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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Sep 08. 2022

이 아줌마 머리 속엔 뭐가 있을까 #7

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2022년 9월 7일

2022년 9월 7일 


어제 우리 집에 쳐들어온 유니콘의 저 눈, 왠지 무섭다. 

내게 말을 걸 것만 같다.

‘심심해. 학교 간 미루는 언제 오니?’

아니면, 

‘정말로 날 그냥 베란다에만 둘 거니?’ 

진짜로 당근이라도 주어서 달래야만 할 것 같다. 

그리하여 난, 새하얀 몸통에 무지개색 갈기와 꼬리, 금빛 뿔, 그리고 얼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검은 색 반달눈과 4가닥의 눈썹을 가진 플라스틱 대형 유니콘 튜브를 베란다에 세워 두고 무서워서 슬슬 피하는 기괴한 상황 속에 있다.

카밀이 개구쟁이 표정으로 능글능글 말한다. 

‘이제 동네에서 우리 집은 ‘아! 그 유니콘 집!’이 될 거야.!’

(한국식으로) 3층에 있는 우리 아파트까지 사람들의 시야가 닿을까 싶지만 여기가 어디인가, 거인국 네덜란드 아닌가.  

이들이 고개를 10도만 들어도 우리 집 베란다가 보일 거다.

자꾸 넘어지길래 유니콘의 목을 베란다 레일에 걸쳐 세웠는데, 그 모양새가 마치 유니콘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우리 집 밑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유니콘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도 말을 걸겠지.

‘안녕, 난 유니콘이야. 날 베란다에 가둔 이 동양 여자의 만행을 세상에 널리 퍼뜨려 주지 않겠니?’ 

안 그래도 이 아파트에서 내가 유일한 동양인인데, 이러나저러나 튀겠구나.

미루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 친구는 또 거실을 점령할 거고, 난 그 검은 눈을 슬슬 피하겠지. 

살다 살다 유니콘을 다 키우네.

이 모든 사건의 주범인 카밀은 월드 쿨리스트 대디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그저 능글능글할 뿐이다.   



다른 얘기 하련다. 

난 웃긴 글을 쓰고 싶다. 

처음에는 인류사를 뒤흔들 메세지와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재확인 할 수 있는 문장이 가득한 글을 쓰겠다는 욕심이 드릉드릉했으나, 그건 철없던 시절의 객기이고 이젠 그냥 긴장을 풀고 읽으며 피식 웃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비록 지금은 표절의 불명예를 안았지만) 박민규 작가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었을 때의 신선함과 충격은 2003년 처음 출간된 후 근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뚜렷이 기억한다. 

아니 이렇게 오감이 뚫리는 문체라니! 

고작 1.4kg밖에 안 되는 인간의 머리에서 어찌 이리 박장대소 글이 나온단 말인가!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웃긴 글을 쓰려면 나 자체가 웃긴 사람이어야 하나? 

웃긴 글을 쓰려면 내 인생도 웃겨야 하나? 

난 유세윤이나 유병재처럼 천재적인 개그감도 없고, 

장항준처럼 선천적인 입담도 없어서 맨날 ‘그때 그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이불킥 하고, 

또 딱히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어? 벌써 저녁때야?’ 하는 지극히 단조로운 아줌마 생활을 하는데, 

그저 쓰고 싶다고 해서 웃긴 글을 쓸 수 있나?

스스로를 웃긴 상황에 놓지 않고도 상상력만으로 웃긴 글을 쓰려면 무슨 훈련을 해야 할까? 

비법이 있나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내가 밖으로 나가 직접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즉, 경험이다.  

경험론자는 아니지만, 영상이나 책으로 접하는 간접 경험만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배고픔을 느낀다. 

그래서 결국, 경험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다, 뭐 이런 원론적인 결론에 다다르는데... 

허허... 이런 말 자체가 재미없다. 

안 웃기니 그만 하고 우선 그냥 쓰고 보자. 


그저께 한국에 다녀 오신 지인께서 선물로 책 두 권을 주셨는데, 전자책이 아닌 손톱과 손가락 끝으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물성의 종이책을 넘기자니 (게다가 다소곳이 인쇄된 한글의 아름다움이라니!) 갑작스런 익숙함에 감동이 밀려와 울컥했다...라고 쓰려는 이때! 

아이고, 밤 11시 58분이네. 

더 쓰고 싶지만 2분 내로 올려야 하기에 여기서 이만.

(‘오늘 일기는 오늘 안에 올리자!’가 내 나름의 룰)      

게다가 맞춤법 검사까지 해야 한다고. 

선물 받은 책에 대해 내일 다시 쓸지는 모르겠지만, 유니콘에 대해서는 또 쓸 것 같다. 


#일기 #이방인일기 #유니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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