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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이 Jan 17. 2019

강아지 친구, 이렇게 어려웠어?

그냥 만나면 '반갑다, 친구야!' 아니었던 거야?

강아지들은 그냥 냄새 맡고 나면 친해지는 거 아니었어?

    강아지들은 그저 냄새만 맡으면 그 때부터 '안녕, 친구야!'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마루를 데려오고 며칠 뒤, 동네에 실내 애견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마루를 데려오기 전부터 '강아지 사회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을 봤던 터라 마루가 강아지들 사이에서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애견 카페로 향했었다. 몹시 용감하게도. 처음 만나게 할 땐 가능한 시간을 두고 만나는 게 좋다는 이야기도 들어 캔넬에 넣어 데리고 들어가 격리된 공간에서 풀어줬다. 애견 카페에 있던 강아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새로 나타난 마루의 냄새를 맡아댔고 마루는 그 자리에서 잘 어울리지 못한 채 얼어 있는 걸 보며 냄새 맡는 것 만으로 친구가 되진 않는구나, 알게 되었다.

2개월된 마루보다 큰 강아지들이 마루의 냄새를 맡고 마루는 몹시 당황한 모습.

    애견 카페에 갈 때만 해도 마루가 다른 강아지들과 신나게 노는 모습만 생각했는데 움츠린채 구석만 찾는 마루를 보고 처음엔 몹시 의아했다. 왜 놀지 못하는 거지? 정말 무지했다. 급기야 마루는 보호자인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애견 카페 안의 다른 남자 손님의 발 옆에 앉아서 다른 강아지들을 피하고 있었다. 다른 강아지들은 그런 마루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냄새를 맡았고 마루는 엉덩이를 땅에 붙인 채 피하려 애를 썼다. 결국 마루는 내가 아닌 다른 손님들에게 구해달라는 듯 안기려 다리를 긁어댔고 민망해진 내가 마루를 안고 나서며 첫 애견 카페행은 끝이 났다.

누나가 날 여기 던져놨어. 여긴 위험해.
    실내 애견카페는 강아지들의 친구를 만들어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좁은 실내에, 다른 여러 손님들도 있어 흥분한 아이들을 통제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나의 강아지를 허락 없이 만지는 등의 행동으로 예상 외의 신경질적인 성격이 형성될 수도 있어 신중히 생각해 봄직 합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많은 강아지들이 흥분한 상태에서 마구 냄새를 맡으려 달려드는 그 상황은 마루에게 몹시 공포스러웠을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강아지들은 그냥 냄새 맡고 ‘안녕!'하고 친구가 되는 줄 알았던, 개를 알지 못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 제재 없이 마루를 그런 상황에 돌봄 없이 놔둔 것입니다. 지금이라면 산책을 하다 견주분과 인사도 나누고 견주분들의 주의 아래 안전하게 냄새를 맡게 할 것입니다. 만약 주변에 강아지 운동장과 같은 실외 공간이 있다면 그 곳엘 가거나 말이죠. 한꺼번에 많은 사람, 많은 강아지와 인사시키기보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친해지는 연습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마루에게 친구가 생긴 과정을 돌이켜보면 말이죠.


애견 카페보다 산책 친구.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 했던 그 당시의 마루 보호자였던 나는 '강아지 사회화'에 꽂혀 많은 강아지들을 만날 수 있는 애견 카페에 몇 번 더 방문했고 늘 몇 분 앉아 있지도 못한 채 쫓기듯 나와야 했다. 그 때는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애견 카페를 방문하는 게 옳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방문 횟수가 쌓일 수록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며 갔던 마지막 애견 카페에서 흥분한 강아지들이 한 마리의 강아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지켜보던 마루가 뛰어들어 함께 괴롭히기 시작하는 걸 보며 들어간 지 5분도 되지 않아 뛰쳐 나왔고 결국 애견 카페에서 마루의 사회화를 진행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도 마루의 사회화, 특히 다른 강아지와 잘 지내게 하고 싶은 교육을 포기할 순 없었다.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도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들과 잘 지내는 방법에 대한 교육은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았다. 교육이 있다고 해서 기대하며 자세히 읽어보면 왕복 8시간 거리의 수도권에서 참여 교육으로 진행되는 것들이었다. 매 번 실망하면서도 검색을 거듭하다 대부분의 사회화 교육이 산책 교육에서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산책친구라도 만들 수 있다면, 원하던 대로 다른 강아지들과 잘 지내는 마루로 클 수 있지 않을까? 당장 산책 친구를 찾아 나섰다.

