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9월 21일
씩씩한 승연 씨의 이방인 일기 #21
2022년 9월 21일
참나, 이 아줌마 정신머리하고는...
지난 7월부터 글 쓰는 여성들을 위한 월간 웹진 ‘2W 매거진’에 기고하고 있는데
그만 다음 호 마감일이 오늘이란 걸 까맣게 잊고 룰루랄라 하다가
뒤통수에 번개 맞듯 허어억! 하고 벌떡 일어나 모니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줌마, 왜 이리 자꾸 까먹어요?
원래 칠칠치 못한 성격, 더 나빠지려고 이래요?
캘린더에 스케줄을 적었으면 봐야 할 거 아녀요!
적기만 하면 뭐해, 보질 않는데... ㅠㅠ...
아무튼,
다행히 문장은 국수 풀듯 실 풀듯 술술 풀렸고
저녁 만들기 전에 마무리하여 보낼 수 있었다.
(참고로 2W 매거진 다음 호는 ‘우리 운동합시다’란 제목으로 10월 1일에 전자책으로 발간됩니다. 글 쓰는 여성들을 응원하고 싶으시다면 많관부!)
‘숏다리 조깅 클럽’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이번 글은
‘149.7 센티미터의 작은 키는 내 운동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로 요약할 수 있는데
결론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무친 게 많았는지 후루룩 쓸 수 있었다.
특히 이 부분.
한 문단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편집자님, 양해해주세요!)
“(생략)... 운동 신경이 나쁘지 않다고 자부하는 난 어렸을 때 (여학생 지정 운동이었던) 피구, 발야구 등을 좋아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 성장판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거부했고 결국 난 뼈 아픈 팩트를 받아들여야 했다. 아무리 발이 빨라도 키 작은 여학생이 할 수 있는 단체 운동은 피구밖에 없다는 팩트를. 작아도 정도껏 작아야지, 150도 안 되는 심히 작은 체구는 피구에서 ‘톰과 제리’의 제리처럼 날아오는 공을 잽싸게 피할 때만 유리할 뿐 다른 운동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난 발야구 투수를 맡기 위해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커브까지 연구하며 연습했지만, 결코 한 손으로 공을 잡아 볼링 하듯 던지는 상대편 친구를 이길 수 없었다. 한 손으로 잡기에 내 손은 너무 작았으니까. 그렇다면 야구는 어떨까? 배구공이 크다면 (당시 발야구는 배구공으로 했다) 야구공은 작잖아. 하지만 이번에는 남자아이들이 날 끼워주지 않았다. 내가 던지는 공 속도가 꽤 빨랐음에도 ‘여자는 야구하는 거 아니’라며 저리 가라고 했다. 하지만 얘들아! 내가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래 봬도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이라고! 커서 야구 선수와 결혼할 거라고! (아아~ 프로 야구가 탄생했던 1982년 원년의 흥분을 어찌 잊으리! 투수하면 박철순, 포수하면 이만수, 타자하면 장효조, 유격수하면 김재박, 도루하면 신경식! 이 흥분을 같이할 사람, 누구 없소?) 야구가 이런데 축구나 농구는 어련할까. 왜 난 숏다리로 태어났으며, 왜 하필 (분수를 모르고) 개인 운동보다 공으로 하는 단체 운동을 좋아해서 이 수모를 겪어야 할까? 공이 작은 탁구나 테니스, 정 안 되면 배드민턴을 하라고? 하지만 그건 단체가 아니잖아. 그리고 왠지 안 땡겨.”
야구 얘기가 나와서 그랬을까?
나중에 수정을 좀 했지만 일사천리로 써내려간 그 순간엔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추는 내 손가락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순간에 몰입해 타다다닥 내는 그때의 키보드 소리는
완전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었다니까!
그래, 이 맛에 글 쓰는 거지!
글의 퀄리티를 떠나 글쓰기가 매번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감이 있어야 이렇게 될 수 있는 건지...
아무튼 시간 내에 글을 기고해서 다행이다.
다른 필진들이 운동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풀었을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혹시 MBC 청룡 어린이 회원이었던 분 계세요?
하나 궁금한 게, OB 베어스는 물감을 줬는데 왜 MBC는 안 줬을까요?
예산이 없었나... 전 정말 그게 불만이었거든요...
쓰면 쓸수록 내가 선호하는 글의 성격이 확실해지는데,
전에도 썼지만 난 웃긴 글을 쓰고 싶다.
난 박경리가 아니고 박완서가 아니고 김애란이 아니기에
뼈 때리는 문장을 쓰겠다거나
문학사에 길이 남을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내가 쓸 수 있는 글과 없는 글을 확실히 아는 게 먼저다.
'어떻게 이렇게 쓰지?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못 써' 하는 글들이 많다.
난 죽기 싫으니 그런 글들은 다른 분께 맡기고 내 글을 찾자.
아, 그런데 갑자기 얼마 전 후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 '주간 최승연'의 언니 글 중 그나마 000이 좋았어요.
물론 말실수였겠지만 (과연?), ‘그나마’라니... ㅜㅜ...
그나마... 그나마... 그나마... 으아악!
'어떻게 이렇게 쓰지?' 하는 글을 쓰신 모든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을 하고 싶다.
여러분 덕분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