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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이 Oct 16. 2019

강아지 목줄, 이럴 줄 몰랐지.

목줄? 하네스? 3미터? 1미터?

야! 기다려!!! 기다려어!!!!

    줄이 끊어진 걸 안 마루가 흘끔흘끔 눈치를 보며 냄새를 좇아 달려갈 준비 중이었다. 다급하게 소리를 쳐 마루의 발을 묶고 몸을 날려 하네스를 잡았다. 어리둥절한 채 안긴 마루를 보자 식은땀 한 줄기가 이마를 타고 내렸다. 이번 리드줄(leash)은 튼튼하다 안심했는데 마루의 이빨을 과소평가했나 보다.

5번째 끊어진 리드줄.

    산책 도중 연행되어 집으로 온 마루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지만 어쩌랴. 한숨을 쉬며 끊긴 줄을 살폈다.  마루가 씹어 가운데를 끊어 놓은 줄에 힘이 가해지자 툭, 끊긴 게 분명했다. 이걸로 다섯 번째 줄이 끊어졌다.

 산책 도중 마루가 팍! 줄을 당기자 툭! 하는 소리와 끊겨 버렸다.
1년 9개월간 마루가 씹어서 끊은 리드줄.


3m 리드줄은 초보에게 과한 길이였다.

    다섯 개의 줄이 끊어지는 동안 리드줄에 대한 고민은 계속됐다. 당시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리드줄은 3m, 하네스(가슴 줄)는 H형, 으로 정해놓고 길이가 다른 줄을 산다는 건 선택 목록에 존재하지 않았다. 리드줄은 3m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던 건 프로그램 영향도 있었지만 실제로 마루를 처음 데려왔을 때 1m 줄을 사용하면서였다. 몸에 뭔가 걸치는 것도 처음이었던 마루는 다행히 하네스를 잘하고 다녔다.

마루가 2개월에 태어나 처음 했던 가슴줄과 리드줄.
    강아지에게 무언가를 걸치려면 가능한 편안한 곳에서 입히고 벗기고부터 시작해주세요. 집에서 익숙하면 나가서도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마루도 처음은 집에서 하네스를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는 걸로 시작했어요. 사실 익숙하게 하시려면 하네스보다 목줄이 더 낫습니다. 목줄을 하고 익숙해지면 줄을 걸어 집 안을 천천히 어슬렁어슬렁 다니는 것도 좋습니다. 목줄을 한 채 거실에서 간식 한 번, 화장실 앞에서 간식 한 번 식으로 집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며 강아지 스스로 목줄의 불편한 정도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게 성공하면 보호자와 여유 있는 산책이 가능해집니다. 하네스는 줄이 가슴 뒤에서 걸리므로 목줄보다 강아지가 앞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목줄은 보호자의 다리와 비슷한 위치에서 줄을 걸 수 있어 함께 비슷한 방향을 보고 걸을 수 있으며 보호자의 의사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도심에서와 같이 좁은 길을 줄 짧게 잡고 지나야 할 때 보호자가 뒤에 서게 되는 하네스보다 보호자와 나란히 걷는 목줄이 더 편안할 수 있습니다.
    처음 개를 알지 못했던 1년간 목줄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탓에 마루는 지금 목줄 훈련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정답이다, 는 없습니다. 마루와 산책을 다녀보니 하네스보다 목줄의 장점이 필요할 때가 있어 같이 연습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1m 리드줄이 너무 짧아 바로 발 옆에서 걸어야 했던 마루는 보폭이 맞지 않아 두어 번 발에 차이더니

급기야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러다 산책마저 거부할까 봐 당장 가슴 줄과 리드줄을 새로 주문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산책이 힘든 개들에게 늘 채워 주던 그 H형 하네스와 3m 줄로. 3m 줄은 손에 감았다 풀었다를 해야 해서 불편했지만 마루가 냄새를 맡는 동안 천천히 걸을 수 있어 큰 불만은 없었다. 다행히 마루가 사는 곳은 지방의 소도시였고 여기저기서 강아지를 많이 키워 줄을 길게 잡고 지나가도 큰 문제가 없는 곳이었다. 길에서 사람을 마주치지 않을 산책길도 군데군데 있어 5m나 10m짜리 긴 줄도 괜찮을 것 같았다.

H형 하네스와 3m 리드줄 셋트를 하고 산책을 다니던  마루.

    그러다 근처 공원에서 몽이와 콩이를 만났고 3m 긴 줄의 마루는 부지런히 줄을 감았다 풀었다 하며 함께 산책을 해야 했다. 다른 강아지와의 거리 조절이나 마루의 흥분도 조절 등을 해 줄 주체인 보호자는 너무 미숙했고 3m 줄은 생각보다 너무 길어 첫 동반 산책은 식은땀에 젖은 채로 끝이 났다. 그래도 그때는 3m 줄이 아니면 산책이 더 힘들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 다음 줄도, 그다음 줄도 3m를 고집했다. 마치 마루의 모든 산책 문제를 해결해줄 것만 같은 3m 리드줄이 끊어진 이후에도 말이다.