동네 형이었던 깐초와 휴게소에서 만난 웨스티 형님.

    다행히 근처에 사는 초코푸들 깐초가 있어 함께 풀밭을 뒹굴 수 있었다. 마루는 3개월, 깐초는 8개월 무렵이었다. 처음 깐초는 마루랑 잘 어울려 주었다. 그러다 마루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마루를 향해 짖기 시작했고 결국 함께 산책을 하지 못 했다. 야심차게 시작한 산책 친구 찾기 계획은 처음부터 커다란 암초에 부딪혔다. 동네를 산책하면서 만나기는 힘드니까 강아지 운동장이란 곳을 찾아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만난 강아지들은 마루와 놀아주지 않았다. 마루가 냄새를 맡으면 고개를 돌리거나 바닥에 엎드려 버렸다. 왜지? 뭐가 문제지? 마루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이후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 마루의 행동을 지켜보며 알게된 부분이 있습니다. 강아지들 사이에도 예의가 있으며 대체로 6개월 이전의 강아지들에겐 관대하지만 이후 강아지들에겐 봐 주는 것이 없어진다는 점과 강아지들의 성격과 성향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 등입니다. 견종의 기질적 특성은 분명 존재하며 그럼에도 모든 슈나우저가 그렇다, 라는 건 편견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마루는 3대 악마견이라는 프레임이 씌어진 슈나우저입니다. 지금은 그 프레임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마루가 과격한 행동을 하면 악마견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마루와 함께 생활할수록 어릴 때부터 어떤 훈련을 하고 어떻게 두려움을 해소하느냐에 따라  문제 행동을 일으킬 확률이 낮아짐을 깨닫게 됩니다. 씹을 거리를 충분히 제공했더니 마루는 가구를 갉지 않았고 산책을 충분히 했더니 배변으로 인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습니다.
     마루와 함께 편안한 일상을 보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5개월이 지날 때쯤, 마루는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살 이후인 지금처럼 눈치를 보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망설이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머리가 자란 강아지들은 한 살 이후가 됐을 때 어린 강아지가 예의없이 다가가면 자리를 피하거나 놀자고 무례하게 굴면 혼내기도 하는 등 나름의 방법으로 그들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그런 신호를 받아본 경험이 드문 어린 강아지들은 그 신호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어린 강아지와 함께하는 사람들도 강아지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듣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 마찬가지므로 함께 호흡을 맞추고 그들의 신호를 파악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마루가 어느 지역에 살든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퍼피 모임이 있어 비슷한 개월의 강아지들과 자주 만나도록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가득할 뿐입니다. 몇 년만에 엄청난 인식 전환을 이룬 만큼 우리나라도 언젠가 지역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퍼피 모임이 생기길 바라봅니다.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건 검색 밖에 없었다. 유명한 훈련사들의 에세이를 읽고 그들의 교육 방법을 동영상으로 확인하며 마루의 훈련을 위해 필요한 내용들을 메모했다. 마루가 조금이라도 예의를 갖추도록, 그게 안 되면 보호자인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언제나 마루와 산책을 나갈 때 간식을 챙겨나가고 다른 보호자 분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했다. 확실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만 밝은 목소리로 건네도 마루의 긴장도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보호자가 인사를 하는 건 정말 긍정적인 신호를 줍니다. 마루는 높은 무언가가 서 있는 걸 무서워해서 멀리 사람이 걸어오면 한 발을 들고 한참 경계하며 지켜보곤 했어요. 그럼 같이 기다리다 지나가는 분에게 인사를 했죠.
    “안녕하세요~”
    낯선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는 건 용기가 좀 필요했지만, 마루를 안심시키기 위해 까짓 인사 하나 못 하겠냐, 싶어 여러 사람에게 인사했어요. 마루는 인사를 하고 나면 안심이 되는지 냄새를 맡으며 지나갔죠. 강아지들의 신호만 파악하려 애쓰기보다 강아지들에게 줄 수 있는 신호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세상이 두려운 것들 투성이인 강아지들도 조금씩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말이죠. 괜찮아, 봐, 내가 인사하잖아. 

    검색을 하면서 알게 된 평행산책이라는 것도 해보고 싶었는데 할 기회가 없었다. 산책 훈련에는 그림자산책이라는 것도 있었다. 물론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며 함께할 마루의 친구찾아 삼만리가 시작됐을 무렵, 같은 슈나우저인 몽이와 콩이를 만났다.


