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llow Duck Oct 13. 2022

나의 살던 고향은

'이방인' 시리즈 - 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해외에서 살며 외롭거나 힘들 때,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꽤 많은 위로와 웃음을 얻는다. 어쩜 그리 재미있는 게 많은지, 예능국 PD들은 다 천재인가 싶다.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따라가기 버거울 때도 있지만 굳이 머리를 쓰지 않아도 다 이해되는 우리 말의 편안함과 레퍼런스를 안다는 안도감만으로도 고단한 타지 생활의 헛헛함이 채워진다. 뭘 봐야 할지 모를 수많은 예능의 바다에서 내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데, '대화의 희열'이란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였다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들이 나와 그들의 인생을 말하는 평범한 포맷의 토크쇼였지만 호들갑을 떨지 않는 적당한 톤이 좋았다시즌 3에 걸쳐 총 39회가 전파를 탔는데 그 중 유독 시즌 1 '송해편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이 에피소드는 황해도가 고향인 (송해 의 고향 바라기가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1927년생으로 이미 90세를 훌쩍 넘어선 는 여전히 기 전에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서 '전구우욱노래자랑!'을 외치는 을 가지고 계셨이런저런 거짓말 같은 사연으로 고향을 떠난 후또 이런저런 거짓말 같은 사연으로 공연계에 발을 담그기까지포레스트 검프처럼 역사의 소용돌이를 관통하는 사연들 하나하나가 하도 극적이고 구슬퍼서 그의 인생사 자체가 하나의 대하소설 같았다특히 그가 아직도 고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는데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는 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 같은 당연한 본능 아니냐고 하겠지만내게는 딱히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같은 고향에 대한 정서가 다는 걸 송해 옹을 보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향고향이라… 난 서울 강서구 방화동에서 태어났지만 마포구 합정동과 서교동에서 자랐다어릴 적 가장 오래 산 동네가 서교동이니 굳이 따진다면 서교동이 고향이라 할 수 있겠지만그렇다고 송해 옹처럼 꿈에 나올 만큼 그곳이 그립진 않다 이러니다오랫동안 정착할 곳을 아 떠돌면서 그 구보다 장소리에 대한 갈망이  그런 내가 정작 고향에 대한 정서는 없다니물론 어릴  뛰놀던 인리 전소  지 수거장의 아련한 추억은 있지만 과연 그게 내게 어떤 절실함을  수 있을까예전 자주 갔던 빵집이나 떡볶이집이 없어진 걸 안타까워하는 건 내 기억 속의 예쁜 그 모습이 그대로 있으면 하는 작은 이기심일 뿐그 빵집과 떡볶이집이 애달플 수는 없다

 

  보면서 계속 궁금했다저렇게 고향이 그립나? 70이 지난 지금아 있는  하나도 없고 기억마저 흐릿할 텐데무슨 미련이 남아서이제  '재령'이란 지리적 공간이 아쉬운 건 아닐 떠날 때 마지막이 될 줄 모르고 손을 흔들던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과 어린 시절의 희미한 조각들을 금이라도 찾고 싶으신 거겠지물론 결정적인 이유는 어머니겠지. ‘두고 온 어머니란 말만으로도 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니까히 상해 마침내 재령을 방문한 그가 옛날엔 여기가 다 밭이었어요어머니께서 이 밭을 매셨지.’ 하며 무려 근 한 세기 전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모습을핸드 헬드 카메라가 소회에 젖은 그의 쭈그러진 뒷모습을 거칠게 따라가는 장면을

  결국 이 모든 서사가 가능한 건 지금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갈 수 있으면 이런 서사 자체가 없다갈 수 없을 때 수 없을 때만지지 할 때가지지 못할 때결핍은 모든 걸 피 끓는 서사로 만든다분단전쟁정치적 상황 등 결핍을 유발하는 요소에 코로나19가 더해졌다세상의 모든 건 컴퓨터 화면 속에 있고갈 수 없고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이 결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언제든 편하게 갈 수 있던 한국도 이젠 그렇지 않기에 더 절실해지고해외에 사는 난 영원히 바람이 안 빠지는 풍선이 되어 둥둥 떠다닌다.

 

  내가 송해 옹의 스토리에 몰입하고 공감하는 이유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해외에 살고 있어서인지 잘 모르겠다송해 옹이 과거의 장소를 갈망한다면 나는 미래의 장소를 갈망한다는즉 장소에 대한 갈망에서 그 이유를 희끄무레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그래도 그 갈망의 강도가 같을 순 없다나의 갈망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그의 것은 아니니까나는 미래를 보고 그는 과거를 보니까머리로는 이해지만 그 느낌이 어떨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그의 절절함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준다그리고 그동안 내가 이런 절절한 서사의 을 그저 '신파'라는 이름으로 하하진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퀴퀴한 냄새가 날 정도로 지독히 인간적인누구나 내재한 구질구질하고도 뻔한 신파는 과소평가 되었다.

 

  한국이 그립지만 사무치진 않는다그리운 것도 있고 그립지 않은 것도 있다가끔 고향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미루는 서 어디를 고향이라 여길까한국에서 태어났고, 5살부터 7살까지 한국에서 만 3년을 살았지만 과연 그 시간은 고향의 정서를 만들 만큼 긴 시간이었을까어디든 엄마와 아빠가 있는 곳이면 미루에겐 고향일까궁금하다요즘처럼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글로벌 시대에 과연 고향의 정서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지그리고 이를 읊는 건 구닥다리 꼰대의 모습일지무릇 고향이 인간에게 무시 못 할 원적 정서를 형성한다는 그 고정관념은 얼마나 갈지판데믹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고향 회귀의 붐을 일으킬지그렇다면 미루는 뿌리 없는 아이가 아이고그만하자머리 터진다예능 하나에 너무 멀리 갔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인가를 묻는 '대화의 희열송해편을 추천한다지통 하나 에 둬야 할 거다더불어 한국 예능나아가 드라마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의 발달에 감사한다이거 없이 어찌 해외에서 살까그리고 다시 한번 고 송해 옹의 명복을 빈다영면하소서




이전 10화 부모의 자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