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을 맡기자니 불안하고, 직접 하자니 너무 어렵다!
첫 미용, 어디서 하나요?
어휴. 이게 다 뭐야?
신나게 매화나무 사이를 냄새 맡다 온 마루를 보자마자 '끄악!' 하는 내적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디서 도깨비 풀이며 풀씨 등을 잔뜩 붙여왔는데 저걸 다 뗄 생각을 하니 몹시 아득 해져서였다. 긴 털에 엉겨 붙은 도깨비 풀은 하나하나 뗄 때마다 털이 뜯기다시피 뽑혀 마루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저히 여기서 다 못 뗄 것 같아 일단 집으로 오면서 함께 산책하는 몽콩이네에 도움을 청했다.
도깨비풀 어떻게 떼죠?
강아지용 빗인 콤(일자 빗)으로 떼시거나 비누로 살살 문지르면 떨어지던데요.
다급한 질문에 친절한 답변을 해 준 몽콩이네의 조언대로 마루를 욕조에 넣어 놓고 일단 비누칠을 했다. 빗질보다 비누칠이 더 쉬워 보여서였다. 그런데 긴 털은 비누칠에 뭉치기만 하고 도깨비 풀은 털 사이로 숨어버려 더 떼기 힘들었다. 한숨을 쉬고 콤을 찾아 빗질을 시작했다.
비누칠이 돼 있는 털이었지만 도깨비풀과 엉킨 털은 빗질에 속수무책 뜯기다시피 했고 털이 뜯길 때마다 마루는 비명을 질렀다. 마루에게 미안해!를 연발하며 최대한 털이 안 뽑히게 떼어낸 도깨비풀을 긴 털에서 한참 빗어내다보니 털이 짧았으면 이렇게 고생할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당장 미용을 결심했다. 첫 미용은 신중하게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언제 할 지 고민하다 미루고만 있었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어 미용과 관련된 여러 글을 읽어보고 지역 카페를 통해 미용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신중을 기하며 후보를 추렸다. 후기도 꼼꼼히 살펴보고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곳이 어딘지 살펴봐서 마침내 마음이 쓰이는 한 군데를 정해 마루를 맡겼다. 마루가 약 6.2kg, 6개월이 되던 무렵이었다.
미용을 맡기면서 보니 무게에 따라 요금이 책정되는데 5kg을 훌쩍 넘긴 마루는 추가 요금이 있었다. 거기에 슈나우저 전용 미용을 부탁했더니 또 추가 요금이 붙어 7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사람 머리도 2만 원이면 자르는데, 싶어 카드를 꺼내는 손이 살짝 떨렸지만 강아지도 머리만 정리하면 비싸지 않겠지, 쟤네는 전신이잖아, 하며 애써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털이 계속 자라는 강아지에게 미용은 필수입니다. 계속 자라는 털을 방치하면 털이 엉켜 딱딱해지고 그 사이에 진드기나 여러 해충들이 달라붙기 쉬우며 피부병도 잘 걸리게 됩니다. 마루는 털이 계속 자라는 슈나우저라 주기적인 미용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미용이 필요한 강아지에게 첫 미용은 참 중요한 사건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움직임을 제한당하며 무서운 클리퍼의 진동과 소음, 가위질할 때의 서겅서겅하는 느낌과 소리를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미용할 때 얼마나 강아지를 배려하는 곳인지가 중요합니다. 미용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곳인지도 선택지에 넣어봄직합니다.
미용이 처음이에요,라고 했더니 밖에 사람이 있으면 낑낑거리느라 미용하기도 힘들고 다칠 수 있어 가능하면 다른 곳에 다녀오는 게 좋겠다기에 지켜보겠다, 는 처음의 결심을 접고 밖으로 나와 3시간을 기다렸다. 3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서 밥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고, 빵을 사 와도 채 지나지 않았다. 결국 미용실 앞 벤치에 앉아 연락이 오길 기다려 마침내 3시간을 훌쩍 넘기고 마루는 미용실에서 풀려났다. 등만 홀딱 벗은 어색한 모습을 하고서.