산책 친구는 정말 중요합니다.
몽이누나, 나 냄새 좀 맡을게.

    혹시나, 다른 강아지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며 자주 가던 공원에서 슈나우저 두 마리와 함께 걷던 견주분을 만나 인사를 했다. 정말 반가웠다. 아이들의 나이, 성향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산책 친구, 심지어 같은 견종이었으니 바랄 나위가 없었다. 드디어, 만났다. 다행히 몽콩이의 보호자 분은 마루를 귀여워하며 예뻐해 주셨고 마루에겐 그렇게 개 형과 개 누나가 동시에 생겼다. 마침내 마루에게도 시간 맞을 때마다 같이 산책하며 여러 가지를 공부할 산책 친구가 생긴 것이다.

몽이 누나 저기 뭐 있어? 뭔데뭔데? 내가 갈까?

    벅찬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공원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공원의 반을 돌 때까지 마루는 주변이 떠나갈 듯 짖으며 낑낑대며 몽과 콩 사이에 끼어서 가길 원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몽콩이의 보호자 분은 천천히 기다려 주셨고 시끄러운 와중에도 슈나우저 이야기를 하며 산책을 이어가 주셨다. 물론 몽, 콩이는 어린 마루에게 예절 교육을 시작했다. 마루는 그렇게 내가 해 줄 수 없는 강아지들간의 신호와 예절을 몽, 콩이를 통해 배워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몽콩이를 만난 건 정말 다행이다.

여기서는 뭐하는 거야? '응, 산책하면 쉬기도 하는 거야.' 왜 쉬어? '원래 쉬어야 돼. 물도 마시고.' 왜? '아, 원래 쉬어야 산책인 거야.' 왜? 어휴.

     마루는 그렇게 몽이와 콩이가 냄새 맡는 곳을 냄새 맡고, 마킹하는 곳에 마킹도 하고, 도발도 해보는 등 강아지들과 어울리는 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마루의 행동에 몽콩이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약간의 반응으로 마루는 수위를 조절할 줄 알게 됐다. 콩이가 마킹을 할 땐 적극적으로 콩이의 소변 냄새를 맡으려 얼굴을 들이밀다 소변을 묻혀 오기도 했다. 마루는 몽콩이와 함께 산책하며 많은 부분 행동이 달라지게 됐다. 그럴수록 또래를 만났더라면, 또래와 함께 훈련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산책 친구가 생긴 것만도 정말 다행이었다.

아아, 콩이횽아 쉬야는 이런 냄새가 나는구나.


집착하는 행동은 말려주세요.
어떻게든 등에 앞발 한 번 얹어 보겠다는 마루.

   산책 친구는 생겼지만 보다 많은 강아지들을 만나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마루가 5개월에서 6개월로 넘어가던 무렵 경기도에 여행을 갔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알게된 다른 슈나우저들과 마루를 만나게 해주는 게 목적이었다. 생후 1년이 지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강아지들을 만나게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그렇게 봄의 어느 날. 수도권의 한 공간에서 마루를 예뻐해주시던 분들과 그들의 슈나우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루의 집착이 시작됐다. 마루는 처음 본 형의 귀를 끊임 없이 핥아주며 등에 앞발을 얹으려 했고 다른 형들(그 때 모인 슈나우저들은 모두 마루보다 나이가 많은 중성화한 남자아이들이었다.)이 말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장 4시간 동안 마루의 마운팅 집착은 이어졌고 다행히 보호자 분은 모든 걸 이해해주셨다. 이 나이(한 살 이전)의 강아지들은 이렇게 집착하기도 하는 거라면서 오히려 다독여주시던 보호자분 덕에 마루는 이후에도 더 많은 강아지를 만나며 그 경계를 정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정말 감사한 모임이었다.

