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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Jul 29. 2021

잡초

'이방인' 시리즈 - 안녕하세요, 이방인입니다. 

  작년 봄 ‘요즘 뭐해?’란 질문을 받으면 주저할 것 없이 ‘잡초 뽑아!’라고 대답했다시작은 단순했다그때 우린 시댁에서 살았는데 겨우내 느슨했던 정원 관리를 시작하신 시부모님께서 일이 많으니 도와달라고 요청하신 것이다시댁의 정원에는 네덜란드어로는 ‘제이븐블라드 (Zevenblad)’, 영어로는 ‘고트위드 (Goutweed)’, 한국어로는 ‘참나물이라고 불리는 잡초가 정원 전체에 퍼져있었다참나물은 그 뿌리가 깊고 얼기설기 넓게 퍼져 있어서 막상 자라야 할 식물들이 제대로 못 자라기 때문에 뽑아야 한다자라는 속도도 빨라서 땅 위로 살짝 고개를 내민 녀석을 그냥 두면 며칠 사이에 훌쩍 자라 뒤통수를 때린다시부모님의 부탁에 소매를 걷었지만 난 그만 단순노동이 주는 무아지경과 뿌리 끝까지 뽑아낼 때의 짜릿함그리고 ‘이 구역 잡초는 내가 뽑는다!’란 뚜렷한 목표 의식에 빠져버렸다난 시간 날 때마다(솔직히 시간은 따로 낼 필요 없이 넘쳤다정원을 어슬렁거리며 잡초를 뽑았고 더 이상 뽑을 잡초가 없으면 왜 없냐며 짜증 냈다카밀은 멀쩡한 식물을 왜 뽑냐며 못 뽑아 안달하는 날 한심해했다그 시간에 쓸모 있는 (이른바 돈 되는일을 하지뽑아도 다시 자라는 하나 마나 한 일을 하냐고 말이다하지만 꽃씨를 뿌렸는데 잡초 때문에 꽃이 제대로 못 자란다면그걸 어떻게 눈 뜨고 방치한단 말인가과장 조금 보태서 난 잡초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이제는 너무 흔해 식상한 말이 되어버린적폐로 보였다자라나는 새 생명을 잡아먹는 적폐들이여내 기꺼이 정의의 칼날을 뽑으리내 허리가 작살나는 건 상관없다정의를 구현할 수만 있다면안다난 과몰입했다.

 

  누구 말마따나 ‘해봤으니 말인데’, 단도진입적으로 말한다잡초 뽑기는 웬만한 인내심과 정신 수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잡초를 우습게 보지 말라우선 참나물만 보더라도 쉽게 뽑히는 잡초가 아니다마치 땅속에서 미꾸라지가 요리조리 헤엄치듯 끝도 없이 길게 뻗어 있는 뿌리에 놀란다그 뿌리줄기를 따라 천천히 흙을 걷어 내다가 급한 마음에 확 당겨버리면 그만 줄기는 중간에서 뚝 끊어진다이럴 때 난 으악비명을 지르며 미쳐버린다끝까지 뽑아야 녀석들이 다시 안 자라는데이렇게 중간에서 끊어지면 카밀 말대로 하나 마나 한 일이 된다하지만 이상하게 한번 끊긴 줄기는 다시 찾을 수 없었으니피난 통 수많은 인파에 손을 놓쳐 생이별을 하고 마는 이산가족처럼 나머지 줄기는 흙 속으로 사라졌고 난 내 완벽주의를 누르며 미련 없이 다음 참나물로 넘어가야 했다작은 참나물도 이런데 내 키까지 올라온 큰 참나물의 뿌리는 어떨까잡초 뽑으며 정신 수양을 하게 될 줄이야

  또 하나 고약한 점은오늘 다 뽑았다고 자부하면 다음 날 꼭 한두 녀석이 ‘메롱날 못 봤지롱!’ 하며 고개를 뻣뻣이 든다는 거다시지프스 신화의 시지프스의 마음을 이해할 정도라면 과장일까몇 번을 읽고 또 읽고 수정한 후 자신 있게 세상에 내놓은 책에서 다시 오타를 발견하고 교보문고 한복판에서 오열하는 출판사 편집자의 좌절을 이해할 정도라면 과장일까자신을 소탕하려는 내게 녀석들이 화합하여 수작을 부리는 게 틀림없다며 흥분하는 날 카밀은 또 한심하게 바라봤지만 (왜 잡초를 의인화하냐며), 이는 잠재된 내 경쟁심을 건드렸다간교한 녀석들니들이 날 건드려야그려니가 이기나 나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고잉어차피 난 잃을 게 없당깨코로나 땜시 꼼짝없이 여기에 갇힌 나가 뵈는 게 뭐가 있겄쓰다 없애주겄쓰잡초는 완벽주의와 더불어 내 경쟁심도 끌어냈다.  

