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은 혜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5

[5. 둥둥 떠다니는 애 같아.]

by yellowjelly

똥싸개, 오줌싸개, 악쓰기 대장. 뭐든지 지맘대로. 수아는 그랬다.

엄청 먹고 엄청 쌌다. 그럴 때였다.

진경은 저녁에 돌아와 함께 놀아주고 씻기고 재우는 것을 옆에서 도울 뿐이지만 혜선은 온종일 어떻게 견디나 싶었다.

“진경, 지쳐도 1년은 참아줘.

그다음에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데, 1년은 아무 말도 하면 안 돼.

내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수아가 백일이 겨우 지났을 때쯤 퇴근해 수아를 안고 있는 진경에게 말했다. 종일 굶다가 진경이 퇴근해서야 겨우 첫끼를 먹는 날이 많을 때였다. 그날 저녁 서쪽 창 아래에서 노을 쇼를 보다 혜선이 울었다.

“36살에 엄마가 된 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야. ”

'너는 잘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다 괜찮다고, 그냥 오늘이 지친다까지만 하자고'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혜선이 곧 방향을 잡아 스스로에게 말할 거라 믿고 있었다. 진경은 36살이 되도록 아직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더 문제라고 생각했다.


늘 이상적인 진경에게 혜선은

“현실로 내려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건 어때,

넌 예전부터 땅에서 한 5cm는 둥둥 떠다니는 애 같았어.”

말하곤 했다.


진경도 언제부턴가 난 좀 이상한 여자아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왜 여기 있는 걸까. 하필이면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뭐고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가슴이 늘 텅 비어 있는데, 무엇을 하면 허기가 달래 질까...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진경 가슴속엔 늘 묵직한 덩어리들이 들어있었다.

진경이 보기에 혜선은 평범한 여자아이고 현실적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서 무엇을 사야 하는지, 가령 짙은 색 청바지에 어떤 티셔츠나 블라우스를 입어야 느낌이 나는지를 알고 있었다.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지 한 계절이면 끝날 물건인지도 알고 있었고 찌개에 무엇을 언제 넣어야 맛있는 지도 알고 있었다.


수아가 태어나고 고요한 진경의 집은 더 요란해지고 혜선이 좋아하는 노을 쇼를 건너뛰는 날도 많아졌다. 혜선은 꾀 능숙하게 똥싸개 오줌싸개를 키워냈다. 수아도 순서대로 뒤집고 앉고 서고 걸었다. 여기저기 가리키며 말을 내뱉었고 여전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다. 첫돌이 지나고 혜선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수아를 놀이방에, 어린이 집에 맡기며 바쁜 혜선을 따라 진경도 덩달아 바빴다. 그렇게 수아는 4살이 되었다.


그쯤 혜선의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의 연락은 현실에 발 꼭 붙이고 살아가는 혜선을 땅에서 떨어져 잠시 둥둥 떠다니게 했다. 중심을 잃고 흔들리는 혜선에게 평생 엄마를 잃어보지도 엄마가 되어보지도 못한 진경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혜선이 원하는 걸 이야기할 때까지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