처음에는 깔끔해진 마루가 예뻐서 몰랐는데, 마루를 돌아볼 때마다 흠칫하게 됐다. 등만 홀딱 벗은 모습과 커진 눈이 낯설어서였다. 게다가 등에는 클리퍼 지나간 자리마다 고속도로 차선처럼 실선이 살짝씩 보였는데, 그걸 보며 ‘전문가가 밀어도 저런 선이 생기면, 나도 미용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잠깐씩 입맛도 썼다. 문제는 슈나우저가 하는 미용을 하겠다고 다리와 옆구리 털을 남겨놨더니 여전히 털로 낙엽을 쓸고 다녀 그때마다 미용을 왜 한 것인지 약간은 후회가 남았다는 점. 그래도 깔끔해진 얼굴과 별 탈 없이 노는 마루를 보며 후회를 삼킬 수 있었다. 최소한 마루에게 첫 미용의 기억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마루의 첫 미용은 날카로운 추억을 남겼고 다시 털이 자라 복슬강아지가 된 마루는 금방 미용을 할 때가 됐다.
두 번째 미용할 곳을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른 곳을 선택해? 그냥 처음 했던 곳에 맡겨? 아무래도 처음 미용한 곳은 클리퍼 지나간 자리마다 실선이 생겼던 것과 세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잠시 망설이다 그래도 마루를 한 번 맡았던 곳이 낫겠지, 라는 생각과 마루가 미용 후에도 발랄하게 잘 놀았던 게 생각나 첫 미용을 했던 곳에 연락을 했다.
그러나 슈나우저 마루인지 물어보는 연락 이후 연락이 없어 다른 곳을 찾아 예약을 잡아야 했다. 하려던 곳에서 예약이 잡히지 않아 다른 곳에 예약을 하면서 마루가 미용하기 힘든 아이였나, 다른 곳에서도 이렇게 거절을 당하면 어쩌지, 등의 생각이 들끓어 몹시 심란했다. 주변에 강아지 미용을 하는 곳은 많은데 받아주는 곳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지? 하는 생각에 처음으로 클리퍼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색을 하면 할수록 마루와 클리퍼를 든 채 울고 있을 '미래의 나'가 떠올라 조용히 노트북을 덮었다.
살이 쪘나요? 털을 남기고 싶다구요? 그렇다면 비용이 추가됩니다.
두 번째 미용실은 전신을 짧게 밀지 않으면 비용이 추가됐다. 처음 계획은 다리털까지 짧게 밀어 버리는 거였지만 다른 슈나우저들이 다리만 남긴 채 미용한 사진을 보고 그 모습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그런 미용을 이야기했다.
다리털을 남기려면 가위컷을 해야 하는데 기본요금에 추가해서 8~9만 원은 주셔야 해요.
아, 첫 미용 7만 원도 손이 살짝 떨리는 걸 애써 감췄는데 8에서 9만 원이요? 그냥 전신을 짧게 밀기로 했다. 카드를 내미는 손에 지진이 일어나면 그것도 민망하니까. 그래도 전신을 짧게 밀기만 하는 거라면 6만 원이었으므로 다리털을 포기하고 치킨을 사 먹기로 했다. 그게 바로 누이 좋고 마루 좋은 일. 마루를 받아들던 미용사가 한 마디 덧붙였다.
네. 마루 그리고 지금 7키로 넘는 것 같은데 그럼 비용이 더 추가돼요.
아, 마루 지금 6.9kg이예요.
아아. 몸무게. 애매한 무게면 다이어트를 시켜야 되나. 마루를 맡기고 돌아서 나오는데 아무래도 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이 몹시 쪼그라들고 한심해 보였다. 물론 크기에 따라 미용을 하는 시간이며 정성과 수고가 더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막상 생각했던 미용 금액에서 비용이 더 추가된다면 괜히 마루를 다이어트시키고 그러면서 또 괴로워할 것 같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미용실을 나와 두 시간 후 말끔하게 전신의 털이 짧아진 마루를 안고 나왔다.
그렇게 두 달 뒤. 몸의 털은 좀 더 자라도 되지만 얼굴 털은 더 자랐다간 눈이 있어도 장님처럼 지내야 되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털이 자라 있었다. 얼굴 때문에 미용을 맡기긴 아까웠지만 당장 방법을 몰랐으므로 미용을 예약했다. 두 달에 한 번씩 6만 원. 멋을 내고 싶으면 8에서 9만 원. 거기에 진드기가 붙거나 마루가 살이 찌면 10만 원이 될 수도 있었다.
