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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이 Oct 01. 2019

세상 밖으로, 사람과 함께!

마이 독 랠리 My Dog Rally.

    8월 중순 무렵 같은 슈나우저를 키우는 인스타그램 친구분께 카톡이 왔다.

9월 추석 지나고 마이독랠리라는 행사를 하는데, 마루가 있는 광양과 가깝지 않나요?


    물론 순천은 광양에서 2~30분 거리이므로 당장 참가를 결정했고 참가비까지 단숨에 결제 완료했다. 같이 참가하는 친구분이 보내준 후기를 읽어보니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정해진 지역을 알차게 도는 여행이었다. 물론 강아지와 함께. 그래서 행사 이름도 마이 독 랠리. 

My dog rally.

    나의 강아지 모임 정도로 해석했다. 부제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남파랑길 미션 레이스!

    반려견과 함께 미션을 수행하여 점수를 얻고 그 점수에 따라 시상이 이루어졌다. 각 지역마다 1박 2일 가량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마루가 참가하는 대회는 1박 2일 동안 여수와 순천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여정이었다. 여수, 순천을 모두 참가해도 되고 여수나 순천 중 하루만 참가해도 되는, 자유도가 높은 여정이었는데 함께하는 친구분이 대구에서 오기도 하고 차가 정비소에 있는 관계로 순천 당일치기를 계획했다. 하루하루 날짜가 다가올수록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 마침내 여정을 시작할 일요일이 있는 9월 셋째 주.


태풍이 와도 신난 똥꼬를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마루와 산책친구 몽콩이.

    태풍 타파가 와서 마이 독 랠리는 한 주 미뤄졌다. 아쉬운 대로 재정비를 하면서 한 주를 다시 기다려 마침내 금요일. 미션지가 도착했다.

미션지는 각각의 여행지에 따라 해야할 행동이 있었고 그 행동에 점수가 매겨져 있었다.

    두근두근 미션지를 살펴보니, 어? 여수는 여수대로, 순천은 순천대로 그 지역 전체를 한 바퀴 크게 도는 엄청난 동선이었다.

이걸 하루만에..?


    당장 차를 제공하기로한 몽콩이네와 곤이네를 톡방으로 초대해 대책회의가 소집됐다. 대구에서 오는 곤이(마루의 슈나우저 친구 이름이 곤)네가 아침 10시 반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 오후 7시 반에 대구행 버스를 타는 여정이라 대략 8시간 동안 미션을 수행해야 했는데 이동 시간만 4시간이 넘었던 때문이다.

그럼, 여기는 너무 머니까 빼고 저기를 시작으로 이렇게 저렇게 돕시다!

    약 세 시간여에 걸쳐 대화방에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전략이 수립됐다. 그리고 미션지를 보던 곤이네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마루가 일출을 볼 수 있으면 1등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 대구라 일출 미션은 못하지만 마루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새벽 5시, 마루와 나의 하루가 시작됐다.


미션을 수행하러 밖으로, 밖으로.

    내가 사는 동네에서 치뤄지는 미션 레이스라 뭔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었다. 날이 흐려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염려도 됐지만 우선 사진을 찍어 인증하면 된다 했으니 출발. 가는 길엔 안개가 한창이었다.

저 소망탑의 구멍에 해가 들어가도록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미션.

    예상한 대로 구름에 가려 해가 보이지 않았지만 일출 미션 완료. 바로 두 번째 미션 장소인 화포 봉화산 전망대에서 봉수대를 배경으로 마루를 찍기 위해 이동했다.

봉화산 전망대 미션을 설명하는 미션지

    낮은 산이라 했는데 점수는 15점이라 일출 미션과 합하면 25점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전망대 앞 안내도.

전망대 앞의 가파른 계단에서 잠시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마루가 무언가 미션을 더하면 1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던 곤이네가 생각나 심호흡 한 번 하고 과감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몹시 험난했다.

    열 계단 정도 오르고나니 모기가 신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허어엌허어커커컼 내쉬는 숨에 산 속 모기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아무래도 마루 줄을 잡고 있으면 마루도 나도 조난당할 것 같아  마루 줄을 풀어주고 천천히 쉬어가며 올랐다.

전망대는 전망대.
등산해서 신이난 마루는 몹시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오르고 또 오른 것 같은데 전망대가 보이지 않아  내려갈까 계속 갈까 고민하던 때에도 마루는 신나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계속 올라오길 독촉했고, 여기까지 올라온 게 너무 아까워  허벅지와 허파를 계속 독려하며 정말 천천히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르고 산길을 올라 마침내 전망대. 이상하다. 되게 힘든데 되게 신났다. 혼자 등산을 해서 목적지에 오른 것과는 또다른 감정이었다. 마루와 함께 다른 산에도 올라봤지만 이렇게까진 아니었다. 산을 오르기 전부터 목적지가 있었고, 그로 인한 보상이 확실해서였을까. 다른 더 높은 산엘 올랐을 때와는 비교가 안되는 벅참이 있었다. 해냈다! 하는 대견함도 컸다. 신기했다. 포기하지 않고 올랐다는 게, 문장으로만 접하던 

역경을 헤친다.