    강아지들에게 마운팅(올라타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새 생명 탄생을 위한 행동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의사 표현의 수단으로 쓰입니다. 마루가 상대방 강아지의 생식기를 핥아대는 것도 친해지자는 표현, 혹은 싸울 의사가 없음을 나타내는 행동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운팅만 놓고 보면 상대 강아지에게 우위를 알리기 위한 행동인 동시에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 되기도 합니다. 마운팅을 당하는 강아지들은 대개 등을 돌려 빠져나오거나, 바닥에 앉기도 하고 때로 엎드려 거절의 의사를 표헌합니다. 그럼에도 계속하려한다면 보호자가 나서서 말려야 합니다. 때로 앉거나 엎드리는 것은 놀기 싫다는 거절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강아지가 어리고 경험이 없으면 거절 의사를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기도 합니다. 마루의 경우 꾸준히 새로운 강아지들과 놀 수 있는 환경에 노출시키고 산책 친구들과 산책을 하면서 8개월이 지날 무렵에서야 거절 의사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정해진 시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강아지의 성향과 그들이 자란 환경이 어우러져 만들어질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많은 경험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후 마루와 함께 다른 지역의 강아지 운동장에 가거나 모임에도 참여해봤지만 마루가 잘 논다는 느낌보다 다른 강아지들의 냄새를 맡으며 집착할 상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크고 작은 일들이 생겨 더 이상 어딘가를 다니며 마루에게 강아지를 만나게 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잠정적으로 여행을 중단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간 여름 휴가지에서 슈나우저와 웨스티를 키우는 소셜 네트워크 친구분을 만났다.


많은 경험이 뒷받침된다면 적절한 때, 적절한 만남은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누나, 나랑 안 놀아주면 난 간다!! 응, 그래.

     정말 우연이었다. 그 분은 비슷한 개월 수의 슈나우저와 정말 잘 놀 줄 아는 웨스티와 함께 여행을 왔다. 숙소 마당에서 웨스티와 놀다가, 슈나우저와 놀며 마루는 강아지들의 신호를 많은 부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웨스티 친구가 거절의 표현도 확실히, 놀자는 표현도 확실히 하는 강아지였고 마루는 덕분에 많은 걸 이해하는 것 같았다. 물론 이전의 경험들이 웨스티의 신호에 하나로 연결된 것일 수 있다. 여름 휴가지에서 잘 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마루는 산책 친구인 몽, 콩이와 노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졌다. 몽이가 거절하면 예전처럼 두 세번 반복적으로 조르던 걸 하지 않았고 콩이에게 달려갔다. 콩이가 거절하면 뒤에서 조용히 따라다니며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마루는 그렇게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다.

적절할 때 적절한 경험은 많은 부분을 성장시킵니다.

    만약 강아지의 사회화가 고민이라면 때가 있는 법이니 너무 노심초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단, 이전에 다양한 활동과 경험이 뒷받침 됐을 때 말이다.


무조건 친해지지 않아요. 거리와 시간이 필요해요.
큰 강아지가 냄새를 맡으려 하자 완강하게 거부하는 마루.

    늘 마루가 다가가는 입장이어서 생각도 못 했던 일이 있었다. 마루보다 좀 큰 친구였는데, 공원에서 만나 서로 인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늘 하던 데로 마루의 냄새를 맡도록 해 주었고 마루도 냄새를 맡으며 보호자들도 인사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크엉! 하고 마루가 이빨을 온통 드러낸 채 짖더니 인사하던 강아지를 무섭게 밀어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큰 소리에 놀라서 보니 큰 강아지는 마루가 짖건 말건 물끄러미 지켜보며 한 발 다가서고 있었는데 마루가 사납게 짖으며 큰 강아지의 목덜미를 물려 했다. 당황해서 마루를 붙잡으려던 순간 갑자기 큰 강아지가 마루의 목을 감아쥐고 마운팅 자세를 취했다. 그 마운팅은 어느 누가 봐도 서열을 확실히 가르쳐주는 자세였다. 마루는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고 꼬리는 내려가 있었다. 큰 강아지의 보호자 분은 

우리 강아지도 사회화가 중요한데 너무 늦었나 봐요.

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멀어져 갔다.

    너무 늦은 건 없는데 보호자들의 방법이 잘못된 경우였다. 여전히 개라는 동물을 알지 못해서 그 때까지도 어느 정도 '냄새 맡으면 친구'라는 생각이 남아 있었기에 잘못된 방법으로 냄새를 맡게 한 것이다. 강아지들은 이미 만나기 전부터 주시하는 단계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상대의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강아지가 다른 강아지의 태도에 불안하지 않게 하려면 보호자에게 집중하도록 한 후 멀리서 보호자들끼리 인사를 나누고 천천히 반응을 살펴보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예민한 강아지들은 보호자에게 집중하도록 한 후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빙 둘러 가는 방법도 있다. 요점은 흥분한 상태에서 강아지들끼리 서로의 냄새를 맡도록 하는 것은 긴장을 높이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 늘 사람들이 사람을 사귀는 것만 봐와서 강아지가 친구를  만나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전혀 몰랐던 때의 사건이었다. 지금은 가능한 빙 둘러 가거나 그 상황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무작정 냄새 맡는다고 친구, 혹은 아는 사이가 되는 건 아니었다.


