 달라도 너무나 달라서 놀라요. 언어는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의 얼굴도 다르고 옷차림도, 건물도, 간판에 쓰인 글씨도, 거리에서 벌어지는 풍경도, 공기도, 냄새도, 음식도, 물맛도, 하다못해 자동차 핸들의 위치까지 달라요. 하나에서 열까지 다, 완전, 몽땅, 절대적으로 다.른.곳.인 거예요. 솔직히 공항은 그 특유의 ‘국제적’인 느낌 때문에 이런 섬세한 다름을 느끼기엔 한계가 있잖아요. 한번은 중국에서 라오스로 걸어서 넘어간 적이 있는데,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달라지는 공기의 냄새에 깜짝 놀랐었어요. 라오스의 공기는 뭐랄까… 중국보다 더 찐득찐득한 느낌이랄까요? 나무 냄새도 더 많이 났고, 하여간 달랐어요. 그때 새삼 느꼈던 국경의 힘. 그 힘을 실감하며 질문이 밀려왔어요. 중국과 라오스에 걸친 이 광활한 밀림을 어떻게 선 하나로 자를 수 있을까? 누가, 어떻게, 어떤 합의에 따라 잘랐고, 과연 그 선은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공기의 냄새를 맡고자 강아지처럼 킁킁대는 제 모습이 아마 중국 공안 경찰들의 눈엔 ‘저 여자 미쳤나?’ 의심스러웠을 거예요.
세계 지도에 얇은 선으로 그려진 국경은 저와 타인을 가르는 모든 걸 생각하게 해요. 어렸을 때 제 또래 모두는 교실 책상 가운데에 선을 긋고 짝꿍에게 여기 넘어오면 너 죽는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자랐어요. 운동장의 모든 땅따먹기는 선을 그으면서 시작했고요.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은 선 넘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했고, 민속촌의 줄타기 꾼은 오늘도 아슬아슬 몸의 밸런스를 맞추며 선을 걸어요. 저와 타인을 가르는 그 모든 것, 그게 성별이든 국적이든 인종이든 나이든, 언어, 지역, 성적 취향, 학벌, 계급, 통장 잔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 무엇이든 간에, 그 선 사이로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는 상황에 심심한 입맛만 다시게 되네요.
어쨌거나, 저희는 무사히 국경을 넘었고 보란 듯이 모든 게 달라졌어요. 국경은 아무리 넘어도 익숙해지지 않고 그저 신기하기만 해요. 그 얇은 선 하나 넘기가 그렇게 어려울 줄이야... 그런데 저희가 친구 집에 도착한 지 이틀 후, 태국 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취소한다고 발표했어요. 즉 비자가 있어야만 입국이 가능하게 된 거예요. 며칠만 늦었어도 꼼짝없이 국경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을 거예요. 점점 제 운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세상사가 슬프네요.
이렇게 쓰고 보니 위험하게 다닌다고 걱정하실 것 같아요. 객기 어린 20대도 아니고, 미루도 있으니 조심조심하며 잘 다닐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항상 엄마 건강, 건강, 건강! 영양제 하나 주문해 드릴게요.
엄마 딸, 승연 드림.
photo by Yellow Duck
@Melaka, Malay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