는 걸 체험한 느낌. 뭔가 힘이 솟았다.


확실히 강아지와 함께 하는 행사는 특별한 거시기가 있다.
봉화산 미션을 수행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 해가 떠서 날이 좋아졌다. 그리고 산행이 지쳐 누워 있는 마루에게서 진드기가 발견됐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친구차를 반납하고  새벽부터 산행을 한 마루를 재웠다. 앞으로의 미션 여행이 정말 기대됐기 때문에  마루가 벌써 지치면 안되므로 맛사지도 해줬다. 그런데 마루 몸에 진드기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습도 높은 날 산에는 진드기가 기승인데, 간과했던 것. 봉화산 전망대 오르는 길에 서식중이던 진드기들이  오랜만에 발견한 동물을 지나칠 리 없었다. 고난과 역경의 미션수행.

마루 친구 슈나우저 곤. 마루보다 세 살 정도 많은 누나다.

    곤이는 대구에서 버스를 타고 세 시간 걸려 순천 터미널에 도착했다. 해가 뜨고 나니 마치 8월 한여름처럼 온도가 쭉쭉 오르기 시작했다. 에어컨을 켠 차 안도 찜질방이 되어갈 무렵, 안내소가 설치된 와온해변 소공원에 도착했다.

마이 독 랠리 My dog rally 안내소가 있던 와온해변 소공원.
미션 수행 중인 곤이네와 마루누나인 나.

    안내소에서의 에피소드 하나.

아니, 어떻게 봉화산 전망대가 걷기 난이도 '하'일 수 있죠??

하고 따지다시피 투덜거렸더니

강아지가 힘들어했어요? 

아니요. 사람이 몹시 힘들었죠...(기어들어가는 목소리.)

그렇죠. 언제나 사람이 힘들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통찰. 그랬다. 마이 독 랠리는, 내 개의 모임이지 사람의 모임이 아니었다. 그러니 고 아웃 위드 독(Go out with dog)이 아니라 -강아지와 함께 밖으로! 사실 고 아웃 위드 휴먼(Go out with human)으로 -사람과 함께 밖으로! 주체를 바꿔 읽어야할 행사였던 것!


모든 여정은 강아지가 기준이다!

    와온 해변에서 미션을 수행하는데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볕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더위에 약한 마루는 그늘을 보자마자 누웠고 사람 셋은 그런 마루를 보자마자 경쟁적으로 쭈그리고 앉아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곤이도 걷다가 앉으면 셋의 셔터 소리가 주변을 메아리쳤다. 정말 흐뭇하고 뿌듯한 순간들. 나만 그런 거 아니야!

정말 더워서 더위에 약한 마루는 시작하자마자 뻗었다. 곤이 혀도 들어갈 새가 없을 정도.
이게 9월 29일의 날씨입니다! 몹시 뜨겁고 따갑고 무더웠어요.

    새벽부터 일어나 버스를 타러간 곤이네와  더위를 식혀줄 카페를 찾아 출발했다. 사실 새벽에 무리한 등산을 한 내 정신은  봉화산 전망대에서 내려올 줄 몰라서 일정 내내 수시로 혼이 들락날락했던 터라 당보충이 시급했다. 그리고 우리의 전략은 거리가 먼 곳의 일정을 하나 빼고 강아지 동반해서 사진을 올리면 10점을 주는 맛집 미션을 할 수 있는한 많이 하기로 했기 때문에 와온해변 이후의 일정은 카페 투어였다.

테라스라면 강아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카페IM.
사람보다 강아지들을 무척 좋아하는 마루는 몹시 신이 났고, 더위에 지친 사람 셋과 곤이는 힘들어 했다.

    카페를 세 군데 들를 생각이었으나 너무 덥고 음료수를 연거푸 마시는 것도 고역이라 두 번째 카페 이후 다음 미션 수행지로 향했다.


그 곳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열려버린 지옥문이었다.
지옥문이 열렸던 임도 트래킹 미션.

    걷기 난이도는 중이었지만 길찾기 난이도가 하였고, 주소와 사진까지 있어 가볍게 다녀올 요량이었다. 20점이 걸려 있어 다음 미션지인 낙안읍성으로 가기전 몸풀기 정도로 생각했다.


적혀 있는 주소로 가서 에덴 가든의 맞은편을 보면 왼쪽 사진의 길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차도.