진드기 잡는 비용을 따로 청구하는 데 불만은 없습니다. 미용을 맡기는 곳은 다른 강아지들도 드나들 텐데 그런 곳에 진드기가 있다거나 하면 음식점에서 머리카락이 나온 것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큰일이니까요. 다만 생각지 못한 비용이 청구된다는 의미에서 진드기 추가 비용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루를 계속 털이 짧은 상태로 유지해도 두 달에 한 번은 6에서 7만 원이 미용비로 필요했고 이왕 이 금액이라면 다른 곳에 맡겨도 좋을 것 같아 다음 미용 시기가 됐을 땐 다른 곳을 찾아 예약했다. 앞서 세 번의 미용에서(두 번째 미용실은 두 번 예약했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딱히 마루가 괴로워하진 않아서 잘 맞는 미용실을 찾기까지 옮겨도 괜찮을 줄 알았다. 두 번의 미용실을 찾은 것처럼 미용 후기 등을 잘 검색해보면 마루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러면서 비용 부담도 덜한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깨갱, 깽, 하고 우는 거 설마 마루야?
그렇게 세 번째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마루를 맡긴 날. 앞서의 두 미용실이 그러했듯 마루를 맡기고 두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등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마루를 데리러 가는데, 미용실 있는 골목이 떠나가도록 깨갱, 깽! 왕! 웡! 깽! 깨앵! 하는 단발성 외침이 들렸다. 마루가 내는 소리였다. 다급하게 미용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침착하게 문 안을 살펴보니 마루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구슬프게 나를 찾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아직 두 시간이 안 돼 나와 있었다며 곧 오겠다는 미용사분.
아, 아직 두 시간 안 됐는데 일찍 오셨네요.
'아. 미용이 일찍 끝났으면 연락을 주셔야죠.' 라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저 마루를 빨리 확인해야 된다는 생각에 아무 말 못 하고 문 열어주기만을 기다렸다. 머릿속이 온통 마루 울음소리뿐이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안쪽 방에서 창문을 향해 짖고 있던 마루를 안아 들고 보니 원하던 모습 그대로 미용이 돼 있었다. 비용도 저렴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급한 일이 있었는데 시간이 아직 안 됐길래 잠깐 나갔다 왔어요.
거듭 사과하는 미용사와 바라던 모습의 마루를 보니 서서히 화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마루를 안고 나오는데 계단에 내려놓자 뒷다리를 가끔 드는 모습이 보였다. 미용실 옆 공원을 산책하며 뒷다리를 살펴보니 무언가 뭉쳐 있는 게 보였다. 아파하는 마루를 진정시켜 뒷발을 들어 천천히 살폈더니 뭉쳐 있는 것의 정체는 흐르다 만 피였다. 피! 마루를 냅다 안아 들고 차에 태워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소독하고 소독약을 타 오기까지 참 길고 긴 하루였다. 내가 깎다가 발톱에 피가 날 수도 있는데 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돈을 받는 프로가 그러면 안 되지! 하며 버럭도 하다가,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번엔 밤을 새워 클리퍼 후기와 사용기를 찾아 읽고 마침내 적당하다 생각되는 제품을 주문했다.
장비는 장비를 부르고.
클리퍼를 선택할 때 몇 가지 조건을 두고 검색했는데,
1. 다른 미용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일 것.
2. 절삭력이 좋을 것.
3. 무선일 것.
4. 털 길이를 조절할 수 있을 것.
정도로 한정해 검색을 거듭했다.
약 3일에 걸쳐 심사숙고해서 클리퍼를 주문했다. 무선이고 풀 세트여서 따로 준비를 할 게 없었다. 해 보자! 못 할 건 또 뭐냐! 호기롭게 동영상을 검색해 미용하는 방법을 보고 또 봤다. 동영상 속 강아지는 얌전했는데 마루는 클리퍼를 켜기 전부터 걱정이 됐다. 분명 가만 안 있을 텐데.
