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시리즈 - 리스본 이야기
‘리스본’이란 이름을 처음 본 건 어렸을 때 했던 보드게임 ‘부루마블’에서였다. 마드리드와 하와이 사이에 있었고 통행세가 26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밑에 ‘포르투갈의 수도’라고 쓰여 있었지만 사실 포르투갈이란 나라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수도 이름이 뭐가 중요하랴. 이른바 부동산 투기인 이 보드게임에서 그저 각 도시에 빌딩 짓느라 바빴고, 내 땅에 친구들이 걸리면 가짜 돈을 걷으며 헤벌쭉 입이 벌어졌다. 건물주가 누리는 돈의 맛은 결코 어린 나이라고 해서 모르는 게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이 게임에서 그렇게 도시마다 건물을 지었음에도 사람들은 각 도시의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 그나마 뉴욕이나 파리처럼 모두가 선망하는 도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에펠탑으로 대표되었지만 리스본처럼 이른바 ‘유럽 변두리 도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나 역시 이 도시에서 살지 않았다면 푸른색 아줄레주(azulejo) 타일이 빛나는 리스본 건물의 아름다움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리스본은 변두리 도시가 아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영화도 유명하고 몇 년 전 버스킹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의 배경으로도 나와서 이젠 ‘거기가 어디야?’가 아닌 ‘아, 거기!’라 할 만큼 친숙해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리스본’이란 이름에 이런 모습을 떠올린다. 자갈로 덮인 좁은 언덕길에 트램이 달리고 빛바랜 건물 사이로 비둘기가 푸드덕 날아다니는, 딱 봐도 ‘낭만적이야!’ 탄성을 지르며 자신을 그 속에 대입하게 만드는 풍경. 그리고 당신은 얘기가 여기까지 왔으니 분명 내가 그 풍경 속에서 예쁘다 혀를 내두르며 찬양하느라 바빴던 경험을 쓰리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다. 내 취향은 참으로 고약해서 샛길로 가는 걸 선호하니, 지금 쓰고자 하는 건 정반대의 이야기다.
‘광택을 낸 돌멩이 (al zulaycha)’란 뜻의 아랍어에서 유래한 아줄레주 타일은 주석 유약으로 그린 도자기 타일로 교회, 학교, 궁전, 기차역 및 일반 건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건축 스타일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 기하학적 모양부터 종교화까지 골든 타임의 햇빛을 받아 저마다 번쩍이며 그 모습을 뽐내는 아줄레주 타일의 물결 속에서 혼자 독야청청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있는 검은 ‘흉물’이 있다. 리스본 북쪽 깜뽈리드(Campolide) 지역에 있는 아모레이라스(Amoreiras) 쇼핑몰은 리스본 출신 건축가 토마스 타베이라(Tomas Taveira)에 의해 설계되어 1985년 처음 문을 열었다. 200개가 넘는 상점과 50개의 레스토랑 및 영화관을 갖춘 포르투갈 최초의 복합 공간으로 지금도 주요 쇼핑몰로 기능하고 있다. 서울의 롯데 백화점이나 다름없는 이 건물을 처음 보았을 때의 내 반응을 정확히 기억한다. 황당한 듯 잔뜩 삐친 입으로 이렇게 뱉었었지.
- 뭐 저런 빌딩이 다 있어? 진짜 못생겼다! 건축가가 누구야?
80년대에 유행했던 디자인 흐름 중 하나는 ‘포스트모던’이었다. 건축에서도 포스트모던 건축이라 하여 모더니즘 건축 (산업화의 영향으로 장식을 배제하고 합리와 기능성을 추구한 박스형 형태의 건축 – 예? 뭐라고요?)에 반발해 인간성을 회복하고 역사, 전통, 문화에 기반을 둔 장식성을 건축에 투영하려는 사조였는데 (예? 또 뭐라고요?), 85년에 문을 열었다 하니 이 건물도 포스트모던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건축가의 야망은 충분히 이해하겠다. 한참 근대화 물결을 타던 시국이었고 포르투갈 최초의 쇼핑몰이라니 낡은 건물로 가득한 포르투갈 건축사에 길이 남을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을 거다. 하지만 오호통재라! 야망이 과해도 너무 과했으니, 신이시여, 제발 제게 이런 말 할 자격을 허락하소서! 아무리 잘나가는 건축가라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건물을 디자인한 거냔 말이다! 인간성 회복은 개뿔, 마징가 제트도 로보트 태권 브이도 아닌, 당장에라도 가운데가 갈라져 무언가 발사될 것 같은 부담스러운 머리, 마치 4살 아이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레고로 뚝딱뚝딱 쌓은 듯한 유치한 장식, 주변 경관과 달라도 너무 다른 스타일과 색깔, 무지막지하게 하늘로 승천한 세 마리의 검은색 마징가 제트가 도끼눈으로 리스본을 내려다보는 꼴이라니!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한숨이 포옥 나오는 외관이다. 근처에 살았던 난 지나갈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넌 정말 못생겼어. 리스본과 어울리지 않아.
