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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읽은 책들

by 황서영

지난 몇 달간 읽은 책들이다. 오래돼서 기억이 흐려진 것들도 있으나, 어쨌든 기록을 위해 남겨둔다.


1.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나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과학을 무기 삼아 종교를 공격하는 논자들을 비판하는 책. (이글턴은 이 둘을 묶어 디치킨스(Ditchkins)라고 부른다.) 이들을 굳이 각 잡고 비판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정작 '굳이'라는 말이 붙어야 하는 쪽은 과학을 가지고 기를 쓰고 종교를 비판하는 이들처럼 보인다. 이글턴은 이들을 비판하며 특유의 유머를 동원하는데, 말 그대로 낄낄대며 읽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의 방점은 이글턴이 아둔한 과학맹신자들을 어떻게 요리하는가보다도, 그러한 풍자섞인 비판을 통해 그가 맑스주의자로서 종교, 특히 기독교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정통 기독교 신앙은 사회주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2. 강인철, '민중' 2부작 (『민중, 저항하는 주체: 민중의 개념사, 이론』, 『민중, 시대와 역사 속에서: 민중의 개념사, 통사』)

대단한 역작이다. 한국의 민중 개념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정리했다. 신채호를 비롯한 1920년대의 민중론, 1970년대~1980년대 초반,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도로 중요한 시기구분을 하고 있다. 사건의 연속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개념사 또는 담론의 역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을 요하고 읽기가 수월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인내심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다 읽고서 전체적인 흐름을 돌아보면 '민중'이라는 오래된 하지만 주변적이었던 말이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입어가며 엄청난 변화를 겪고 만들어냈는가를 살펴보는, 대단한 역동적 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임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민중 개념이 한국의 진보학계, 지성사, 나아가 근현대사 이해에 핵심적인 개념이라 주장하며 향후 민중연구 내지 민중학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제기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민중'에 주목하는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흐름이 나는 '민중'이 이제 현상으로서나 개념으로서나 완전히 역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처럼 보인다.


3. 한강,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만 읽었을 때는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인 줄 몰랐다. 한국사회의 남성성과 폭력성에 던지는 문제의식이나, 그것이 제기되는 방식 모두 간단하지 않다. 다만, 나의 취향은 아니었다. 부커상 수상 이후 수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정작 작품의 자체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말이 없었던 것 아닌가 싶다. '해설' 타이틀을 달고 작품 뒤에 붙는 문학평론가들의 글이 좋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는데, 이번에 특히 그랬다.


4. 마틴 제이, 『변증법적 상상력』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회조사연구소의 역사. 여러 가지 흥미진진한 뒷이야기가 많이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보다는 각 시기별 구성원들의 작업에 대한 내용이 생각보다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기대했던 것과 같은 흥미진진함은 아니었지만 꾹 참으며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몇몇 대목을 펼쳐보니 이들이 신조로 삼았던 비판이라거나 부정성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이제는 너무나 간단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비록 이들이 실천적으로는 소극적이었던 '도련님' 스타일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견지한 이론적 태도가 어떤 식으로든 알려지고 이어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대전환의 시기에는 학문적 경력을 쌓기보다 부정의 정신을 구체화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나, "현존하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사회철학적 자극"이었다는 호르크하이머의 서문에서 느껴지는 기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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