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면 다 잘 먹는 거 아니었어?
이 눔 시끼!!!! 밥 또 안 먹었어?
이번 밥은 아무래도 실팬 것 같다. 성분표도 꼼꼼히 보고 후기도 여러 개 찾아봤는데 가장 중요한 마루 입맛을 살피지 못했다. 아닌데, 마루 칠면조 고기 잘 먹는데. 아! 맞다. 마루는 풀 냄새 싫어하지. 이번 사료는 고기와 야채, 곡물의 밸런스가 과하게 치우치지 않고 동결건조라 보관에도 많은 신경이 쓰이지 않아 이전에 다른 동결건조 사료를 잘 먹던 기억에 주문했다. 그리고 개봉하자마자 좌절했다. 마루는 풀 냄새를 싫어하는데 이 사료는 풀 냄새가 많이 났다. 그래도 물에 개어 놓으면 구수한 냄새가 나서 쿠키를 좋아하는 마루 코를 사로잡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은 오산.
그때부터 이 사료를 먹이기 위한 나만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그냥은 안 먹으니 고기를 섞어주자 싶어 이번엔 조기를 구웠다. 열빙어는 통으로 줘도 아작아작 잘 씹어먹는데 조기는 뼈가 걸릴까 걱정돼 비닐장갑을 끼고 야무지게 뼈를 발라 조기살과 사료를 섞어 경단을 만들었다.
조기가 너무 작아 사료에 조기가 잘 보이지 않아 일부러 살 부스러기를 남겨 토핑을 했다. 제발. 마루가 잘 먹기를. 두근두근하며 마루 앞에 밥그릇을 두고 물러나 앉았다. 그렇게 십여분 정도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한 뒤 밥그릇을 보는데 조기살만 골라먹고 경단은 그대로였다. 심지어 뭉쳐 놓은 경단을 헤집어 조기살만 쏙 빼먹기도 했다.
내심 기대하던 회심의 밥이 외면받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욕부터 나왔다.
이 눔 시끼!!!!!
이번 사료는 물에 개면 반나절도 채 못 가 상했다. 좋은 밥을 먹여보겠다는 노력은 이번에도 헛되게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려지고 말았다. 마루가 처음부터 이렇게 먹을 걸 가리진 않았다.
2개월 입맛 두 살까지
마루를 데려오겠다고 결정한 날부터 마루가 오기까지 공부할 게 참 많았다. 그 무렵은 '세.나.개(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열풍이 불던 때라 어설프게 여러 강의며 세나개 프로그램을 챙겨보느라 대부분의 훈련들을 '마루가 좀 큰 뒤에'로 미뤄두었다. 마루가 오면 당장 급한 게 ‘화장실 훈련'과 '사회화'라고 못 박았다. 먹거리는 스치듯 잠깐 본 '생식'편에서 다음에 공부해봐야지, 정도로 여겨두었다.
동물을 좋아하지만 무지했던 터라 밥도 좀 유명한 브랜드의 가장 저렴한 사료를 6킬로나 사놓고 든든해했다.배변 훈련을 위해 간식이 필요한데 비싼 건 정말 헉, 소리 나게 비싸 저렴한 간식들을 서랍 가득 채워 놓고 의기양양했다. 강아지를 훈련하기 위해 간식은 필요했고 자극적인 먹거리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꿈에도 몰랐던 그때.
지금이라면 닭가슴살을 삶아 잘게 찢어 간식으로 준비했을 거예요. 마루가 야채와 다양한 맛에 익숙해지도록 여러 고기며 채소 등을 준비해서 골고루 먹이려 노력도 했겠죠. 몰랐다, 라기엔 너무 후회되는 마루의 어린 시절이에요. 강아지도 사람 아이와 똑같이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엔 다양한 맛을 보게 하고 건강한 식단으로 준비하는 게 참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요즘은 동결건조 사료도 크게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밸런스 좋은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한 봉지에 천 원도 하지 않는 저 버거를 유리병에 가득 담아 수시로 뿌려댔다. 마루가 배변 패드에 배변을 잘해서 한 개. 심심해하니까 여기저기 숨겨서 두어 개. 현관 밖을 무서워하니까 수시로 비상계단 근처에서 간식을 뿌려 찾아먹게 하느라 여러 개.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보상으로 주라며 한 개씩. 마루는 원래 사료를 와구와구 먹지 않고 한 알 한 알 꼭꼭 씹어 먹었는데 어느 날부터 사료를 잘 먹지 않게 되었다.
머나먼 생식의 길
마루가 온 지 한 달이 지나가는 무렵이었고 스쳐 지나듯 본 '생식'에 꽂혀 생식 관련 책들도 공부하고 있던 때라 몇 개의 챕터를 더 읽고 마침내 고기를 주문했다.
생식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Tom Lonsdale톰 론스데일에 대해 알게 됐고 그의 책인 Work Wonders워크 원더스를 읽으며 많은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개는 육식동물입니다.