이와 비슷한 말을 우리나라에서도 했다. 바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처음으로 봤을 때였다. 건축가 선정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부터 탐탁지 않았는데 직접 보니 역시 ‘꼭 이거였어야 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지극히 개인 취향이다) 누구는 한국 건축사에 큰 획을 긋는 공간이라 극찬했지만 내 눈엔 동대문의 역사와 그 주변 공간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그저 디자인이란 미명 하에 유명 건축가만을 내세운 당시 서울시 정부의 오만과 권력욕으로 가득 찬 건물이었다. 건물 자체는 혁신적이었지만 싱가포르에 있어도, 두바이에 있어도, 홍콩에 있어도 별반 차이 없을 건물을 왜 굳이 동대문에 세웠을까. 차라리 오랜 전통의 동대문 운동장을 그대로 살리고 사회주택이나 아티스트를 위한 아지트를 제공했다면 어땠을까? 이견이 많다는 걸 안다. 뭣도 모르는 헛소리라고 욕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로 쪽 성곽 위에서 내려다본 동대문의 풍경이란... 난 아모레이라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넌 정말 이상하게 생겼어. 동대문과 어울리지 않아.
권력의 과시로 이용된 건축물을 보면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그들이 증명하려 했던 건 무엇이며 얻은 건 무엇일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다 소용없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잘만 사니까. 여름에는 물이 더럽건 말건 청계천에 발 담그며 더위를 식히고, 날 좋은 5월에는 세빛둥둥섬을 배경 삼아 웨딩 사진을 찍는다. 옛날 피맛골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돈된 요즘 종로가 더 좋다는 사람도 있다. 주변이 어떻게 바뀌든 사람들은 그와 상관없이 일상을 산다. 변한 그곳에 자신을 맞추며. 리스본도 마찬가지일 거다.
처음 파리에 에펠탑이 섰을 때 꽤 심한 손가락질을 당했다고 들었다. 세계적 문호 모파상은 ‘그놈의 에펠탑’이 보기 싫어서 아예 에펠탑 안에 있는 카페에 죽치고 있었다고 했다. 퐁피두 센터도 오픈 당시 파리의 미관을 해치는 흉측한 건물이란 평을 받았지만 이젠 에펠탑과 퐁피두 없는 파리는 상상할 수 없다. 아모레이라스 쇼핑몰도 후대의 사람들이 리스본 최고의 건축물이라 떠받들지 누가 알리요. 그렇다면 난 하늘에서 혀를 차며 어이없어하겠지?
한 도시가 자라는 데 있어 건축은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도시에 성격을 부여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성격과 행동에도 옷을 입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특히 건축가는, 어쩔 수 없이 권력과 손을 잡는다. 그들이 추구하는 ‘미학’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권력이 필요하므로. 권력의 흐름에 따라 생성되고 사라지는 건축물을 볼 때마다 난 허무도 슬픔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낡고 퇴색했지만 아줄레주 타일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리스본에 근대화의 실험물로 들어선 아모레이라스와 뜬금없이 동대문 한복판에 불시착한 UFO 같은 DDP는 (최소한 나에게는) 도시 계획의 대표적인 실수로 남겨질 거다. 하지만 이것 역시 도시 역사의 일부일 뿐, 설사 이게 뭐냐 욕할지라도 사람들은 그와 상관없이 자신이 목표했던 쇼핑을 잘도 즐긴다. 아, 삶이여! 인생이여!
아름다운 건물을 얘기해도 모자랄 판에 못생긴 건물에 대해 A4 용지 2장을 쓰다니, 이렇게 꼰대 인증을 한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건물은 어울리지 않게 리스본에 있다. 곰곰이 생각하니 통행세 26만 원의 빨간색 플라스틱 부루마블 호텔 빌딩은 은근 아모레이라스 쇼핑몰과 비슷하게 생겼던 것 같다. 부루마블 게임이 1982년에 출시했으니, 이 게임의 창시자는 미래를 내다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