산책 친구들과는 잘 놀아요.
몽, 콩이를 찾으며 산책을 즐기는 마루.

    그런 일들을 겪으며 점점 마루가 다른 강아지를 대하는 데 어떤 기준이 있는지, 경계선은 어디까지인지 알아갈 무렵 마루는 어느새 한 살이 됐다. 조금씩 다른 강아지들을 대하는 태도가 보여서일까, 마루가 산책 친구인 몽, 콩이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눈치가 늘었다는 점이다. 몽, 콩이의 반응에 따라 마루도 다음 행동을 정하곤 했다. 몽, 콩이가 놀아주지 않으면 놀아달라고 짖으며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셋이 함께 무언가를 하러 갈 때 가장 신나하며 쫓아가 몽, 콩이가 하는 것들을 함께 할 줄 알게 됐다.

꾸준한 산책 친구는 학교에 가는 것과 같았다.

    마루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한 후 가장 운이 좋았던 건 아무래도 꾸준히 산책을 함께할 산책 친구가 생겼다는 것과 줄을 푼 채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마루는 다행히 시골 소도시에 살아 줄을 푼 채 산책할 수 있는 외진 공원이 있어 세 마리 모두 줄을 풀고 뛰어놀게 할 수 있었다. 마루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 줄을 한 채 산책을 함께 해도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그저 학교에서 체육 시간을 함께 하는 것과 쉬는 시간에만 노는 정도의 차이랄까? 다른 강아지들과 잘 지내는 걸 배우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산책 친구니까.


다른 강아지들 무리에서도 잘 놀아요.

    마루가 몽, 콩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걸 보며 좀더 여유롭게 여행을 다녀도 좋을 것 같았다. 마루와 함께 생활한 지 1년이 됐을 무렵, 다시 강아지 운동장에서 여름에 만났던 웨스티와 다른 슈나우저들을 만나러 갔다. 수도권까지 4시간 이상 걸렸지만 전혀 후회 없을 만큼 마루는 신나게 잘 놀았다. 다른 강아지들과 꼬리 맞붙이고 앉아 간식도 얻어 먹고 달리기도 하며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다. 마루가 움직이는 곳마다 강아지들이 따라왔고, 다른 강아지가 움직이면 마루가 쫓아 뛰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난 마루야. 재밌게 놀자!

    신나게 노는 마루를 보며 다른 강아지들을 보러 가는 게 기대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살짝 뿌듯하기까지 했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강아지와 함께하는 캠핑장에서도 마루는 신나게 놀았다. 혼자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다른 강아지들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그들이 경계하면 돌아서 나올 줄도 알았다. 그 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무언가 냄새도 맡으러 다녔다. 마루는 이제 강아지들과 어울려 놀 줄 아는 강아지가 되었다. 그동안 노심초사하며 마음 졸였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거기서 머해에..? 나랑 저기 뒷밭에서 킁킁이 좀 할래? 여기 우리 텐트야!!! 저리 가!!!

    마루가 성장한 1년 동안 마루 뿐 아니라 나의 세계도 점점 확장되었다. 처음 아무 것도 몰라 아예 잘못된 대처를 하던 보호자에서 점점 이해의 폭을 넓히고 마루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면서 마루가 필요로 하는 것과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해 주지 못 하는 것을 구분하고 최대한 맞춰주려 노력했던 시간들. 덕분에 마루는 사람의 옆이기보다 강아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강아지가 되었다. 

    강아지 친구, 이럴 줄 몰랐다. 이렇게 어렵고 애태울 줄이야. 이제 강아지들이 냄새 맡으면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지 않아요, 라는 이야기를 할 줄 알게 됐다. 냄새도 신중하게 맡아야 하는 거예요, 라는 이야기도 덧붙일 수 있다. 앞으로 마루와 함께할 시간 동안 이럴 줄 몰랐던 일들은 계속 일어나겠지만 이번처럼 마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 보러 간다고?

    처음 강아지들과 잘 지내지 못 하면 어떡하냐며 발을 구르던 마루는 몽, 콩이 보러 가자, 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강아지가 되었다. 보호자와 강아지가 함께 노력할 때 가능했던 건 아닐까. 다른 강아지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마루 덕분에 여행은 늘 설렌다. 그 곳에서 또 얼마나 신나서 노는 마루를 보게 될까, 나도 함께 신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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