우선 클리퍼를 작동시켜 진동과 소음을 들려주었다. 마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툭툭 치고 도망갔다가 주변에 간식을 뿌려주니 와서 물고 도망가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다음날은 클리퍼를 작동시켜놓고 그 위에 간식을 얹었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마루가 진동하는 클리퍼 위에 있는 간식을 물고 가는 걸 보자 용기를 내 클리퍼를 뽑아 들었다.
뭔가 결연한 표정에 놀라 도망가는 마루를 간식으로 붙들어두고 마침내 첫 클리퍼를 마루 몸통에 대는 순간. 응? 털이 안 밀린다. 다시 동영상을 보고 하라는 대로 해봤는데, 털이 잘리는 느낌이 없다. 책상 위에 올려둔 마루만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뿐. 이상하다. 동영상에선 분명 털이 누워 있는 방향으로 밀라고 돼 있는데. 혹시? 하며 클리퍼를 털 결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더니 사락, 하는 느낌과 함께 마루의 몸통에 클리퍼가 지나간 자리만 털이 짧게 밀려 있었다. 속된 말로 '땜빵'이 생겼다.
이거 어떡해!
어쩌지? 하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낀 마루가 머리를 휙 돌렸고 그 틈에 클리퍼가 마루의 눈 위를 깨끗하게 밀어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마루는 머리와 몸통에 '땜빵'이 난 상태로 다녀야 했다. 몸통의 '땜빵'은 옷으로 가리면 되는데 머리는 가릴 수 없어 털이 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겨울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한 번 실패를 하고 나니 손이 떨려 클리퍼는 잠시 봉인됐다. 동영상을 통해 좀 더 공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장 시급한 부위가 마루의 항문과 생식기 주변이었다. 항문 주변의 털이 자라 똥이 자주 묻었고 생식기 주변 털도 소변이 튀어 엉망이었다.
마루를 욕조에 넣어 놓고 클리퍼를 항문에 대는데 사락, 사락 털이 정말 잘 밀렸다. 비록 항문에 고속도로가 난 것처럼 털이 밀리긴 했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내친김에 다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루를 안아 들고 책상이 있는 방으로 가 책상 위에 올려두고 귀부터 밀기 시작했다. 무섭고 미용이 싫은 마루가 방을 수차례 탈출했지만 그때마다 쉬어가며 조금씩 밀었다. 얼굴은 클리퍼 세트에 들어 있던 가위로 다듬었다. 가위는 불편했고 마루 얼굴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 미용은 그렇게 쉬엄쉬엄 4시간이 걸렸다. 혼자 남겨진 마루가 깨갱거릴 일도 없고 피를 볼 일도 없었으며 예약을 거절당할 일도 없어 몹시 뿌듯했다.
뿌듯함과 별개로 미용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털은 잘 밀리지 않았고 얼굴은 삐뚤빼뚤했으며 가위로 자른 자리는 그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제대로 층이 나 있었다. 몸통은 3mm 날을 끼워 밀었고 다리는 6mm 날을 끼워 밀었다. 얼굴은 가위로 다듬었는데 수염에 층이 그대로 나서 누가 봐도 아무렇게나 오려 놓은 모양새였다. 가위, 미용 가위가 필요했다. 가위로 미용하는 동영상을 보며 그 생각은 조금 더 확고해졌다. 가위, 가위를 사야 해. 그런데 가위는 비쌌다. 클리퍼 세트보다 더. 포기하려다 우연히 들어간 사이트에서 저렴한 미용 가위 세트를 발견했다.
미용 가위까지 갖춰지자 미용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 높아져 '까짓 거'가 됐다. 기고만장해져서 마루의 얼굴을 다듬으려던 순간. 가위의 날이 맞물리는 '서겅' 소리에 마루가 소스라치게 놀라 펄쩍 뛰었다. 가위 날에 기름도 발라보고 가위를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간식도 줘봤지만 소리는 쉽게 줄어들지 않았고 마루는 이제 가위만 들어도 도망갔다. 결국 끝이 뾰족하지 않은 가위와 숱을 쳐내는 숱가위 두 개를 새로 주문하고 가위 세트는 다른 분의 강아지 털을 자르게 되었다.
미용을 맡겼는데 귀에 생긴 피딱지는 뭐죠?
