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께 쓰는 편지 #4
엄마.
오늘은 좀 속상한 내용이에요. 이미 오래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요. 사건의 발단은 미루의 귀여운 흥얼거림이었어요.
- 행키 팽키 샹하이~ 행키 팽키 샹하이~ 행키 팽키 행키 팽키~ 행키 팽키 샹하이~
어느 날 미루는 생일 축하 노래 리듬에 맞춰 나직이 이렇게 노래를 불렀어요. 미루의 별사탕 같은 목소리 때문에 노래는 그 뜻을 드러내지 않을 뻔했지만 쫑긋 선 제 귀는 가만 넘어가지 않았어요. 아니, 생일 축하 노래에 샹하이라니요? 행키 팽키는 또 뭐고요? 전 미루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고 그렇게 전 사람들이 말하기 꺼리는, 혹은 그들에겐 너무 당연해서 그게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네덜란드 문화의 한 단면을 알게 됐어요. 하지만 알지 못했다면 후에 제가 이룬 작은 성취의 발판도 없었기에, 제 무지를 막아줬던 그 순간을 이제는 다행이라 말할 수 있어요.
- 옛날엔 눈을 이렇게 하면서 불렀대. 그런데 선생님이 이젠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제 질문에 미루는 검지 손가락으로 두 눈 끝을 찢으며 말했어요. 이른바 ‘칭키 아이(Chinky Eyes)라 불리는,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비하할 때 흔히 하는 행동이었죠. 제 뇌에는 지지직 에러를 일으켰고, 당최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전 카밀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카밀은 제 눈을 피했어요. 알고 보니 ‘행키 팽키 샹하이(Hanky Panky Shanghai)’는 옛날부터 네덜란드에서 부르던 생일 축하 노래인데 특히 동양계 아이에게 불렀다고 했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 미루야, 혹시 그 노래 네 생일에도 불렀어?
- 응! 그런데 다른 아이들 생일에도 불렀어.
- 그래? 선생님이 눈 찢으면 안 되는데 노래 부르는 건 괜찮아?
- 응!
- 너 행키 팽키가 무슨 뜻인지는 아니?
- 아니.
- 그 노래 부를 때 네 기분은 어땠어?
- 음… 잘 모르겠어.
- 미루야. 넌 이 노래를 부르면 안 돼.
- 왜?
- 아주 인종차별적인 노래거든. ‘행키 팽키’란 말도 아이에겐 안 맞고(성행위, 혹은 성적으로 문란하단 뜻이에요) 눈 찢는 것도 동양인을 비하하는 나쁜 행동이야. 넌 네덜란드인인 동시에 한국인이니까 더 부르면 안 돼. 눈 찢는 건 안 된다면서 노래는 괜찮다고? 앞뒤가 안 맞잖아!
갑자기 흥분하는 제 모습이 어색했는지 미루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카밀은 제 눈치만 봤어요.
엄마,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어요. 엄마 친구분 중에도 제가 네덜란드에서 산다고 하면 우와, 좋은 곳에서 사네! 하실 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유럽의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유럽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은 상당 부분 무지에서 비롯되요. 어쩔 땐 몰라도 너무 몰라서 마치 제가 부조리 코미디의 캐릭터가 된 것처럼 헛웃음이 나와요. 코로나 이후로는 더 심해졌죠. 하지만 이런 일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다니, 순간 어깨가 추욱 쳐지는 걸 느꼈어요.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무력감이 밀려왔고 하나하나 조곤조곤 가르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짜증 났어요. 언어의 한계 때문에 학교에 관한 일은 주로 카밀이 처리했는데 이 경우는 제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잔다르크가 되어 주먹을 불끈 쥐고 진격을 외쳐야겠더라고요.
노래에 대해서 검색했지만 정보는 많지 않았어요. 90년대부터 네덜란드에서 부르기 시작했다는데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부르지 않아요) 어떻게, 왜, 이 노래가 불리게 됐는지 정확한 유례가 없었어요. 그저 거기에 있었고 ‘문화’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문제의식 없이 불렸어요. 아예 이 노래가 중국의 생일 축하 노래라고 알거나, 악의가 없으니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하는 네덜란드인이 많다는 게 놀라웠어요.
