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시리즈 - 덴 보스 이야기.
2022년 8월. 난 네덜란드 남쪽 브라반트 지역의 덴 보스란 소도시에서 살고 있다. 정식 이름은 스펠링도 희한한 스-헤르토헨보스('s-Hertogenbosch)인데 줄여서 덴 보스(Den Bosch)라 부른다. ‘공작(Duke)의 숲’이란 뜻으로, 편하게 ‘숲’이라 부른다. 주제를 ‘나의 도시’로 잡은 후 그 첫 글로 어떤 도시를 쓸까 생각하니 아무래도 현재 사는 도시를 쓰는 게 시의적절하지 싶은데, 안타깝게도 아는 게 별로 없다. 여기서 산지 근 1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코로나의 여파도 있고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하다 보니 생활이 지극히 소소해서 그럴 거다. 그나마 ‘작고 예쁜 도시’란 첫인상이 바뀌지 않고 유지되고 있어서 감사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괜히 죄책감이 드는군. 얘야, 일부러 널 안 본 게 아니야.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아무리 그래도 미술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도시가 15세기 르네상스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의 고향이라는 사실은 안다. 기괴한 그림을 그린 걸로 유명하고 미술사상 가장 신비로운 인물로 꼽히는 화가다. 그가 살던 집도 있고 아트 센터도 있다. 평화롭고 예쁘고, 동시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도시에서 당최 뭘 보고 그런 그로테스크한 상상을 한 건지, 그의 그림은 지옥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먹고 토하고 배설하는 사람들, 당최 이게 뭔지 가늠이 안 되는 괴상한 생명체 및 식물,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예로엔 반 아켄(Jeroen van Aken)이란 본명으로 화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를 신비롭다고 부르는 이유는 일기나 편지, 혹은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남기지 않아서 전반적인 생애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덴 보스 시와 수도원 장부에 언급된 기록을 바탕으로 추측만 할 뿐이고, 작품의 진위도 알아내기 어려워서 현재 겨우 25여 점만이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 평생 덴 보스를 떠나지 않은 걸로 유명한데, 자, 여기서 나처럼 여행자 피가 부글부글 끓는 사람은 제동을 걸지 않을 수 없다. 한 번도 안 떠났다고? 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죽은 거야? 그게 가능해? 15세기에는 다 그랬나? 하기야 성까지 도시 이름으로 바꿨으니 이 도시가 어지간히 좋았나 보지? 혹시 ‘히키코모리’였나? (히키코모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 이 수많은 상징과 묘사는 그 억눌림의 표출인가? 요즘 같으면 분명 심리 상담 받으라고 했을 이 자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
내 정신세계는 처음부터 그의 그림을 좋아했다. 그의 지옥은 강하게 날 유혹했는데, 기상천외한 상상력에 매료되어서인 것 같다. 그런 그의 고향에서 사는 지금, 천하의 게으름뱅이인 난 아트 센터에 가지 않았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지만 그의 광팬인 내 친구가 이 사실을 알면 질겁할 거다. 세상에,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거길 아직 안 갔다고? 제정신이니? 그가 태어난 도시에 사는 네가 부러워 질투에 치를 떠는 내 앞에서 그게 할 소리냐? 네가 뭘 누리며 사는지 모르고 배때기가 불렀구나. 반성해, 이 재수 없는 놈아!
그리하여 며칠 전, 이 글의 마무리를 위해, 또 이 글을 읽을 친구에게 면 좀 세우기 위해 작정하고 아트 센터로 향했다. 흐린 날씨로 악명 높은 네덜란드가 미쳤는지 창포물에 머리 감는 아낙네처럼 운하를 따라 늘어선 버드나무 사이로 보이는 청명한 하늘과 햇살을 즐기며 걷자니 이게 웬 호강이냐 싶어 웃음이 났다. 도서관을 끼고 왼쪽으로 꺾어 도시의 자랑거리 덴 보스 대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자 오른쪽으로 아트 센터가 보였다. 정말로 걸어서 20분이 걸렸다. 또 웃음이 났다. 그래, 친구 말마따나 배때기가 불렀지. 질책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손으로 휘저으며 10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아트 센터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트 센터는 기존의 세인트 제임스 교회를 덴 보스 시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공간이 내뿜는 종교적 아우라와 그의 그림이 찰떡궁합이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캐릭터를 형상화한 여러 개의 조형물이 천정으로부터 길게 매달려 있는데, 신기하게 그 기이한 형태가 교회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역시 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가 아닌 종교화다.