라는 내용. 그 근거로 그들의 소화기관과 치아, 턱뼈 등을 이야기했다. 그랬다. 강아지의 소화기는 육식 동물의 그것이었다. 이제껏 개는 잡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터라 정말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맞다. 개는 육식 동물이다. 톰 론스데일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매우 흥미로웠고 생식의 접근방법 또한 무척 쉬워 보였다. 특히 책의 처음 부분엔 독자들이 나중에 포기하지 않도록 생식이 얼마나 쉬운 것이며 생식이 왜 중요한지 여러 번 반복해서 써두어 세뇌가 잘 되는 나는 단박에 세뇌되고 말았다. 그리고 뒤를 읽을 것도 없이 고기들을 주문했다. 톰 론스데일이 제안한 생식의 대원칙은 이랬다.
일주일 먹을 양은 강아지 몸무게의 20% 정도, 5kg의 강아지라면 약 1kg의 고기를 뼈의 비율 20%로 해서 일주일간 나눠서 먹일 것. 야채는 소화를 하기 힘드니까 퓌레 형태로 만들어 먹이는 게 좋지만 굳이 먹일 필요는 없으며 내장을 꼭 식단에 구성할 것. 내장에는 풍부한 비타민과 무기질이 있으니 일주일에 하루는 내장만으로 식단을 짜는 것도 괜찮다.
톰 론스데일의 방법은 자연 상태의 육식 동물들이 영양분을 섭취하는 그대로의 생식을 제안하고 있어요. 이 방법은 내장을 구하기 힘들고 풀을 먹인 소나 양이 드문 한국에서 힘든 생식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먹거리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마루가 좀 더 건강하게 오래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고 여건이 된다면 내가 맛있는 음식에서 행복을 느끼듯 마루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요즘은 영양학에 관한 상담을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생식 레시피를 받아올 수도 있습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2018 초 무렵) 생식에 대한 정보는 무척 제한적이었지만 2019년 현재 영양학 연구소라는 곳에서 상담도 할 수 있고 레시피를 받아 볼 수도 있으며 여러 카페에 가입하여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워낙 방법이 다양하고 정답이 없는 부분이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니 반려견과 함께한다는 건 끊임없는 공부를 동반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루가 그때 약 5kg이었으니까 1kg의 고기와 개껌 대신 씹을 뼈 등을 골고루 주문했다. 개껌 대신 뼈를 준비했던 이유는 역시 톰 론스데일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개들의 치아는 찢고 뜯고 부수기 좋게 만들어져 있어 뼈를 먹지 않으면 치아가 약해지고 치주염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익히지 않은 생뼈에 붙은 고기를 먹는 것은 개들의 구강 건강에 무척 중요한 일이며 반드시 익히지 않아야 한다. 익은 뼈는 날카롭게 부서져 내장기관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개껌 대신 오리 도가니 뼈를 주문했고 (식사용으로는 고기가 덩어리로 붙은 오리 다리가 좋다.) 처음 고기를 줬을 땐 잘 먹지 않아 사료와 함께 섞어 주었다. 그런데 도무지 내장을 구할 수가 없었다. 신선한 내장을 구하는 건 정말 발품을 팔아 노력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었다. 구해도 문제였다. 내장은 보통 큰 덩어리로 파는데 마루 혼자 먹으려면 대부분을 결국 버려야 했기 때문에 마루에게 생식을 하겠다는 계획은 1년도 지나지 않아 큰 암초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뼈에 붙은 생고기
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내장을 함께 주는 조류를 주문했다. 이때부터 마루에게 안 먹는 고기가 생겼다. 오리 도가니 뼈를 잘 먹어서 오리 고기를 샀는데 다리와 가슴살을 제외하고 남은 부위는 먹질 않았다. 꿩고기도 좋다고 해서 샀다가 냄새만 맡고 물러나 앉는 바람에 뼈를 발라 삶아줘야 했다. 대부분 많은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메추리도 몇 번 씹다 먹질 않아 남은 고기는 버렸다.
다양한 고기를 줘 보기 위해 주문한 양고기도 냄새만 맡았다. 양고기를 버리던 날은 울컥했다.
개들은 고기면 되는 거 아니었어?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가리는 음식이 있는데 코가 있고 입이 있다면 어떤 생명이든 선호하는 ‘맛’이 있을 터였다. 나는 마루가 가족이라면서 한 편으론 존중하지 않고 있었다. ‘개’라면 고기는 환장하고 먹어야 한다, 라는 편견을 가지고 말이다.
사람의 입맛이 다 다르듯 개들도 입맛이 다 다르다.