    주차를 하고 임도가 뭔지 모른채 가던 길로 계속 향했다. 곤이네와 이 길이 맞는지 진지하게 의문을 품었으나 길을 알지 못하므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몽콩이네가 크게 소리쳐 왼쪽의 임도로 가야된다고 알려주었다. 그 곳엔 끝없이 완만한 오르막 오솔길이 펼쳐져 있었다.

처음은 가볍게 올랐다.
끝없이 완만한 오솔길에서 사람도 개도 지쳐버렸다.

    길은 쭈욱 이어져 있었고 가도가도 계속 오솔길이었다. 마침 산그늘이 내려 있었고 새벽에 등산을 한 내 다리는 삐그덕대고 있었지만 워낙 완만한 오르막이라 그저 오른발, 왼발만 속으로 되뇌이며 오르고 또 올랐다. 15분여를 걸어가면 임도기점 0.5km라는 푯말이 나왔다. 난봉산 정상에 대한 안내는 보이지 않았고  길은 계속 이어졌다. 어디로 빠지는 길도 없어  이어진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야한다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렇게 3km나 올랐는데 그 곳은 정상이 아니었다.

3km를 올라서 우리를 맞이한 건 알 수 없는 표지판이었다. 난봉산 정상은 아무래도 아래쪽 1.6km에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는 희망 하나로 묵묵히 올랐는데 거기에 있는 표지판에는 아래쪽 화살표로 난봉산 정상이 1.6km 지점에 있다고 했다. 네? 사람 셋은 패닉이 왔고 강아지 둘은 혀가 옆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스갯소리에나 나올 법한

이 산이 아닌가벼

를 실현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꼭 미션 점수를 받아야 했던 사람 셋은 당장 주최측에 전화를 걸었고 오히려 주최측에서 이 더운 날 3km나 올라갔냐며

강아지들은 괜찮아요?

를 물어왔다. 이 행사는 정말 철저하게 강아지가 위주여서 더욱 신선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길을 못 찾으니까, 길을 찾아야될 사람 위주로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싶었다.

난봉산 정상 미션 수행한 걸로 해드릴게요.

라는 말을 듣고서야 내려오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 0.5km가 15분여 걸렸다면 내려올 땐 5분이 걸렸다. 가이드인 몽콩이네는 더위를 먹었고 곤이네는 낙안읍성을 즐길 에너지를 소진해 버렸으며 이미 봉화산 전망대에 정신을 놓고 온 나와 새벽 산행에 지쳐 있던 마루는 낙안읍성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고 말았다.


마침내 마지막 미션 장소인 낙안읍성에 도착했다.
낙안 읍성.
정말 아기자기하고 예쁜 곳이었는데 즐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낙안읍성에서 사람 셋은 거의 말이 없었다. 임도 트래킹을 할 때는 초반에 다른 강아지들과 마주치지 않겠냐는 둥, 곤이는 이렇고 마루는 저렇고 몽콩이는 그랬다는  수다도 떨었지만 에너지가 고갈된 낙안읍성에서는 탄식만 흘러나왔다.

임도를 가지 말고 여기 와서 사진도 찍고 즐길 걸 그랬어요.

대    구에서 세 시간 버스를 타고 온 곤이네의 후회였다.

저녁으로 해물파전과 국수를 먹었다.

    다행히 버스 시간까지 한 시간 이상이 남아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맛집을 검색할 기운조차 없었고 밥 생각도 없었는데 대구까지 세 시간을 가야할 곤이네가 걱정이었다. 물론 내가 배고팠다. 사람 셋은 초췌할대로 초췌해져 쪼그라들어 말이 없었다.

누구를 위한 여정인가.

    이쯤되니 저 물음만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고 있었는데 음식을 기다리며 곤이네가 다음 미션지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은 해남, 고흥이고 그 다음은 하동이던데, 하동도 하실 거예요?

    순간 새벽 5시부터 시작된 하루가 쭈욱 지나갔다. 함께 사는 반려견, 마루와 함께 미션을 수행하며 점수를 얻었을 때의 벅참과 뿌듯함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미션 없이도 잘 놀러 다녔는데 미션을 수행하며 놀러 다닌 이번 여정은 이상하게 흥분된 기억으로 떠올랐다. 몸은 몹시 힘들어 정신마저 오락가락했는데 처음 안내소에서 들었던

언제나 사람이 힘들죠.

가 벼락같이 떠올랐다. 정말 이상했다. 이렇게 뜨겁고 무더운날 사서한 고생인데 다음 하동 일정을 들으니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여정이다. 사람이 아닌 강아지가 미션을 수행하는 여정. 사람은 그저 보조일 뿐. 새로운 여정의 충격이 전기처럼 머리를 훑고 지났다.

네. 가야죠. 갑시다! 하동!


    마루, 다음 여정에도 사람인 날 잘 부탁해!

까짓거 자신 있다는 마루의 뒷발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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