자, 이제 그의 대표작인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을 영접하자. 3개의 패널이 가로 389센티미터, 세로 220센티미터의 크기로 교회 한가운데에 떡 버티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디테일을 살펴보자. 머리가 3개 달린 도롱뇽이 호수에서 기어 나온다. 새의 머리를 가진 사람이 푸른색 제복을 입고 높은 황금색 의자에 앉아 있는데, 그는 사람을 먹고 있다. 사람의 머리 쪽은 이미 부리 속으로 깊게 들어가 있고 남은 몸의 항문에서 검은 새들이 날아오른다. 알몸의 젊은 남녀가 뒤섞여 육체적 쾌락을 즐기는가 하면, 커다란 귀에서 칼이 튀어나오고 밑에 사람들이 베어져 있다. 내용은 이런데 색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지옥이라니! 크고 작은 디테일을 눈으로 따라가자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쯤 되면 진정 이 양반의 뇌를 열고 들여다보고 싶다. 참나, 이 양반, 도대체 500년 전에 뭘 한 거지? 어떻게 이런 상상이 가능하지? 물론 학자들은 당시의 정세와 유행을 들이밀며 분석하겠지만, 지극히 범상한 난 혀만 내두르며 인간의 기본적인 상상력에 질문할 뿐이다. ‘어떻게? How?’를 연발하며.
기록을 남기지 않은 남자,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은 남자, 성을 도시 이름으로 바꾼 남자, 고향의 분위기와 정반대의 끔찍한 지옥을 상상한 남자, 그래서 ‘악마의 화가’로 불린 남자, 당시 유행에서 한참을 앞서간 남자, 그럼에도 골수팬을 가졌던 남자, 그리고 이 남자를 보듬은 도시 덴 보스. 자연스레 나 자신과 비교한다. 하루가 멀다고 SNS에 기록을 남기는 관종 여자, 머물지 않고 계속 떠났던 여자, 결혼했어도 남편 성으로 바꾸지 않은 여자, 지옥을 상상하긴 싫지만 지옥 그림은 좋아하는 여자, ‘옐로우덕’이라고 불러 달라 자처하는 여자, 꼰대 기질을 보이며 ‘라떼’를 시연할 위험이 있는 여자, 글 쓴답시고 폼 재지만 골수팬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여자, 그리고 돌고 돌아 어쩌다 사는 나를 보듬은 도시 덴 보스. 500년 전의 그와 500년 후의 내가 나란히 서 있는데,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세상과 얄팍하기 그지없는 내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회의 첨탑으로 올라가 덴 보스 시내를 내려다본다. 시야를 5도 정도만 올려도 시내를 이루는 범위는 끝난다. 그리고 넓게 이어지는 녹색. 산이 없는 네덜란드인지라 수평선은 깔끔한 일자다. 나를 둘러싼 공간의 실체를 확인하는 경험은 지금의 내 일상을 각인하게 한다. 작긴 작구나. 현타가 온다. 어쩌다 난 여기서 살고 있을까. 여기서 지금 뭐 하는 걸까.
두 시간 정도를 보내고 아트 센터를 나온다. 출출해서 무얼 먹을까 생각하며 거리를 걷는다. 오래된 도시답게 다닥다닥 붙은 옛 건축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예쁘다. 그의 그림을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대조인데, 이때 난 생각한다. 도시가 한 사람의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도시 중심의 광장으로 간다. 광장의 코너에는 보스가 살았던 집이 있고, 그 앞에 그의 동상이 있다. 동상 꼭대기에 갈매기가 앉아 있다. 사람들이 던지는 빵조각을 노리는 것 같다. 갈매기 부리가 무서워서 빵을 던지지 않는다. 동상 아래 돌계단에 앉아 광장을 바라본다. 파란색의 하늘과 하얀색의 구름이 명확한 대조를 이루며 광장 건물을 멋들어지게 받치고 있다. 그 앞으로 자전거를 탄 소년이 지나간다. 예쁘고 평화롭지만 별일 없고 무료하다. 그는 매일 창문 너머로 이 광장을 보았을 거다. 그리고 이 ‘예쁘고 평화롭지만 별일 없고 무료한’ 풍경을 보며 지옥을 그렸다. 난 여기서 무얼 볼까. 이 도시에서 정착할 것 같지는 않지만 설사 내가 여기서 뼈를 묻을지언정 보스처럼 지옥을 상상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난 어디서든 행복한 상상을 할 자신이 있으니까. 내 사전에 지옥은 없으니까. 보스는 분명 다른 도시에 살았어도 지옥을 그렸을 거다. 나 역시 다른 도시에 살아도 행복한 상상을 할 거다. 지금의 덴 보스는 내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보스의 집을 보고 싶지만 배가 고프다. 금강산도 식후경, 밥 먼저 먹자. 스시가 땡긴다.
흥미로운 반전 하나를 알려주겠다. 보스 아트 센터에 있는 그림들은 모두 복제품이다. 화가 자신은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건만 그의 자식 같은 진품들은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오스트리아 등지에 흩어져 있다. 왠지 아트 센터가 멀리 유학 보낸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 같다. 한국에 계신 엄마가 생각난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결코 엄마의 취향이 아니다. 그렇다면 친구밖에 없다. 다녀왔다고 생색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