마루는 두 살이 다 돼가는 지금도 반나절 이상을 꼬박 굶으면 공복토를 한다. 고기를 안 먹어 배고프면 먹겠지, 하고 놔두면 어김없이 새벽녘에 토할 때 특유의 '꿀럭꿀럭' 소리에 잠을 깨야 했다. 몇 번의 공복토 끝에 결국 내가 고집을 부리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생식을 접었다. 포기하진 않았지만. 사료를 주문하고 뼈에 붙은 생고기를 가끔 주기로 했다. 사료를 주문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톰 론스데일의 책에는 온통 사료의 부정적인 면들만 나열되어 있었고 인터넷에는 부정적인 내용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시 사료 공부가 시작됐다. 단백질 함량과 칼슘, 인 함량을 공부하고 통육과 육분의 차이점, 곡물에 대해 알아나갔다. 그렇게 최대한 몇 가지 사료를 추려 냈다. 이제 사료를 주문하면 되는데, 문제는 마루의 입맛. 이제까지 고기를 버릴 때의 심정이 떠올랐다. 사료도 안 먹으면 어떡하지?
다행히 어느 분이 사료 샘플이 가득 든 박스를 보내주셨고 그 사료들로 입맛을 시험해 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마루는 대부분의 사료를 거부했다. 어떤 사료는 코도 대지 않았다. 그렇게 샘플 사료도 많은 양을 버리고 그나마 잘 먹던 사료 샘플 중 성분과 후기를 검색해 주문을 했다.
사료의 성분은 무척 중요합니다. 오리 고기나 닭고기 사료라 한다면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고기로 만들지 않습니다. 사료의 성분에 '육분'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그것은 대체로 버려지는, 폐기된 고기들을 갈아 가루를 내어 사료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고기를 사용했다고 해서 안심할 것도 아닙니다. 살은 거의 없지만 모양이 온전한 편이면 통고기로 적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백질 함량이 중요합니다.
재료들은 가장 많이 들어간 것이 처음에 적힙니다. 만약 감자나 렌틸콩, 병아리콩 등이 가장 먼저 적혀 있다면 그 사료에는 고기가 주가 아닌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콩이나 감자 등의 곡물이 심장병에 영향을 준다는 미국 학회의 발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료 제작 공정 과정에 닭기름을 둘러 개의 후각을 속입니다. 대부분의 사료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료는 성분 표기가 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허술한 편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사료들에는 몇 % 인지 정확히 기재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의 사료에는 몇 % 이하, 혹은 몇 % 이상으로 두루뭉술하게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식을 공부하다 접은 지금, 언젠가 다시 시작하겠지만 그때까지 사료를 먹이기로 한 이상 성분이 괜찮은 사료를 꾸준히 공부할 예정입니다.
샘플은 잘 먹더니 본품은 안 먹는 마루. 지금은 어느 하나의 사료를 잘 먹어 시름은 덜었지만 꽤 괜찮다 싶은 사료를 주문할 땐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사료는 잘 먹어줄까? 그 사료가 좋아서 비싼 사료라면 정말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사료에 대한 공부를 하다 사료 회사를 믿을 수는 없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은 사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개월 때 버린 입맛, 마루의 입맛을 사로잡을 좋은 사료는 없는 걸까?
여러 사료를 1년여 먹여 오면서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마루는 닭기름으로 코팅된 사료는 일단 코를 대고 몇 알이라도 먹었다. 그런데 동결 건조를 한 고기를 사용한 사료나 신선한 재료로 만든 제품은 일단 멀리했다. 닭고기도 생고기는 안 먹지만 삶은 고기는 신나게 먹었다. 자극적인 향의 사료일수록 코 박고 먹을 가능성이 높은 사료였다.
아, 어릴 때 입맛인가? 엄마 젖을 떼고 아무도 없는 곳에 나 하나 의지해서 처음 먹었던 밥맛을 못 잊는 건가? 그때 가장 즐거웠던 간식 찾아먹기의 진한 닭기름 향이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되어서인가? 아. 어렵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어릴 때 반찬 투정하던 내가 겹쳐 떠올랐다. 지금도 먹기 싫은 건 입에도 안 대는 내가 생각났다. 그렇다고 입맛에 맞춰 안 좋은 재료로 만든 사료를 주고 싶진 않았다. 영양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생식을 줄 용기도 없다. 몇 년 전과 달리 다양하게 좋은 사료가 많아졌지만 마루가 안 먹으면 말짱 꽝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땐 고기를 입에도 안 댔지만(고기 냄새를 싫어했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지 않은가. 마루도 좋은 사료를 꾸준히 먹이다 보면 덜 자극적인 맛에도 익숙해지겠지. 언젠간 잘 먹을 거야. 한숨을 쉬고 밥그릇에 뭉쳐 놓았던 사료를 버리며 다음 사료에는 뭘 섞어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리를 좋아하니까 오리고기? 아껴 뒀던 닭가슴살 말랭이를 풀어? 그나마 괜찮은 밥 먹으면서 오래 건강했으면, 밥그릇을 씻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