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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llow Duck Sep 13. 2022

이 아줌마 머리 속엔 뭐가 있을까 #12

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2022년 9월 12일

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12


2022년 9월 12일 


어제 일찍 자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윗집에서 들리는 파티 및 음악 소리 때문이다.

뭘 하는지 우! 우! 우! 우! 고릴라 소리까지 냈는데, 더치 거인 남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저런 소리를 낼지 뻔히 상상이 돼서 그 이미지를 머리에서 떨치고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니, 내일이 월요일인데 이 양반들은 회사 안 가나?

대게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파티하는데, 웬 일요일?

새삼 현재 ‘코로나로 인한 네덜란드 인구의 재택 근무 비율’이 어찌 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소음을 견디는 네덜란드인의 태도에 기반한 국민성 연구’라는 논문을 쓰고 싶어졌다.    

어찌 된 게 이 나라 사람들은 (아! 이 말 너무나도 ‘외국인’스럽다... ㅠㅠ...) 새벽까지 크게 음악 틀고 떠들어도 미안한 기색이 없나. 

뻔뻔한 건지, 예의가 없는 건지, 귀가 두꺼운 건지... 

더 신기한 건 거기에 대해 불평도 없다는 건데, 무딘 건지 무관심인 건지, 아니면 ‘흠, 지금 내 이웃이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 신경쇠약 걸리기 일보 직전이라 파티라도 해서 풀어야 하는군’ 하고 이해심이 바다 같은 건지...

내 추측은 이해고 뭐고 나중에 자기도 음악 크게 틀고 떠들려고 참는 거지 싶다. 

한 번은 새벽 3시까지 건물이 떠나가라 파티를 하길래 (하필 우리 집 대각선으로 위층 이웃) 아파트 주민 왓츠앱 채팅방에 불평을 올렸는데, 내 불평 밑으로 동조든 반발이든 아무런 대꾸가 없어서 놀랐었다. 

뭐야, 다들 이 소음이 괜찮은 거야?

어지간해야지, 새벽 3시에, 우리나라 같으면 칼부림 날 이 데시벨을?

아, 물론 ‘몇 날 몇 시에 파티를 여니 양해 부탁한다’라고 미리 공지를 올리는 이웃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라서... 

워낙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이니 각자가 내는 소음에도 관대한갑다, 하고 포기한 지 오래다.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아무튼, 

‘아이를 8시 20분까지 학교에 데려다준 후 바로 하려던 운동을 어제 늦게 자는 바람에 피곤해서 못 했다.’

이 문장 하나 쓰려고 저렇게 서론이 길었다. 

왜냐면, 운동하려고 호수까지 갔으나 영 운동할 컨디션이 아니길래 바로 발을 돌려 집에 온 후, 잠깐 쉬려고 카우치에 앉았는데 그만 11시 반까지 자버린 이 사태가 너무 속상해서다.

한 주의 시작을 생산성 만땅으로 활기차게 보내고 싶었는데...

당장이라도 위층으로 달려가 ‘여보게, 자네의 고릴라 소리 때문에 내 한 주 시작을 망쳤단 말일세! 어찌할 텐가!’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배짱은 쥐뿔만큼도 없기에 커피로 마음을 달랜 후 달걀 후라이 하나를 만들었다. 

노른자에 빵 찍어 먹는 걸 참 좋아하는데, 소금과 후추, 그리고 치즈 가루가 살짝 뿌려진 봉긋한 노른자를 포크로 가른 후 호밀 빵 하나를 푸욱 찍어 입에 넣으니 굵고 진하고 짭쪼름한 맛이 혀에 퍼지면서 기운이 확 솟았다. 

그래, 이게 뭐 이웃을 탓할 일인가. 

호수 갔을 때 돌아오지 말고 걷기 운동을 했더라면 몸이 풀렸을지도 모르지. 

내일은 기필코 할 거라고 다짐하며 접시에 남은 노른자를 강아지처럼 남김 없이 핥아 먹었다.  


‘헤어질 결심’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수 정훈희와 송창식이 듀엣으로 ‘안개’를 부르는데, 너무 오랜만에 듣는 송창식의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서 헉 소리를 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초등학교 때 송창식을 무지 좋아해서 ‘참새의 노래’ LP 앨범을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렸었는데.

당시 이문세가 디제이였던 ‘별이 빛나는 밤에’ 일요일 공개 방송에서 ‘담배가게 아가씨’ 부르는 걸 테이프로 녹음해서 닳을 때까지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렸었는데.

‘아자자자자자자~ 자자~ 자자~ 자자~ 자자아아아아아아~~~!’ 어찌나 통쾌하던지.

한동안 잊고 지낸 그의 목소리가 너무 반가워 ‘집에 가서 유튜브로 송창식 베스트 꼭 찾아봐야지’ 생각했건만 ‘일기 쓸 결심’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만 그걸 잊어버렸다. 

그러다 어제 영화를 다시 보고 ‘아, 송창식!’ 잊지 말자고 메모한 후 오늘 그림 그리며 배경음악으로 그의 노래를 들었다. 

- 딩동댕 울리는 나의 기타는 / 나의 지난날의 사랑 이야기 / 아름답고 철모르던 지난날의 슬픈 이야기 / 딩동댕 딩동댕 울린다~

목소리도 이런 목소리가 없어... 

난 그의 노래 중 이 노래가 제일 좋다. 

제목은 ‘나의 기타 이야기’.

이럴 때 바로 쉽게 인터넷으로 찾아 들을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한다.

내일도 그의 노래 들으며 그림 그려야지. 

네덜란드에는 송창식 같은 가수 없나?

아니, 전 세계에서 그 같은 가수는 없을 거야. 


#일기 #이방인일기 #층간소음 #송창식 #나의기타이야기


https://youtu.be/PV7eWXj-2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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