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2022년 9월 5일
2022년 9월 5일
여기서는 개학 첫날 부모가 학교 안까지 들어가 아이의 교실을 살펴보고
담임 선생님과 인사하며 학급 친구들에게도 방학 잘 보냈냐며 인사를 보나 보다.
미루가 이 학교에 다닌 지도 벌써 3학기째인데
이상하게 생소해서 지난 학기엔 안 그랬나 기억을 더듬으니,
그럼 그렇지, 코로나 때에 뭘 했을라고.
담임 면담도 화상으로 했는데 말이야.
물론 내가 찾아보지 않아서겠지만
이제 여기는 코로나 상황을 집계도 안 하는 듯한 인상이다.
코로나? 그게 뭔가요? 혹시 맥주? 라는 태도.
(썰렁한 조크라면 미안하다.)
독일만 해도 최소 대중교통 안에서는 마스크를 쓰던데
여긴 원래 사람들이 쓰지도 않았을뿐더러
규제마저 마스크 프리가 된 지도 한참이니
뭐 그냥 창열이가 창열이 하듯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하네 하게 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여전히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철저히 쓰는 한국이
현재 전 세계 1, 2위를 다투며 확진자가 제일 높다고 하니
이건 또 뭐지? 하며 마스크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된다.
독일 여행할 때 기차 안에서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으려니
답답해서 멀미까지 나려고 하던데,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상황이 불안하면서도 감사한 이 아이러니.
그저 지금까지 걸리지 않고 잘 버틴 우리 가족의 수퍼 항체에 감사할 뿐이다.
코로나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얘기가 이리로 흘렀다.
아무튼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개학이 되었고
오늘 미루는 한 학년 올라간 그룹 6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아이는 ‘학교 가기 싫은데...’ 중얼거리면서도
‘그래도 가야지 뭐.’라며 마치
‘옜다~ 내가 특별히 봐줘서 학교 가준다. 고마운 줄 알아’ 선심 쓰듯 갔다.
미루를 데려다주고 교실도 보고 선생님과 인사도 한 후 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어제 마음먹은 대로 운동하려고 호수 공원을 산책했다.
오늘 진정 쓰고 싶은 얘기는 이제서야 나온다.
유럽 최악의 가뭄이라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호수의 물이 확 줄어든 것이다.
산책로 아래로 찰랑찰랑하던 물이 바닥을 보였다.
오리들은 호수 안쪽으로 떠밀려 떠 있거나
푹푹 꺼지는 진흙 바닥 위를 발을 높이 쳐들며 걸어 다녔다.
걸어간 방향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국들이 며칠째 그대로 쌓여있었다.
비가 한번 시원하게 와야 물이 채워질 텐데,
이상하게 이번 여름 날씨만큼은 네덜란드가 네덜란드 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은 아니었지만, 비가 오지 않은 것이다.
비가 와야 네덜란드인데 어찌 이 녀석이 자신의 본질을 잊었는지
평균 23~25도의 화창한 날씨를 유지하다니,
마치 죽을 때가 되어 갑자기 상냥하게 변하는 사람처럼
괜히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렇게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후 변화인데
아직도 기후 변화는 음모라고 할 텐가?
이게 아침이었고 지금은 밤 10시 27분.
조금 전 세차게 내린 소나기가 잦아들고 여유로운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도록 베란다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연다.
안 자겠다고 버티는 미루 때문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빗방울의 청량한 마음가짐을 머금은 바람은
까짓거 좀 늦게 자면 어떠냐며 내 맘을 달래준다.
하지만 아뿔싸,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가 산통을 깨는구나.
문을 닫고 미루에게 너 지금 자러 가지 않으면 후폭풍이 있을 거란 경고의 눈빛을 보낸다.
매일 이렇게 재우기 전쟁이라니,
아이를 8시에 재우는 네덜란드 부모들의 비법은 뭔가?
겨우 방으로 보냈다.
어제 새로 시작한 그림이나 그려야겠다.
조금 그리다가 베란다로 나가 비 오는 밤공기를 즐겨야지.
한국은 한 차례 홍수로 고생하고 지금 태풍 힌남노로 비상 상황인데
여긴 비를 무지 싫어하는 나마저도 비를 즐기고 싶으니,
참 요지경 세상이다.
담배 피는 아저씨야, 너도 이제 자러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