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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Sep 07. 2022

이 아줌마 머리 속엔 뭐가 있을까 #6

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2022년 9월 6일

2022년 9월 6일


작심삼일을 넘겨 3의 두 배 수인 6일째가 되니 감이 잡힌다. 

최소 한 달은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쓸 수 있겠구나. 

물론 몸이 아프거나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 업로드가 어렵거나 하는 사건만 생기지 않는다면 말이다. 

부디 ‘도대체 왜 일기 하나도 제대로 못 쓰게 하는 건대!’라고 버럭 성질내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갑자기 드라마의 여러 장면이 생각난다. 

박신양이 ‘파리의 연인’에서 외친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 하냐고!’라던가

손예진이 ‘연애시대’에서 안 열리는 피클 병을 내팽개치며 

‘내가 진짜 미쳐! 열려라 좀! 이 정도 했으면 불쌍해서라도 봐주겠다!’라던가. 

모두 쌓이고 쌓인 게 나무젓가락에 손 베이듯 미세한 자극에 터졌던 순간.

아마 내 속에서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가랑비 옷 젖듯 쌓여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맨탈 강하다고 자만하지 말아야지. 

여행 후의 내 허리 꼴 날라.

그나저나 세상에, ‘파리의 연인’이라니, ‘연애시대’라니, 

도대체 언제적 드라마냐! 

이렇게 기어코 노땅 티를 내야 하는 거냐.

하지만 친구들아, 

기러기 토마토 별똥별만 찾지 말고 유튜브에서 이 드라마들도 찾아보렴.

특히 연애시대, 명작이라고! 


아무튼, 

오늘은 다행히(?) 일기에 쓸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지극히 무난하고 지루한’ 날인 관계로

지난 독일 여행에서 생각했던 몇 가지 단상을 써야겠다.

기록하지 않으면 ‘저기 가서 쭈그러져 있어!’ 호통치는 내 마음에 밀려 결국 신기루처럼 사라질 단상들이다.

그때 왜 그랬더라, 기억나지 않는 게 많아진다.  

이러다 나쁜 일을 저지르고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청문회에서 발뺌하는 비리 정치인처럼 될라. 


- 독일의 기차는 ‘거의’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그건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 네덜란드어보다 독일어가 더 섹시하다. 


- 최소 주말에는 자전거 들고 기차 타는 걸 금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독일 기차에는 자전거를 들고 탈 수 있는 칸이 따로 있는데, 탈수록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처럼 미어터지는 기차에 자전거 바퀴를 들이미는 인간들의 뒤통수를 팍 치고 싶었다. 자전거 하나 때문에 최소 다섯 좌석을 포기해야 한다니, 아놔, 내 배낭 내려놓을 자리도 없단 말이다! 


- 그 많던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유스 호스텔들은 어디로 갔을까? 코로나 때문에 다 망했나? 우리는 텐트 치고 캠핑했으므로 캠핑장을 찾아 다녔지만 그래도 가끔 새하얀 침대 시트가 그리울 때 북킹 닷컴을 뒤적였는데, 그 많고 많던 백 패커스 플레이스는 없고 다 비싼 호텔 체인만 남았다. 내가 못 찾은 건가? 요즘 젊은 여행자들은 어디로 갈까? 카우치 서핑도 이젠 시들한데 말이야. 


- 여름만 되면 캐러밴 몰고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네덜란드 사람들을 ‘거북이 족’이라고 부르는데 (당연하지. 날씨가 이렇게 구린데 당연히 내려가야지) 정말 이들이 거북이 족이라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캠핑장을 점령한 대부분의 캐러밴의 번호판에는 선명히 NL이라고 적혀 있었다. (독일은 Deutschland의 D, 벨기에는 Belgium의 B, 영국은 Great Britain의 GB, 프랑스는 France의 F, 스페인은 Espana의 E, 그리고 네덜란드는 Netherlands의 NL...) 집 한 채를 다 끌고 온 것처럼 다들 난리도 아니게 꾸몄는데, 신기한 건 같은 나라에서 왔으니 캐러밴끼리 교류할 법도 하건만 다들 그들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있더라. 카밀은 그런 폐쇄성에 질려했다.      


여기까지 쓰는데 갑자기 사건이 벌어졌다.

내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유니콘이 집안을 점령한 것이다!

도대체 카밀 이 양반은 어디서 이런 걸 찾아내서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공기를 불어 넣는가? 

뭐 어디 월드 쿨리스트 대디로 등극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하교하는 미루를 맞아줄 거라며 베란다에서 떡하니 가져다 놓는다. 

멀리서 미루가 보고 난리 칠 거라며. 

안 봐도 비디오, 안 그래도 하이퍼인 미루가 더 하이퍼가 되겠구나.

아이고, 이 좁은 아파트에 저 큰 걸 어디에다 두나, 이 고민 먼저 하는 걸 보니

난 월드 쿨리스트 마미가 될 상은 아닌갑다. 

이보게, 관상가 양반, 난 어떤 마미가 될 상인가? 


다시 쓰는 지금 시각은 저녁을 만들 시간. 

당연히 미루는 광분했고 

카밀은 월드 쿨리스트 대디가 되었고 

베란다는 마굿간이 되었다.

앞으로 저 유니콘 어떻게 키우나. 

당근 통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모르겠고, 저녁으로 버섯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야겠다. 

오늘 그림은 이만큼 그렸다.  


#일기 #이방인일기 #여행 #유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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