답답한 상황에서 줄을 끊어 마음을 전하다.
펜션에서 고기를 굽는 동안 묶어 놓았더니 끊어버린 줄.

    마루가 6개월에 접어들었을 무렵 마루가 다른 강아지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떠난 첫 여행지에서 마루는 리드줄을 씹어서 끊었다. 울타리 없는 글램핑장을 대여해 숙박을 했는데 옆 동에 놀러 온 강아지를 보러 가겠다며 묶어 놓은 줄을 씹어서 끊고 도망을 간 것이다. 줄을, 씹어서, 끊고. 끊어진 줄을 손에 들고 황망해하다 숙소 주변을 해맑게 뛰어다니며 옆 동 강아지를 찾는 마루를 붙들어 왔다. 리드줄 없이 마루는 정말 행복해 보였지만 한편으로 나와 멀어지면 몹시 불안해하기도 했다.

    마루는 정말 겁이 많습니다. 길을 걷다 비닐봉지 펄럭이는 소리에 움찔하고 멀리 다가오는 사람 그림자에도 놀라 경계를 합니다. 낯선 장소를 갈 때 경계는 더욱 심해지고 그럴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보호자가 오는지 확인을 합니다. 마치 '누나, 오고 있어? 여기 좀 무서운데. 나 잘 지켜봐!' 하는 것처럼요.     그런 곳에서 줄을 풀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멀리 가질 않습니다. 혼자 냄새를 맡다 시야에서 사라지면 마구 뛰어다니며 저를 찾아옵니다. 그럴 때 리드줄을 걸면 마루도 큰 숨을 쉬며 한결 여유롭게 주변 냄새를 맡습니다.
    리드줄은 보호자와 강아지 간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수단이자 연결 고리입니다.

    다음 줄은 무조건 튼튼한 줄로 구매해야 했다. 인터넷으로 사자니 질감을 알 수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강아지 용품 박람회, 일명 '펫 쇼'라는 게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주저 없이 펫 쇼 장소로 향했다.

첫 번째 줄이 끊어지고 펫쇼에 가자마자 튼튼한 하네스와 리드줄을 장만했다. 가슴 부분이 반사판이라 저녁에도 무척 유용했던 하네스.

    펫 쇼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 용품이 있었다. 마침 마루에게 보다 푹신한 하네스가 있었으면 해서(이 때는 목줄에 대해 무지할 때였다.) 하네스와 리드줄을 함께 골랐다. 그런데 정말 튼튼해 보이고 마음에 드는 리드줄의 최대 길이가 2.5m였다. 대부분의 리드줄은 1.2m 아니면 1.8m였다. 그때만 해도 3m가 아니면 마루의 산책이 엉망진창이 될 것만 같아 몇 바퀴를 돌며 고민하다 결국 2.5m짜리 리드줄을 구매했다. 리드줄 곳곳에 고리가 있어 여차하면 나무나 기둥에 리드줄을 걸어 놓을 수도 있는 기능성 줄이었지만 많이 무거웠다. 산책을 할 때 리드줄이 자꾸 바닥에 끌려 결국 다른 리드줄을 찾아야 했다. 리드줄뿐 아니라 하네스도 새로 장만해야 했다. 멋모르고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후 모래가 끝없이 나왔기 때문이다. 새로 주문할 하네스와 리드줄은 할 수 없이 인터넷에서 골라야 했다. 그래도 박람회장에서 한 번 봤으니까 잘 고를 수 있겠지. 비장한 각오로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시작했다.

모래를 파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빨아도 빨아도 모래는 계속 떨어졌다.


강아지 하네스와 리드줄, 정말 이럴 줄 몰랐다.

    뭐랄까. 하네스와 리드줄을 검색하면 할수록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상품 시장을 우주로 봤을 때 강아지 용품 시장은 새로운 은하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제품이 있었고 그에 따른 상품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브랜드가 론칭됐으며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제품은 빠르게 도태되고 입소문을 탄 제품들은 시시각각 다양한 형태의 상품들이 쏟아졌다.

    하네스도 정말 다양한 제품군이 존재했다. 마루가 처음 샀던 조끼 형태, H형 하네스, 목만 걸쳐 가슴을 둘러 고정하는 제품, 옷에 고리를 만든 제품, 가방에 고리를 만든 제품, 리드줄과 가슴 줄이 하나로 된 제품 등.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몇 가지 기준을 만들고 그에 맞는 제품들을 검색한 후 실제 사용한 사람들의 후기와

착용하고 다니는 사진들을 열심히 찾아보고 하나의 상품을 정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외국의 가격 정책이 차이 난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물론 여러 사정에 의해서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모양의 하네스며 리드줄은 해외에서 직접 구매를 하는 편이 훨씬 저렴했다.