전 담임 선생님께 영어로 메일을 썼어요. 노래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아무리 악의 없는 네덜란드의 문화라 해도 이건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요. 특히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 혐오 범죄와 차별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교육계야말로 이 문제를 자각하고 시대의 변화에 맞게 반응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앞으로 학교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말아 줄 것과 더불어 이 이슈에 대해 아이들이 토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고 건의했어요. 솔직히 학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어요. ‘다 같이 즐기자는 건데 왜 죽자고 달려드냐’ 혹은 ‘혐오 의도가 없는데 왜 그리 까칠하냐’라는 태도를 보이면 어쩌나, 또 네덜란드인이 은연중 보이는 콧대를 마주하면 어쩌나, 걱정되더라고요. 메일을 보낸 후 며칠이 지났지만 답장이 없었어요. 두 번째 메일을 보내야 하나 생각하던 차, 미루가 학교에서 오더니 소리쳤어요.
- 엄마! 이제 학교에서 그 노래 안 불러!
- 뭐?
- 선생님이 이제 행키 팽키 안 부를 거라고 아이들 다 불러놓고 말씀하셨어!
미루를 픽업한 카밀의 말에 의하면 담임 선생님이 먼저 카밀에게 대화를 청했고 ‘메일 잘 받았다. 건의사항을 수용하여 앞으로 학교 내에서 그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 또 눈 찢는 행동도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학생들을 모아 놓고 발표했다. 이의 제기를 해줘서 고맙다. 미루 엄마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란 말을 전했대요. 바로 조처 한 학교에 안도했지만 그래도 뭔가 찝찝했어요.
- 그래서 내 메일엔 답장 안 보낸대? 그냥 그렇게 당신에게 말하고 끝인가?
- 모르겠는데. 그래도 학교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다행이잖아.
학교 입장에선 카밀에게 얘기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겠지만 제 입장에선 제대로 된 답장이 아쉬웠어요. 순간 답장을 요구할까 하다가 우선은 미루와 상황을 즐기고 싶어서 그 생각은 접어두고 미루를 힘껏 안아줬어요. 지금 저희가 사는 소도시로 이사 오기 몇 달 전의 일이었으니 그 학교에서 조용히 마무리하고 지금의 학교로 전학오면 될 일이었어요. 하지만 아예 그 노래의 존재에 대해 몰랐다면 모를까 한 번 안 이상 어떻게 그걸 그냥 넘길 수 있겠어요? 미루가 학교를 떠난 후 또 다른 동양인 아이가 들어올지 누가 아냐고요. 생일 축하랍시고 자신을 향해 모든 아이들이 눈을 찢으며 그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상만 해도 싫어요. 아이에겐 충분히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일인데, 제가 이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기뻐요.
학교로부터 답을 들은 지 이틀 후, 전 네덜란드 체류증을 받았어요. 이제 법적으로 걸림돌 없이 이 나라에서 최소 5년을 지낼 수 있어요. 그런데 엄마, 솔직히 저 두려워요. 앞으로 또 어떤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될까요? 미리 겁낼 것도 없지만 두려운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전 앞으로도 제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를 낼 거라는 거예요. 이젠 알아요. 작은 변화가 만들어 낸 성취감이 쌓였을 때 큰 변화도 만들 수 있다는 걸요. 여전히 두렵지만 제가 이 나라에서 만들 수 있는 변화를 상상해요. 그 시작이 미루의 학교에서 벌어졌다는 게 씁쓸하네요.
마음을 단단히 잡아요. 어차피 미루는 한국에서도 여기서도 이방인이에요. 어떤 형태로든 차별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부모로서 제가 할 일은 올바른 가이드를 하는 거예요. 읽으면서 속상하셨죠? 그래도 알고 계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약속할게요, 엄마. 미루를 중심이 잘 잡힌 아이로 키우겠다고요.
엄마 딸, 승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