가위까지 갖춰지고 본격적인 미용을 시작했다. 옆구리와 다리에 털을 남기고 등과 목을 밀었다. 얼굴은 슈나우저의 특징인 수염과 눈썹을 남기려 애를 썼다. 아주 깔끔하진 않지만 이만하면 몹시 훌륭하다 싶었다.
문제는 마루가 귓속의 털과 발 털을 건드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 발톱에 피가 난 이후 발톱을 자르려 치면 발톱에 발톱깎이가 닿기도 전에 발버둥을 쳐 도망갔다. 귀 털도 마찬가지. 귀 털 근저에 가위가 가면 얼른 고개를 숙이고 있는 힘껏 밀어낸 후 도망가서 숨어 버렸다. 미용을 맡겼을 때의 공포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발과 귀는 포기한 채 미용을 했는데 발가락 사이의 털이 수북하게 길어 진드기가 붙어 오고 귀에서는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겨울 동안 세 번 정도의 전신 미용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남겨둔 귀털과 발 털 때문에 미용실에 예약을 해야 했다. 이번엔 미용실 근처에서 기다리다 조금 일찍 들어가기로 했다. 걱정은 됐지만 귀 털 때문에 생길지 모를 귓병과 발가락 사이 진드기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
이번엔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올라갔다. 마루는 마무리로 눈썹 털을 깎고 있었는데 마무리를 한 미용사가 내려놓자마자 눈물이 그렁한 채 여기저기 마구 뛰어다녔다. 서둘러 데리고 나와 공원을 산책하는데 마루가 자꾸 주저앉아 산책이 제대로 되질 않았다.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 그냥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자 마루는 유난히 귀를 털고 긁고 항문을 핥았다. 걱정은 됐지만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럴 때마다 같이 살펴보고 손부채질을 해 주며 도대체 뭐가 잘못됐을까를 고민하던 다음날. 마루 귀에 진물이 흐르더니 딱지가 생겼다. 엄지손톱만큼 제법 큰 피딱지였다. 귓속을 화장솜으로 닦아내자 거뭇한 피딱지가 닦여 나왔다. 그제야 분노가 치밀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분명 항문 쪽도 너무 짧게 밀어 피부가 자극되어 계속 핥고 있는 것이리라. 일주일 정도 귀를 털며 괴로워하던 마루에게 소독약을 뿌려주고 산책을 한 번이라도 더 나가 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귀에 앉은 피딱지는 약 삼 주 정도 뒤에 떨어졌다. 마루 귀에는 선명하게 하얀 반점이 생겼다. 아프게 해도 내가 아프게 하는 게 낫지, 다시는 이런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연락처에서 당장 미용실들을 모두 지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루는 내가 미용하기로 했다.
마지막 미용을 맡긴 후 전보다 더 미용에 거부감을 가지게 됐지만 계속 자라는 털을 가진 마루에게 미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제 마루가 심하게 거부하면 더는 진행하지 않는다. 최대한 빠르고 깔끔하게 하기 위해 얼마 전 새로운 클리퍼도 장만했다. 굉장히 기능이 많고 좋아 보였지만 예전에 쓰던 단순한 기능의 클리퍼가 더 잘 밀려 무척 속이 상했다. 앞으로 마루와 함께 지내려면 해내야 할 것들이 더 많을 텐데 장비 하나 실패한 걸로 일희일비할 수야 없지. 나와 함께 사는 강아지만의 전문가가 되려면 조금은 엉성해도 돼서 좋다.
강아지 미용, 이럴 줄 몰랐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는 줄 알았다. 강아지와 함께 살기 전의 나는 클리퍼라는 기계를 아예 몰랐고 만질 일도 없었다. 앞으로 마루와 함께 재밌게 잘 살기 위해 나는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내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 도전인 미용은 마루와 나,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겠지만 차차 나아질 거라 믿는다. 털 좀 삐죽삐죽하고 앞다리는 밀다 말면 어떤가. 때로 의자 뒤에 숨어 정말 미용이 하기 싫다 하면 눈썹과 항문 털만 정리해주면 될 일이다.
어쩌다 클리퍼를 잡았으니 마루와 함께 긴 호흡을 맞춰봐야겠다. 나와 마루가 좀 더 행복하고 즐거울 미래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