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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Feb 28. 2021

'평행우주'론에서 바라보는 '반야'

무지는 '선택' 의 자유를 어려워 한다.


방편이라 함은 목표로 다가서는 수만가지 갈래길에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며 옳게 가는 바른길을 골라낼수 있는 지혜로 부터 파생된다.


최선의 길을 선택할수 있는 방편은 한가지 사건에 대해 그 근본을 파악하고 여러갈래의 인과의 관계를 동시에 바라볼수 있는 지혜가 동반 되어야 가능하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반야 바라밀' 이라 칭한다. 여러가지 방편을 물리학에서는 '평행 우주'( Multi Universe) 론을 통해 설명한다.


물리학 에서 0(Zero)%라는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로, 확률로 따진다 누구나 한국의 대통령이 될수는 있다. 확률은 0 제로가 아닌 5천만 분의 1이다. 힘을 가진자가 무식하고 악하다면 반대파는 총칼로 다 죽이고 대통령 할수도 있다. 그런것을 군사 혁명이라고 한다. 수만가지 확률에서 가능한 길을 찾고  그렇게 만들려면 그만한 무리수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옳지 않은길을 가야만 하고 그만큼 악독한 카르마들을 감당 해낼수 있어야 한다.



전쟁에서 옳고 그름, 선악을 따지는것은 무의미하다. 삶과 죽음으로 서로를 대하전쟁에선 장수는 어떠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승리 할수있는 방법을 아내야 무고한 병사들을 무의미한 사지로 내몰지 않는다. 전쟁에서 말도 안되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항상 승리를 이끌어 내는 카이사르나 이순신 장군 같은 경우, 그 희박한 수천만분의1 승리 확률을 찾아낼 '반야 바라밀' 능력이 탁월한 위인들이다. 신의 가호가 그 길을 찾도록 도와 줄때만이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항상 이길수 있는 방편찾아내고 승리를 얻을수 있다. 단순한 운이 아니다.


인류 전쟁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벌기,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알레시아 공방전, 5만의 로마군으로 안밖으로 동시에 조여오는 기세등등한 갈리아 연합군 40만을 맞아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대승을 거두려면 기존의 인간의 병법 이나 지혜로는 실날같은 승리 길을 찾아낼수 없다.


*알레시아 공방전 기록, 로마군 5만에 갈리아 연합군은 34-40만 추산, 결과는 로마군 피해 12.800명 갈리아 연합군은 괴멸, 사망24만명 포로 4만명이다.


신의 뜻에 따라 운에 맞긴다 라고 믿음만 가지고 덤빌경우 십자군 전쟁에서 보듯 백전백패 병사들을 몰살로 이끌게 된다. 동학혁명 역시 그러하였다. 지휘부가 승리의 편없이 신앙과 믿음만 가지고 운에 맏긴다는 무식함으로 전투를 치뤘기 때문이다. 


*동학군의 패망을 가져온 우금치 전투의 경우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2백명의 일본군에게 숫자만 믿고 2만명의 동학군이 시천주를 외우며 돌진하다 전멸했는데 일본군은 한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은 일방적 학살이었다. (주문을 외우면 총알이 피해 간다며 민병을 부추겼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아닌 다른 장수가 카이사르가 썻던 전술을 그대따라한들 몰살을 피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기적같은 전술의 성공 확률 속에는 '전쟁의 신' 이라고 불리웠던 조커 '카이사르' 라는 인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고 병사들도 그것을 믿었기에 상황의 불리함에 기죽지 않고 궁지에 몰렸어도 승리를 이끌어 낼수 있었다.



선택을 통해 수많은 병사들과 민중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전장의 장수들과는 달리 무지에 익숙한 자들은 갈래길에서 스스로 선택 하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수결로 남들따라 자신도 휘말려 같이 가는것이 편하다고 느끼고 스스로의 결정에 책임을 피하려고만 한다. 못되면 내가 아니라 그 놈이 나쁜놈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항상 가지려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판단할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목소리 큰놈을 따르는것이 대다수 무지한 자들이 택하는 삶의 방식이다. 나쁜놈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고 무지한 중생들이 그 뒤를 따르므로 세상이 이토록 혼탁의 극치로 향해가고 있다.


죽음의 기운이 대세를 장악할때 삶쪽으로 방향을 트는것 역시 확률상 희박하다. 그러나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제로(Zero) 라는 확률은 무지한 자들에게나 통용되는 말이다. 지혜로운 자에겐 단지, 선택의 문제만이 남게된다. 죽음을 택하지 않는대신 내 주어야할 댓가를 꼼꼼히 계산해보고 어떤것이 이익인지 최종 선택을 하게 된다.


최후까지 몰려 죽느냐 붓다의 도를 얻느냐 양단 선택의 기로에서도 대부분이 붓다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쪽을 택한다. 그만큼 에고들은 성자가 되는것을 거부하고 싫어 한다는걸 알수있다. 성자가 되는 메뉴얼이 널리고 널렸지만 아무도 따라하지 않는것도 그러하다. 자신들이 공부한다는 메뉴얼과는 정 반대로만 행하는 목사 스님들이 넘쳐 나는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바나나를 탐하는 잡스런 욕망들을 포기하기 싫다는 에고들의 이기심과 핑계가 항상 진실에서 눈을 가리고 메뉴얼을 입맛대로 왜곡시켜 '나름반야' 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 이란 수많은 갈래길에서 자신이 가려고 하는 바른 길을 가려낼줄 아는 지혜를 말한다. 게임의 구조와 함정을 파악하고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이 축적된 데이터를 이용해 올바른 '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대부분 인간들은 혼탁한 세상을 한탄하며 신이 인간을 버렸다 라고 탄식 하지만 신이 인간들을 버린것인지 인간들이 신을 버린것인지 전후 관계를 냉철히 파악해야 답이 보인다. 전제 부터가 잘못되면 그 뒤의 추론들은 따져 볼것도 없이 오답으로 가는 헷갈리는 길들 뿐이다.


현자는 대세를 보면 그 미래를 짐작할수 있다. 그리고 답을 찾기 시작한다. 욕심이 오답으로 이끄는것은 자신이 속하고 가야할 길을 가도록 카르마의 순리가 이끄는 것이다. 각자 카르마의 끌림에 따라 교통 정리가 마무리 되어지는 시간대 이다. 수많은 갈림길, 멀티 유니버스 안에서 자신이 어디에 어떤 라인에 서있는지 각자가 점검해볼 때이다.



과일은 현재의 상태 모양만 보고도 그 미래를 추론할수 있다. 썩기 시작한 과일을 그대로 놔두면 주변의 멀쩡한 과일들도 함께 썩기 시작한다. 썩어가도 인내하고 참다보면 다시 싱싱한 과일로 돌아올것 이라는 믿음은 스스로 썩어가는 과일이 내세우는 핑계이자 무지라 할수 있겠다.


대세를 보고 판단함 이란  썩기 시작한 과일을 골라내야 할것인가 아니면  그나마 멀쩡한 몇개의 과일들을 골라내 다른 바구니에 담아야 할것인가.. 판단 선택을 해야하는 시점을 알아챔다. 대세를 유심히 관찰하면 어떤것이 옳은 선택인지 판단되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에 썩어가는 과일들을 핑계대지 말고 골라낼 안목만 있어도 가능성은 찾을수 있으리라..


* 미련에 매달리다 썩은  덩어리들이 결국 다 터져서 뱃속이 곤죽 잼이 되버리면 장기들을 모조리 통째로 도려내는 수밖에 없게된다.


Conspirare performs "I Love You / What a Wonderfu…:

https://youtu.be/y_qfeE0Tj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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