 

  하지만 내가 잡초에 푹 빠진 진짜 핵심은 이거다바로 내 마음을 울렸다는 것세상 걱정 잊게 해 주고 연민의 감정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종종 난 아련하게 잡초를 보다가 가수 나훈아 씨의 노래 ‘잡초를 흥얼거렸다이게 나만 이런 건지아니면 이 노래를 듣고 자란 내 세대가 가진 공통된 감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잡초라는 단어에 바로 ‘이이~름 모르을잡초야아!’라고 반응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특히 ‘모르을~’ 하고 꺾어지는 부분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잡초는 그야말로 명곡이다리듬도 기깔나고 가사도 기똥차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 이름 모를 잡초야 /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네 발이라도 있으면은 님 찾아갈 텐데 / 손이라도 있으면은 님 부를 텐데 / 이것저것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 아무것도 가진 게 없네 


  자조적인 이 노래는 내 여러 상황에 찰떡처럼 대입된다생각해 보라지금의 나도 잡초다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네덜란드란 나라에서 발음이 어렵다며 이름도 제대로 불리지 못하고 그저 ‘키 작은 동양 여자로 분리되는코로나 때문에 님에게도 가지 못하는무색무취의 이민자이자 이방인인 나그러니 어찌 연민이 생기지 않을쏘냐분명히 이 녀석도 세상에 나와 쓸모 있고 싶었을 텐데하필 태생이 잡초라니결코 섞이지 못하고 결국엔 누군가에 의해 추방될 그런 잡초라니그런데 난 그런 잡초를 뽑는다내가 나를 뽑는 행동을 자각하며적폐를 제거하는 개혁 검사이면서도 같은 민족을 배신하는 일제강점기의 밀정이 되는 내 처지의 아이러니에 헛웃음이 났다

  그렇게 작년 봄난 가열차게 잡초를 뽑았다그리고 올해다시 봄이 오자 작년의 기억을 잊지 않고 내 몸이 반응했다시댁에서 나와 지금 사는 도시로 이사했지만 곧 시부모님이 정원 가꿀 준비를 하실 거라는 걸 알기에 뽑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던 것이다어딜 가든 눈에 잡초만 들어왔다바야흐로 잡초 타임여전히 난 과몰입 중이었다

 

  ‘요즘 뭐해?’란 질문에 잡초 뽑아란 대답이 시답잖게 보일 수 있다꽃을 피우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당장은 결과가 보이지 않으니까현재 내 활동은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체류권을 획득했으니 네덜란드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지만 많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는다언어가 가로막고 텃세가 가로막고 코로나가 가로막는다하지만 난 평소 하던 대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요즘 뭐해?’ 하면 하던 거 해’ 한다지금의 내 일은 잡초 뽑기와 같은 걸까훗날 필 꽃을 위해 열심히 그 길을 닦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그러면서 조급하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까.  

  내 허리가 허락하는 한 계속 잡초를 뽑고 싶다잡초 옆에 자라는 가시 돋친 식물로부터 손을 보호하기 위해 목장갑을 끼고가지런히 걸려 있는 모종삽 중 내 손에 익숙한 삽을 들고 말이다난 잡초 뽑기가 좋다세상 걱정 다 잊고 무념무상 속에서 단순한 육체노동을 반복할 때 오는 희열과 깨끗한 흙을 볼 때의 성취감이 좋다이는 복잡한 현재에서 꼭 필요한 정서적 위로다허리를 못 펴고 엉금엉금 길 정도로 몸을 혹사하기 전에 적당한 때를 찾아 멈추는 자제력도 기를 수 있어서 좋다때로 약초로도 쓰인다던데, ‘알고 보니 쓸모 있는 녀석이었어! ‘하며 몰랐던 잡초의 가치를 알게 될 때도 좋다수많은 역할을 등에 지고 수많은 의미가 함축된 잡초를 뽑고 싶다그러기 위해서는 허리를 잘 관리해야 하고 체력도 길러야 한다매일 마사지 좀 해달라고 조르는 내가 귀찮았는지 카밀은 작년 생일 선물로 미니 마사지 기계를 줬다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알고 보니 잡초는 내 건강까지 생각하여 사람을 조종하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작년 여름시어머니는 내가 참나물을 잘 뽑은 덕에 꽃이 풍성하게 잘 자랐다며 정원에 핀 온갖 꽃 사진을 보내주셨다뿌듯했다올해 봄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잡초 뽑기를 못 해 드려서 송구한데요즘의 시댁 정원이 어떨지 궁금하다내년 봄엔 꼭 뽑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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