왼쪽부터 조끼형 하네스, 비슷한 형태의 목과 가슴에 스펀지가 덧대진 하네스, 입고 벗기기 편한 원통형 하네스.
리드줄과 연결하여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젠틀리더(왼쪽). 손잡이가 있고 하중이 고루 분산되는 웹마스터 하네스(오른쪽).

    하네스와 리드줄을 주문하고 나니 뭔가 허탈해지면서 새삼 마루와, 사람이 아닌 생명체와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났다. 더불어 마음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 전혀 다른 생명체에 대한 실감도.


마음으로 통하기 위한 연결고리.
3m 리드줄을 사면서 10m 짜리를 팔길래 10m 리드줄도 사봤다. 10m 리드줄의 거리감(왼쪽). 리드줄을 하네스 대신 사용했던 산책(오른쪽).

    마루의 새 하네스를 주문하는 곳에 10m, 15m 리드줄을 팔길래 긴 줄이 필요한 곳에서 쓰면 좋을 것 같아

10m 리드줄을 하나 주문했다. 평상시 산책하는 집 주변에서는 쓸 일이 없어 차에 뒀는데 하루는 마루를 안고 차에 타서 공원에 도착하고 보니 하네스며 리드줄을 안 가져온 걸 알게 된 날 유용하게 사용했다. 긴 줄의 길이를 이용해 마루를 둘둘 감아 하네스 대용으로 산책을 한 것이다. 혹시나 마루가 강하게 저항하며 빠져나가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산책이 계속됐다. 그런 사람 마음과는 달리 마루는 하네스를 하지 않고 있어도 평소와 똑같이 산책을 마쳤다. 줄이 당겨지면 기다렸다 가고 느슨해지면 신나게 조금 뛰기도 하면서. 길고 무거운 줄이었지만 나 또한 마루의 움직임에 맞춰 줄을 풀었다 감았다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며 함께 했다. 서로 소리는 안 냈지만 줄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마치 격투가들이 주먹만 대봐도 서로를 알 수 있다, 라는 이야기처럼

리드줄의 움직임을 통해 나의 생각이 마루에게 전달되고 마루의 생각이 전달돼 왔다.

    아마 하네스가 없다는 불안감에 오롯이 마루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니 느껴진 감정들이겠지만 이 경험 이후 마루와의 산책이 더 편안해졌다.


목줄과 짧은 리드줄도 괜찮아요.
목줄에 리드줄을 걸어도 잘 움직이고 잘 걸었다.

    내친김에 목줄에도 도전을 해봤다. 하네스만 사용하다 처음 목줄에 리드줄을 걸었을 때 마루는 트위스트를 추면서 목줄을 벗어던지고 나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 눈빛이 잊히지 않아 몇 달이 지나도 목줄에 리드줄을 걸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리드줄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마루 또한 불편하지만 견딜만한지 목줄에 줄을 걸어도 잘 걸었다.

무슨 줄을 해도 산책만 나가면 돼.

하는 것 같았다. 

    목줄은 확실히 간편했다. 살짝만 리드줄을 통제해도 마루에게 방향 전달이 잘 이루어졌고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천천히 산책하는 여유를 맛볼 수도 있었다. 확실히 하네스와는 또 다른 산책이었다. 산책을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산책이 목적이든 강아지와 끊임없이 소통을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기 위해 리드줄은 필수였다. 리드줄의 길이도 중요하지 않았다. 애초에 3m 리드줄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함께 같은 곳을 걷고 같은 곳을 즐기는 데 줄 길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걸 깨닫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많은 리드줄을 거쳤지만 돌이켜보면 이 또한 함께 맞추기 위한 과정이었으므로 후회는 없다.   오히려 리드줄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음을, 늦지 않게 깨달은 것만 해도 대견했다.

    사실 이 깨달음은 마루가 2살이 되기까지 매일 함께 산책하고 여행하며 합을 맞춘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마루에겐 세 종류의 하네스가 있고 한 종류의 목줄이 있으며 다른 길이의 리드줄이 있다. 그리고 각 종류마다 산책의 목적이 있고 정해진 쓰임새가 있다.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 쓰임새는 쉽게 정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산책을 위한 도구인만큼 강아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도구가 아닐까. 마루와 직접 대화를 할 순 없지만 리드줄을 쥐고 있으면 마루가 얼마나 신났는지, 두려운지, 어떤 길을 가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다.

    강아지 목줄, 이럴 줄 몰랐다. 그저 단순한 산책 도구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산책을 함께하는 동안 서로를 이어주는 소중한 연결고리였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루는 시무룩한 얼굴로 현관 앞에 누워 있다. 오늘은 가벼운 산책을 위해 목줄에 리드줄을 걸 예정이다. 마루는 신이 나서 달려가다 목이 당겨지면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것이다. 그럼 나는 웃으며 말하겠지. 천천히 가자. 뭐가 그리 급해. 물론 리드줄을 느슨하게 늘여주는 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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